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연초 이야기

글 입력 2022.02.0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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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달력을 뜯으면서 건강과 행운을 빌고 또 애정 어린 바람들을 만끽하는 것. 올해는 다소 관습적인 다정함에서 유독 비켜난 시작이었다. 소식을 끊고 혼자서 지냈다. 소란스러운 속을 이고서 꿈질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짐이 무거웠던 까닭이다. 떠날 때는 홀가분하다고 그러던데, 그다지 기쁘거나 개운하지 않았다. 떠남이 둥지 찾기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음을 괜히 탓하고 싶었다.

 

올해의 첫 번째 토요일엔, 졸업과 동시에 다시 안정적인 어딘가로 정착하기 위해 애쓰면서, 걱정이 설렘을 거뜬히 압도하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면서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졸업을 갈망함과 동시에 시작을 유보하고 싶었다. 어려웠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자신을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무게. 알 수 없는 것이 밤마다 내 두개골을 압박하며 자유로운 사고를 금지해버리곤 했다. 지끈거리는 상념들이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그런 날들을 견뎌야 했다. 어떤 날에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싫은 나머지 잠에 들며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눈을 뜰 강단이 부족했던 것이다. 소위 깡 같은 것.

 

어느 순간엔 몸이 타이머가 맞춰진 거대한 자명종이 된 듯했다. 평소엔 들리지도 않았던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지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음악을 틀고 작업을 했다. 이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는데, 플레이리스트 속 가수들이 다들 팔자 좋게 사랑 타령을 하고 있어서 심각한 짜증을 유발했다.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돈 자랑을 하거나 잔뜩 화가 난 채 사회비판을 시작했고, 감미롭게 욕을 읊조리거나 지나치게 긍정적인 해맑음으로 나를 괴롭혔다. 클래식을 듣자니 너무 잔잔한 나머지 잠이 쏟아졌다. 나는 음악이 이 예민함에서 나를 구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냥 헤드폰을 썼다. 아무런 음악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행위가 내 마음을 덜 뾰족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취미였던 음악 듣기를 잃어버렸다는 우울함을 애써 밀어내며 눈앞의 것에 집중하려고 했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생각보다 훨씬 씁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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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늘어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입밖으로는 무척 긍정적인 문장들만 발설했다. 일종의 미신적인 싸움이었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믿어서, 난 안 될 거라는 식의 말을 꺼내면 정말 일이 망해버릴 지도 모른다고 두려움에 떨었다. 친구들도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날 입단속 시켰다. 웃긴 일이다. 머리로는 최악보다 더 최악인 상황까지 그려도, 입밖으로만 꺼내지 않으면 괜찮은 것인가? 허나 그런 자조 섞인 의문을 품고서도 여전히 나는 나쁜 예측이 담긴 말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이 당연할뿐더러 남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머리에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온몸에 선뜩한 소름이 끼쳤다. 뿌리내린 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식물이 없듯이,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유의미한 성취를 누리고자 한다면 응당 상응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 정도는 해야 하고, 남들도 그 정도는 다 한다는―‘그 정도’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모를 일이다―무시무시한 사회 풍조. ‘열심히’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정도는 되어야 괜찮은 노력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곳. 열심에 대한 인정에서 끝나는 곳이 아니라 더 큰 열심을 언급하는 곳. 가혹하고 엄중한 잣대가 뿌리 박혀 있는 곳.

 

맞다. 노력 없는 결과는 결코 없고, 노력은 언제나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나의 노력을 냉정하게 후려치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만 박하게 구는 가엾은 버릇. 잘 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해도, 잘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지인들의 위로를 온전히 소화할 수 없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속이 체한 것처럼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한 채로, 지독한 교통체증에 휩싸여 고립된 채로 비관적 자아만이 산만하게 떠들었다. 뭐해좀해더해잘해. 앞으로 가. 앞으로 가. 빨리 가. 내가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살거리고 있었다. 인위적인 희망과 파괴적인 채찍을 양 손에 들고 걷는 괴상한 하루들을 보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나다. 여러모로 끔찍하게 옳은 말이었다.

 

그 동안 나는 자신을 상당히 독립적인 캐릭터로 정의해왔다.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책임이 부과되는 갈림길에선 언제나 도움이 필요한 학생과 미숙한 아마추어의 역할을 자처하며, 스승과 친구, 혹은 가족에게 문제를 묻고 나누면서 어려움을 덜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직 나만이 모든 결과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닥치니 패닉에 가까운 공포가 찾아왔다.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내가 가진 확신을 확신할 수 없는 기이한 불안정함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서든 정신을 깨우려고 애썼다. 풍랑 속에서 닻을 놓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선원의 생을 향한 끈질긴 갈망으로. 틀리면 죽는다. 실수하면 죽는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는다. 내가 잘하지 않으면 죽는다. 사실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너무나 가벼이 죽음을 논했다.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대의 죽음. 그런 것일 테다. 죽음이 없길 기도하는 마음 속에는 만약을 위한 레퀴엠이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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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른이 된다는 건가? 오랜만에 한 친구와의 통화에서 마음속 단어들을 마구 쏟아내며 혼잣말을 했다. 주변에 있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불길처럼 번졌다. 엄마와 가족들을 비롯한 옆집 아주머니와 단골 카페 사장님, 지하철 옆자리의 회사원,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어른1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이 책임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고 있고, 어떻게 티 내지 않고 묵묵히 견딜 수 있는 것인지.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자신을 믿고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목표를 성취한 이의 소식이 들리면 일면식도 없을지라도 존경 어린 탄성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튀어나왔다. 흔들림의 시간을 딛고 견고하게 선 사람들이 눈물 나게 부러웠다. 그들 또한 분명히 겪었을 과도기에 놓인 사람으로서, 바라던 것을 손에 쥐지 못할 수도 있다는 알 수 없음이 나를 쥐락펴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말하고 듣고 쓰고 읽었지만 실은 그것이 주문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문의 마력에 기꺼이 걸리고자 하는 바람이 나를 영영 넘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가게 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걷게 한다.

 

더이상 완성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글을 쓰고 나서도, 나는 어떤 완성을 무의식중에 기대하는 것일까? 인간은 영원히 미완일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놓고도 삶의 굴곡에 놓이니 또다시 답을 잃은 채로 방황하는 것이 부끄럽다. 진짜 어른은 어른이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데, 이토록 어른이 되는 과정을 의식하고 애쓰는 나의 모습이 아직 내가 어른이 아니라는 반증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다.

 

그저 복잡한 마음으로 연초를 지나며 세우게 된 조그만 다짐은, 미래의 나를 믿어주는 일. 나는 과거의 나를 믿지 못하고 현재의 나도 믿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의 내 노력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될 수 없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해 걷고 있을 미래의 나를 믿어주고 싶다. 미숙한 운전으로 낯선 길에 접어들었더라도 최종 목적지에 가기 위해 계속 분투하리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예상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해도 그 놀람이 평생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움에 익숙해지고, 익숙했다가도 다시 낯설어지고, 동시에 또 다른 새로움을 만나는 곳이 길이라는 것을 배웠다.

 

길은 헤맬 수 있어도 끊기지 않는다. 길을 계속해서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정말, 그게 사는 것의 전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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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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