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두 자녀와 손상기의 예술 세계, 문학과 미술의 환유 1편 [미술/전시]

KBS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와 JTBC 드라마 <공작도시>를 관통하는 손상기 화백
글 입력 2022.02.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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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많다. 손상기(1949-1988) 화가의 작품을 어떻게 해석할지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고민할 시간이 없다. 성실성보다 독창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이 시간을 갉아먹었는지도.

 

“나의 결핍으로 확인된 당신의 만족, 나의 초라함으로 인하여 더 빛나는 당신의 성취, 당신의 선행을 빛내주는 나의 불우함, 당신의 세상을 더욱 밝혀주는 나의 어둠.” 최근 종영한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 티저(teaser)에서 윤재희 (수애 분)는 말했다.

 

그리고 보았다. 인물들을 짓누르는 고민의 무게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나 재벌가라는 극적 천편일률의 성급함을 압사시켰음을. 그래서 보였다. 인물들의 명백한 당위와 오만이 낳은 이면의 세계가. 이를 꿰뚫는 손상기 화백의 작품 세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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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아이러니, 1987, 캔버스에 유채, 130×130cm / © 1987.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아름답지 않으면 선택받지 못한다. 그래서 반어나 역설 등의 수사법이 존속되어 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미적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아이러니(irony)는 발생한다. 손상기 화백은 그를 후원하던 미술품 수집가의 집에 방문하여 위의 작품을 남겼다. 화려한 거실 벽면을 채운 화려하지 않은 그림은 일견 상응하지 않는다. 수집가에게 그의 비애와 가난이 진정 아름다움으로 보였을까.

 

상업주의와 예술의 불가분성을 기치하지 않고 현상한 그의 대담함, 숙명을 두려워할 수 없는 간절함, 당신의 수사(修辭)가 나의 민낯이라는 폭로의 무게감이 화가의 아름다움을 증명했다. 극 중 윤재희의 괘오한 욕망이 해당 작품과 위작 시비라는 장치로 표현되었다.

 

상대적 선(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악(惡)은 등장인물만의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당면한 추한 사회의 보조 관념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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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공작도시-난지도 성하(盛夏), 1985, 캔버스에 유채, 130.3×300cm / © 1985.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구상(構想)에는 미래가 담보되어 있다. 그래서 예술에는 금전이 요구된다. 한여름 쓰레기 더미에서 신음하는 난지도 거주민에게는 먼 미래와도 같은 예술이 그들을 대상화했다. 1980년대 소설이 그러하듯 손상기 화가도 이곳을 그림으로써 민주화나 노동 운동 등 변화하는 사회를 견인했다고 평가하는 혹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개인성은 꽤 짙어서 사회가 주지하는 동고(同故)로 대체될 수 없다. 그의 고향인 여수의 향토적 풍경과 대비되는 서울 도심의 고독감, 물질적으로 풍족했던 여수 시절과 어긋나는 서울에서의 궁핍함, 허상의 풍요 그리고 이를 위시한 개인의 몰락이 시대 풍조로 갈음되기엔 그의 시선이 꽤 다층적이다.

 

극 중에서 해당 작품은 윤재희가 끝내 타인의 통증에 공감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매개가 된다. 막연한 예상이 아닌 상실에서 비롯된 동일시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고통을 인식한다. 허상에서 깨어난 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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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기, 공작도시-따스한 빛, 캔버스에 유채, 1986, 115×90cm / © 1986. 손상기 All rights reserved.

 

 

균열을 메워가며 살아가는 인간의 습성은 각자의 세상을 견고하게 한다. 확고부동하지 않은 지반, 잘못된 설계, 폭격 따위의 외압이 건축물을 흔들리게 한다. 따라서 수하를 막론하고 특정 인물의 인생을 각자만의 잣대로 평가하는 일을 삼간다.

 

손상기 화가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다. 첫째 딸 손세린(1979-)은 2010년에 방영한 KBS 수목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의 보조 작가였고 둘째 딸 손세동(1984-)의 성명을 필명으로 하여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 초까지 방영한 JTBC 수목드라마 <공작도시>의 극본을 맡았다.

 

지난 기사 자료를 단서로 조합해 보면 그렇다. 글을 쓰고 난 후 그림을 그린다던 손상기 화가의 문학적 소양은 자녀에게로 전이되어 비로소 형상화되었다. 서로에게 따스한 빛이었을 기억을 회고하며 두 명의 여인이 해당 작품을 바라보는 장면은 두 개의 드라마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 2편이 연재됩니다.

 

 

[참고문헌]

김진엽 외 4인, 손상기의 삶과 예술, 사문난적, 2013.

홍가이 외 3인, 고통과 절망이 품은 따스한 빛 손상기, 아르테(arte), 2019.

김예진, 드라마 배경 넘어… ‘주연’ 활약하는 미술 작품, 세계일보, 20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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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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