네가 그리는 인생은 판타지야

드라마 Kidding
글 입력 2022.02.1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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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다. 일이란 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나쁘게 흘러갈 때가 있다. 더 나쁜 상황을 막는다는 게, 상황을 좋은 쪽으로 끌어보려고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의 반대 반향으로만 흘러갈 때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에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신이시여! 왜 제게 그리도 가혹하게 구시는 건가요?’ Kidding은 답한다. ‘유감이지만 이게 현실이야.’

 

‘잔인한 세상에 떨구어진 착한 아저씨를 그려보고 싶다’는 한 줄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드라마 Kidding은 아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해야하는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제프’가 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오는 상실을 어떻게 마주해나가는 지에 대해 다룬 드라마다. , 의 데이브 홀스타인의 각본을, <이터널 선샤인>, <무드 인디고>의 미셸 공드리가 연출을, 그리고 <트루먼쇼>, <이터널 선샤인>의 짐 캐리가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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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캐리가 연기한 제프 피키릴로에게는 두 개의 자아가 있다. 하나는 항상 친절하고 도덕적이며 모두에게 모범이 되는, ‘피클스 아저씨’와 다른 하나는 그런 피클스 아저씨를 연기하는 현실 속 ‘제프’다. 하나는 매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실제의 인물이지만 30년의 세월동안 피클스 아저씨로 살아온 제프는 캐릭터와 완전히 동화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둘이 다르다는 걸 잘 눈치 채지 못한다. 제프 본인조차도. 하지만 그들의 차이점은 불쑥 예고도 없이 불행이 찾아왔을 때 극명히 드러난다. 교통사고였다. 제프의 아내 질은 쌍둥이 아들 필과 윌을 데리고 운전을 하고 있었고 필과 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뒷자리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질은 장난을 시작한 필을 만류한다. 그리고 그때 커다란 아이스크림 트럭이 나타나 그들을 덮친다. 신호등 고장이 사고의 원인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이 필을 살려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제프는 아들 필을 잃고 모든 것은 엉망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프는 다음날 출근해서 피클스 아저씨가 된다. 변함없이 아이들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고, 활짝 웃으며 무지갯빛 꿈과 희망만을 전한다. 피클스 아저씨는 절대 무너질 수 없는 TV 속 인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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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는 이 간극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그 트럭이 초록불에 달린 이유가 있어요. 어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죠.’라며 필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이다가도 아들의 부재와 슬픔으로 자신 곁을 떠나간 아내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한다. 불쑥불쑥 어디에서 온지 모를 분노가 차오르는 걸 느끼고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 슬픔을 피클스 아저씨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래서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의 프로듀서인 아버지 셉에게 방송에서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제프 : 색깔에 관한 방송을 또 해야 해요? 하늘이 파란색인건 아이들도 알아요. 그 하늘이 무너질 때 어떡할지를 알려줘야죠. 최악의 공포에 관해 얘기해주기에 제가 제격이잖아요. 아빠, 엄마,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유통기한이 있다는 거죠.

셉 : 다신 우유 안 마시려 하겠군.

제프: 어두운 감정에 대해 말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조용해져요. 조용한 애들이 큰 사고를 치죠.

셉 : 네가 알아야할게 있어. 네 안엔 두 사람이 있어. 한 명은 피클스 아저씨지. 1억 2천만 달러짜리 라이선스 사업으로 엔터테인먼트 장난감, DVD, 책들을 만들어서 이 작은 자선 단체를 굴러가게 해. 다른 한 명은 제프야. 별거중인 남편이자 슬픔에 잠긴 아버지.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이지. 장담컨대 두 사람은 만나면 안 돼. 안 그러면 둘 다 망가져. 네 상처가 낫길 바라. 하지만 나아야하는 건 제프지. 피클스 아저씨는 멀쩡하니까.

 

하지만 셉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줄 수 있다는 이유로 번번이 반대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제프의 안은 계속해서 썩어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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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Kidding은 제프를 전면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제프 하나만은 아니다. 제프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 아내 질, 아들 윌, 아버지 셉, 누나 데어드러부터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에서 일하는 스텝 더렐까지 – 모두가 의 주인공이다. 비선형적으로 주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는 시청자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때로는 유쾌하고 코믹하게 그려져 시청자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상처를 땔감으로 하고 있었단 걸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마냥 마음 편히 웃을 수만은 없다. 가령, 데어드러가 딸 매디를 통해 남편이 게이라는 사실과 또 매디의 피아노 선생인 옆집 남자와 바람 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피아노’와 ‘클라리넷’에 비유해 그들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그렇다. 또, 일본의 피클상과 데어드러는 각자 손에 인형을 쓰고 인형의 입을 빌려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들이 그렇다.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는 곧 ‘나’(시청자)와 우리 사회 어른들의 상처다. 그래서 을 보다 우리가 내뱉는 웃음은 씁쓸한 자조의 웃음으로 바뀐다. 마치 고약한 농담 같다.

 

이렇듯 Kidding은 그들을 그저 상황을 앞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배치한 도구로 보거나 결코 조연으로 머물러있게 하지 않는다. 각 인물들에 서사를 부여해 기어이 시청자가 공감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 인물이 베이컨 치즈버거 패티가 동그랗지 않고 네모라는 이유로 빨간 머리 여자 넷을 죽인 살인자일지언정. 드라마 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

 

Kidding은 설명하지 않는 드라마다.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드라마답게 에서 역시 공드리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노골적으로 설명하거나 대사를 통해 전달하기보다 차라리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더렐과 아버지의 관계성을 더렐 오른팔 안쪽에 새겨진 파리 문신 한 컷으로 담아하거나 제프의 위험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극단적인 명암 대비를 보여주는 조명을 사용하는 식이다. 특히나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를 보고 자신의 인생을 되찾은 마약 중독자 세이나의 삶의 변화를 별다른 대사 없이 2분간의 롱테이크로 담아낸 장면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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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공드리의 연출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색채 활용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본 사람이라면 극 중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깔이 극이 진행됨에 따라 초록, 빨강, 파랑의 순서로 변화했다는 걸 기억할 것이다. 이는 클레멘타인의 내면 심리 변화를 색깔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에서 역시 미셸 공드리는 같은 방식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준다. 에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젊은 암환자 비비안이 등장한다. 비비안은 외출을 할 때 꼭 회색 가발을 쓴다.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나이든 모습을 상상해보기 위해 고른 색깔이다. 하지만 이후 항암치료에서 차도가 있음을 알게 된 뒤엔 회색 가발 대신 보라색 가발을 쓴다. 비비안에게 희망이 찾아왔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그의 연출 방식들은 의 1화 ‘색깔에 대한 방송’ 장면에서 집중되어 모아진다. 1화에서 아들 필의 죽음에 대해 방송하고 싶었던 제프는 셉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낸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어린 아이들을 청중으로 부르고 죽음과 이별에 관해 이야기한다.

 

피클스 아저씨 : 이사한 적 있어요? 쉽지 않은 시간이죠? 이사를 할 때 기부상자를 꾸리기도 하죠. 이젠 필요 없는 장난감을 박스에 넣고 나보다 필요한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새집에 도착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 없어졌다면 어쩌죠? 누군가 실수로 그 인형을 상자에 넣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괜찮을까요? 멀리 떨어진 집에서 웃고 놀면서 다른 친구들을 행복하게 해주니까? 아저씨에겐 필이라는 아들이 있었어요. 필도 한때는 여러분의 나이였죠. 필은 죽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필을 상자에 넣고 묻어주었죠. (노래) 꼭 남길 바라는 걸 왜 잃어야할까? 가장 좋아하는 양말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의 발을 데우고 있단 걸 안다면 만세!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하지만 정작 다음날 방송된 건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색깔에 관한 에피소드다.

 

(피클스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 빨간색. 빨간색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장미.

보라색. 아빠가 출근할 때 목에 두른 넥타이가 보라색

갈색. 헝클이말의 가죽에 달린 털이 갈색

노란색은 꿀벌 윙윙

초록색요? 그건 쉽죠. 초록색의 뜻은 출발!

 

공드리는 이때,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 방송장면과 현실 세계를 교차하여 제시한다. 피클스 아저씨가 빨강을 노래하는 장면과 떨어진 장미꽃잎을 모아 붙이려는 데어드러의 모습을 병치하고, 보라색을 노래하는 장면과 아버지 셉이 보라색 넥타이를 매는 모습을 병치한다. 노란색을 노래할 땐 윌이 필의 무덤에 벌을 풀어놓는 모습을, 초록색을 노래할 땐 아들 필을 죽음으로 몰아간 아이스크림 트럭 기사와 딸이 소파에 앉아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극장>을 보는 모습을 번갈아 제시한다. 제프가 살아가는 잔인한 현실 세계와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 속 피클스 아저씨가 살아가는 다채로운 색감의 동화적 가상 세계가 교차되다보면 마치 현실 감각이 거세된 50초짜리 잔혹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만 같다. 방송 이후, 아버지 셉은 제프에게 말한다. ‘당연히 방송 못 내보냈어, 제프. 방송은 못 바꿔. 너도 마찬가지고. 넥타이, 셔츠, 머리. 너는 만들어진 이미지야. 햄스터나 묻자는 게 아니잖아. 그 일은 관객이 아니라 네게 일어난 일이지. 너는 실존 인물이 아니야. TV 속 인물이지. 너는 텅 빈 존재일 뿐이고 그 사실에 만족해해.’.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제프는 완전히 망가진다. 불현 듯 거울 앞에 서서 머리 한 가운데를 밀어버리고는 한마디 내뱉는다. ‘웁스!’

 

*

 

Kidding은 성숙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Kid’-ing 상태에 머물러있는 어른들을 조명한 아픈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에는 완벽한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저마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상처를 입은 어른들이다. 만약 당신이 상처 없는 완벽한 어른이 되기를 꿈 꿨다면 그건 판타지다. 하지만 상처는 곧 치유된다. 데어드러가 우주로 날아가지 않는 로켓에 실망한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주 수달을 만들고, 아이들이 사랑하는 쿵쿵이와 우쿠래리를 만들어 아이들을 치유하는 것처럼. 비비안과 셰이나, 조이가 <피클스 아저씨의 인형 극장>의 제프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처럼. 상처는 아물어 간다.

 

마지막으로 의 시즌 1 7화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상처받은 이 세상의 ‘Kid’-ing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통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디어드러 :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해요. 매디와 스콧, 제프 그리고 아빠. 그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건 쉬워요.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법은 모르니까요 난 뭔가를 원할 줄 몰라요. 가족 앞에서 살기보다 인형 앞에서 피 흘리는 게 나아요. 난 그렇게 자랐어요. 우리는 멀리서 사랑하는 가족이에요

피클상 : 하지만 멀리서 서로를 사랑한다는 건 상대가 돌려주는 것도 항상 멀리 있다는 거잖아요

디어드러 : 난 멀리 있는 게 더 좋아요. 가까이서 보면 흉터투성이거든요.

피클상 : 킨츠기를 아세요? 특별한 물건을 깨뜨리고선 그걸 다시 금으로 붙이는 예술 기법이죠. 당신의 흉터는 당신이 깨졌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치유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깨지는 건 치유에요. 킨츠기.

디어드러 : 킨츠기.

 

상처 입은 모든 어른들에게. 킨츠기.

 

 

참고

최현주 (2016). 미셀 공드리 감독의 표현주의적 영상 미학. 애니메이션연구, 12(1), 183-198

씨네플레이, 짐 캐리와 미셸 공드리가 만든 성인용 미드 <키딩>을 꼭 봐야 할 이유

한겨레, 감정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 위한 오마주 ‘키딩’

 

 

[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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