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악에 대한 경외를 담아,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글 입력 2022.02.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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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대문호들이 많다. 영국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찰스 디킨스가 있었고, 러시아에는 톨스토이와 푸쉬킨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럽 국가인 독일에도 대문호들이 있었다. 정말 많은 독일의 문호들이 있지만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손꼽히는 대문호는 역시 괴테와 쉴러일 것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문장들이 담긴 그들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익히 읽히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일의 문호를 손꼽으라 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문학가가 한 명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헤르만 헤세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헤르만 헤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그를 독일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히 아니다. 헤세의 어떤 작품이든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문장이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지, 인생을 성찰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처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벼락을 맞은 것 같은 느낌 그대로 연달아 <데미안>을 읽어내려갔던 10대 때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그의 문장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그런 헤세의 글 중에서도 음악과 관련된 글만을 엮어서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가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없이 유려한 그 문장으로 그가 음악에 대해 어떤 글들을 남겼을지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 속에서도 음악을 매개체로 활용하는 장면들이 나왔던 것이 기억나기는 하지만, 헤세 본인이 음악을 어떻게 감상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궁금했다.


 



< 책 소개 >


"음악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경탄을 바치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유일한 예술이다." ─헤르만 헤세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한 작가이자 194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 그가 기록한 음악 단상을 모은 책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가 북하우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음악은 헤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이 헤세의 작품 면면에 흐르고 있는 음악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호기심과 애정에 부응해 헤세와 음악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프로젝트다. 이 책을 기획한 헤르만 헤세 전문 편집자 폴커 미헬스는 헤세가 젊은 시절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쓴 모든 글 가운데 음악을 대상으로 한 글을 가려 뽑아 '완전한 현재 안에서 숨쉬기'와 '이성과 마법이 하나 되는 곳' 등 두 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실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문학작품으로, 헤세의 많은 시와 소설에 은은하게 일렁이는 음악의 그림자를 또렷한 시적 형체로 드러내준다.

 




정말 빼어난 문장은, 단순히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어내려가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을 한 단어로 축약하자면 감격이었다. 그야말로 감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 내가 느꼈던 것, 내가 누군가에게 말했던 것 그리고 내가 음악회를 다녀온 후 감상을 남기며 쓰기도 했던 것. 그 일련의 감정과 생각의 습작같은 것들이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보다도 훨씬 더 풍부한 언어로 쓰여있는 그 모든 것들을 보는 데 어찌 벅차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은 넓고, 시대도 다양한 만큼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도, 존재하고 있는 사람도 수없이 많지만 그 각양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떠나서, 동일한 것을 느끼고 이에 압도될 수 있다. 예술이 바로 시공간의 제약을 떠나 사람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도 음악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시나 소설 등의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는 것과 미술 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며 느끼는 것보다도, 음악은 선율이 연주되는 순간 그 첫 음만으로도 우리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진입장벽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예술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음악이 나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예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세상에 한 획을 긋고 떠났던 헤르만 헤세가, 이런 나와 완전히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통해 알 수 있었다. 1부에서 보면, 헤세는 음악의 심상을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적 심상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음악의 아름다움이었다. 음악에 담긴 예술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경탄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그는 음악이 얼마나 자유로우면서 경이로운 것인지를 찬양했다.


자유로운 감상자였던 헤세는 점차 음악의 감상을 감각적인 차원에서 끝내지 않고 점점 심화시켜나갔다. 음악이 청중의 심리를 얼마나 압도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았던 그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나치가 독일을 주도했던 당시 사회상을 유념하며 도취적인 음악이나 연주자에 대한 숭배를 경계했다. 2부에서 특히 보이는 헤르만 헤세의 심화된 음악론은 그의 시대상과 삶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동시에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독자로서 굉장히 즐거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바그너나 말러처럼 도취적인 표현을 하는 음악가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 취향과 동일해서 좋았다고 하면, 너무 어린 아이 같을까. 그래도 그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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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느끼던 바들을 그가 우아한 문장으로 재탄생시켜주는 대목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와 헤세의 문장력의 차이를 비교하면 그야말로 암담할 따름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호가 아니고, 그저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소하게 예술을 즐기는 딜레탕트일 뿐인데. 그래서 오히려 그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해준 것들이 나에게는 오히려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그런 대목들을 소소하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먼저 첫 번째는 바로 음악회를 다녀온 후 내가 느끼는 감정과 동일하게, 헤세가 글을 남긴 부분이다.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그 사이의 모든 풍경을 묘사하는 그 문장들의 향연 끝에, 헤세는 분명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는 기쁘게 쉬러 간다.", "다시 한동안 삶을 살아가며 그 운명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으리라." 그리고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잠시간 다음 꼭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멈춰있을 수밖에 없었다. 헤세의 문장에 그야말로 넉다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덧 예술의전당에 매달 최소 1회 이상 공연을 보러 간 지 3년이 되었다. 상경해서 음악회를 다니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음악회를 다니기 시작한 건 이미 훨씬 오래 되었지만, 그 때는 매달 꼬박꼬박 음악회를 갔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음악회를 다녀오면 늘 좋았다. 그런 음악회를 매달 한 번 이상 공연을 다녀오게 된 후로는 더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음악회를 여러번 다니면서 놀라운 작품들도 알게 되고, 뛰어난 연주자들도 알게 되는 데다가 내 취향도 조금 더 세분화되기 시작해서 여러모로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음악회에서 연주를 듣는 순간 내 일상이 다 멈추고 오직 음악만이 나를 가득 채우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하는 '음악이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표현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사실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필요한 격려와 위로, 영감과 활력 그 모든 것이 음악을 통해 비언어적으로 나를 가득 채우는 순간은 그야말로 몰입이 극도에 달하는 순간이다. 그 충만함으로 인해, 나는 매번 다음 음악회의 순간까지를 버티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헤세가 저렇게 표현한다고? 운명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으리라 말하는 그의 문장이, 심연에서 혼잣말로 되뇌던 내 심경과 동일해서 소름이 끼쳤다. 이런 문장이라면, 오히려 나야말로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그의 문장에 기꺼이 농락당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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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살펴볼 문장은 그야말로 매혹적인 문장이다. 음악회에서 느낄 수 있는 아주 짧은 순간을, 이렇게 날카롭게 벼려진 글로 생생하고 찬란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헤세는 음악이 시작되기에 앞서 악기들이 조율하는 순간을 "바야흐로 매혹적인 순간이다"라는 문장과 함께 묘사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회에서 연주 듣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사실 음악회에서 관객들의 가장 기대감이 높은 순간은, 1악장의 도입부나 종악장의 피날레 순간이 아니라 바로 악기를 조율한 후부터 1악장이 시작되기 직전의 그 휴지기까지다. 연주자들이 튜닝을 하는 동안 악기들이 서로 얽혀들며 나는 짧은 카오스 이후 맞이하는 침묵의 순간, 이 순간은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순간이다. 연주자들의 비르투오소가 내면부터 드러나 완전히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가 될 수도 있고, 실수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는 무대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짧게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이 순간의 긴장감은 정말 중독적이다.


그리고 헤르만 헤세는 역시, 이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원의 찰나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율 후, 첫 음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그 모든 순간은 기대되는 음악회일 수록 숨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연주자들이 대기하다가 준비하면서 악기를 들어올리는 그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각인될 때도 있다. 그 짧은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깊은 몰입을, 헤르만 헤세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겼다. 도대체 헤르만 헤세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문학가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사람인데, 음악을 이렇게까지 깊게 사랑하고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건 거의 반칙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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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는 사람들조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어렵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음악이 가요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을 말할 때, 사람들은 정말 '어렵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음악회 표가 생겼을 때 주변 사람을 함께 음악회에 데리고 가려고 물어보면 반응이 확 갈린다.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가보겠다는 사람이 있고, 클래식 음악은 어려워서 음악회를 가는 것이 좀 꺼려진다는 사람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자나 비평가의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어렵겠지만, 음악을 그저 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몫인데 말이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헤세가 남긴 문장을 마지막으로 꼽아보고자 한다.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품을 접한다면 더없이 고귀한 인간의 삶이, 나와 당신과 만인에게 더없이 진지하고 중요한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마땅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한심한 문외한이라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비밀이다." 실로 옳은 말이다. 설령 내가 그 음악을 듣고 느끼는 무언가를 형언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그 무언가가 당신의 안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된 것이다. 그것이 단순하게 "좋다"라는 감정이기만 해도 그 음악은 당신에게 의미를 남긴 것이다. 거기에 어렵다는 등 더 이상의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음악이 그저 우리의 영혼만을 요구한다는 것, 하지만 오롯이 요구한다는 것 말이다. 음악은 지성과 교양을 요구하지 않는다. 음악은 모든 학문과 언어를 넘어 다의적 형상으로, 하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 항상 자명한 형상으로 인간의 영혼만을 끝없이 표현한다." 이렇게 아름답고도 위대한 문장으로, 헤르만 헤세가 당신에게 음악을 설명하고 있다. 음악을 어렵다고 느낄 이유가 있는가? 전혀 없다. 음악은 그저 당신의 영혼과 바로 닿는 가장 빠른 매개체일 뿐이다.


 




헤르만 헤세가 음악에 대해 다룬 일련의 글들을 보니, 그가 음악을 경외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문장을 쓰는 것보다도 음악이 그의 삶에 우선순위였을 지도 모르겠다. 글은 그저 음악을 통해 그가 받은 영감과 심상, 생각 그 모든 것들을 표현해내는 수단이었을 지도 모른다.


도서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를 읽고 나니, 나는 이제 음악뿐만 아니라 헤세를 경외하게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렇게 적절하게 내 마음을 풀어써주었지?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이미 나와 동일한 생각을 그가 먼저 하고 그가 먼저 느끼며 살았다는 것이 생생하게 실감되었다. 헤세가 말하는 문장의 모든 것 그대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와 동일한 감정과 심경을 느끼며 음악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위안이 된다.


*


이미 아득하게 오래 전에 읽었던, 헤세의 문학 작품들을 다시금 읽고 싶어졌다. 그의 문장들을 다시금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면서, 그의 작품 속에서 나오는 음악 작품들을 다시금 듣고 싶어진다. 더 삶을 치열하게 영위하고 싶어진다. 무뎌진 의식을 바로잡고, 매순간을 생생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러면 나도 언젠가는, 헤르만 헤세와 같은 깊이로 더욱 깊게 음악과 교감할 수 있을까.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지은이: 헤르만 헤세

옮긴이: 김윤미


출판사: 북하우스

페이지: 408쪽


정가: 22,000원

ISBN: 979-11-6405-149-6 0385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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