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달까지 가자 [도서]

나는 그들이 조금 더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글 입력 2022.02.1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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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명백하고도 단순했다. 우선 알록달록한 표지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달까지 가자...'

 

노랗게 그려진 보름달 위에 적힌 제목을 곱씹으며 내용을 유추했다. 공상과학 소설인가, 미루어 짐작하고는 첫 장을 펼쳤다.

 

혹시 그런 책을 만난 적이 있는가. 첫 문장에 두었던 시선이 어느새 마지막 문장을 쫓고 있고, 마치 인물과 나를 동기화라도 한 듯 어느새 같은 호흡으로 달려가고 있는, 그러니까 완전히 나를 흡입해버렸다는 느낌을 주는 책.

  

나는 책을 펼친 자리에 서서 몇 십분 동안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은 호기심과 아껴 읽고 싶은 욕심을 저울질하며.

 

단순히 SF 일 것이라 생각했던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가득했다. 대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끊임없이 잔잔하고 깊은 자극을 주기 마련인데, 읽는 내내 누군가 가슴 언저리를 툭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딘가 존재할 것만 같은 인물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응원을 보내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을 품에 안았다.

 
 
 
To the moon

 
장담컨대, 내 또래 중 ‘비트코인’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창 비트코인이 급부상하던 때였다. ‘누가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벌었다 더라.’ 그런 유의 말이 여기저기서 자주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 혼자서만 급행열차를 타고 거머쥔 돈처럼, 다들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그게 뭔데? 나도 해볼까..'라며 괜히 기웃거리곤 했다.

 

이 책에는 기웃거릴 시간조차 없어 가상화폐의 세계로 과감히 뛰어드는 세 인물이 등장한다. 다해, 은상, 지송. 이 셋은 회사 동료이지만 공통적인 것으로 묶인 끈끈한 사이다. 10평을 넘지 않는 원룸에 꼬박꼬박 월세를 내며, 밀린 학자금 대출과 빚을 갚아 나가며, 부모님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을 형편이 되지 못하는, 이를테면 ‘동질감’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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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다해는 같은 회사 사람들을 보며 실제적인 경제적 선상은 다르다는 것을 계속해서 의식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객관화한다. 자기 자신을 옹졸하다고 표현한다.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부러웠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타인의 여유를 금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은상과 지송과 있을 때는 달랐다. 무언가 우리는 '같은 부류'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편안함,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말로 묶이는 소속감. 그것이 그들을 돈독하게 만들었다.
 
유난히 돈에 관심이 많던 은상은 '이더리움'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이것으로 자신은 이미 엄청난 이익을 벌고 있다고 말한다. 함께 하자는 말에 지송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그런 거에 돈을 걸고 싶지 않다.'라며 질색했고, 다해는 자신의 미래를 헤아린다.
 
갚아야 할 남은 빚, 화장실과 구분 없는 듯한 좁은 원룸, 앞으로 꼬박꼬박 들어올 그저 그런 월급, 꿈과 여유 따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는 듯 강경하게 둘러싼 현실의 장벽. 이 모든 것들이 다해를 '이더리움'세계로 발을 들이게 한다.
 
그래프는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선처럼 다해의 마음도 그랬다. 너무 내려가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너무 올라도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상승세를 타는 이더리움에 다해는 자신이 걸 수 있는 최대한을 걸어본다. 마치 희망 없는 현실에서 붙잡을 동아줄은 이것뿐이라는듯.
 
다해와 은상은 매일같이 '가즈아.'를 외쳤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너무 아프지만은 않다는 거다. 이야기 곳곳에 유머가 스며 있다. 그들이 외친 '가즈아', '달까지 가보자'와 같은 말은 실제로 그 말이 유행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고, 그들을 계속해서 응원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탑승 안내

 

여기까지 읽었다면, 그렇다면 지송은 이더리움에 함께 올라타지 않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녀는 이더리움에 올라탄 마지막 탑승객이다.
 
사실 지송은 다해와 은상이 본인 앞에서 이더리움 얘기를 꺼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런 걸로 돈을 벌고 싶지 않으니 권유하지 말라며 못을 박고, 왠지 모를 박탈감이 든다며 이더리움을 금지어로 정한다.
 
그리고 그들 셋은 제주도로 함께 여름휴가를 떠난다. 자주 그랬듯 지송은 지각을 했고 다해와 은상은 비행기에서 지송을 기다린다. 혹시나 탑승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던 우려를 깨듯, 지송은 전속력으로 달려 제주도행 비행기 마지막 탑승객으로 오른다. '세이프'라고 외치며.
 
사실 나는 장류진 작가님의 표현력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천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책을 다 읽고 한 번 더 훑다가 깨달았다. 이더리움에 올라타는 것을 제주도행 비행기 탑승에 빗대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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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5성급(사실은 7성급이라 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로 완벽한)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인피니티 풀에서 수영을 즐긴다. 다해는 '인피니티'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무한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곳.'

 

무한하기에 결코 가닿을 수 없다는 모순이 왠지 슬프게 읽혔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계에 이제야 한 발짝 들이게 된 다해는 더 큰 것을 바랐다.

 

나는 자꾸만 다해를 응원하고 싶었다. 그녀는 더 큰 욕망을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그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돈'에 있어서 거북한 마음이 드는 것 자체를 창피하게 여겼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따위의 생각을 하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무엇이 다해를 그렇게 만든 걸까. 나는 다시 한번 돈의 속성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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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은 각자 다르다. 제주도에 도착한 후로 은상은 자꾸만 오르는 이더리움 그래프를 살피느라 휴대폰에 자주 시선을 두었고, 지송은 푸른 바다와 꽃의 아름다움에 더 많이 눈길을 두었다. 결국 그들은 충돌했다.

  

지송은 이더리움인지 뭔지 그것에 미쳐있는 것 같다며 심한 말을 뱉었고, 은상 또한 지송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은상이 폭언을 쏟아낼수록 지송의 눈에서는 더 많은 눈물이 떨어졌다.

 

이후에 은상과 빠른 화해 후 결국 지송도 이더리움을 시작한다. 사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가상화폐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건 아닐까 긴장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꽤나 큰돈을 벌고 또 다른 미래를 그리기 시작한다.

 

총 33억을 번 은상은 작은 건물을 산 후 퇴사를 결심하고, 2억 조금 넘게 번 지송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준비한다. 그렇다면 다해는? 3억 조금 넘는 돈으로 빚을 갚고, 남은 돈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천천히 계획을 세운다. 쉬는 날 회사에 나와 곰곰이 생각하던 다해는 예전처럼 회사를 다니는 것이 싫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적어 내려간다.

 

'일단은, 계속 다니자.'

 

*

 

장류진 작가가 선사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마침표는 찍히지 않았다. 우리는 다해, 은상, 지송이 앞으로 꾸려나갈 새 미래를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더리움 세계로 발을 들이기 전과 후의 그들 삶은 극명하게 달라서, 앞으로의 행보에 희망을 걸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돈 때문에 눈물짓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스스로의 마음에 '옹졸함'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지 않기를 바라며, '인피니티'가 그들에게 가닿을 수 없는 아득히 먼 세계가 아니길 바라며, 그들의 꿈이 달까지 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조용히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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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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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유시은
    • 술술읽히고  작기님말처럼 아껴일고픈 글이네요
      자주 게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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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유정
    • 유시은감사합니다 ♥️ 너무나 큰 힘이 되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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