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라스트 세션 - 신은 존재하는가? 전쟁 중 펼쳐지는 토론의 장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유신론자 루이스의 만남
글 입력 2022.01.3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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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라스트세션_메인포스터_페어(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날,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직접 만났다. 20세기의 무신론의 대표자인 프로이트와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삶과 죽음, 신,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필자가 보았던 회차는 프로이트 역에 신구님, 루이스 역에 전박찬님이 출연하여 열연을 펼쳤다. 프로이트의 고풍스럽고 아늑한 서재가 무대 배경이다. 학자의 서재와 어울리는 고풍스럽고 앤틱한 소품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어 무대 연출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삶의 의미와 죽음,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유신론자 루이스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삶이란 무엇인가? 왜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주제로 90분 동안 정신분석 학자인 프로이트와 작가 루이스는 각자 강력한 신념과 세계관을 주장하고 펼쳐 보였다.

 

신의 존재 여부를 이토록 간절하게 알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목숨을 건 사활처럼 절박하게 신념을 주장하는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지켜보면서 도대체 어떤 원동력이 이토록 그들에게 강렬한 신념을 외치도록 만들었을까? 궁금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삶과 죽음, 신에 관하여 끝없이 파고들고 탐구하면서 열정을 쏟아부었던 원동력은 그들의 고통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원인을 파악하고 싶었고, 세상의 온갖 불합리한 사건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정말 신이 있다면 왜 도와주지 않은 것인지 이해하고 싶어서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이라 느꼈다.
 
 

22라스트세션_캐포(클린본)_신구(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무신론자 프로이트는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태도로 신을 부정하였다. 자신이 겪어온 고통과 어린 손녀의 이른 죽음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차라리 '몸에 퍼진 암세포 때문에 죽었다'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하길 원했다. 신과 종교를 철저히 부정하고 과학적인 접근 방법만을 인정하였다.
 
프로이트가 신학과 종교를 부정하고 오로지 논리와 이성, 과학적인 접근 방식으로만 삶을 살아가겠다는 태도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모습에서도 드러났다. 한창 전쟁이 벌어지는 긴급한 상황이었기에 전쟁 속보를 듣기 위해서 그들은 라디오를 수시로 켜고 들었다. 이상하게도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프로이트는 황급히 라디오를 껐다. 마치 음악을 잠시라도 듣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모습이었다.
 
프로이트는 섬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지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감정의 흐름조차도 지성으로 이해해야만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음악을 들을 때 자꾸만 감정적인 동요가 생기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 논리적인 생각과는 별개로 자꾸만 마음이 어딘가로 끌리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건 알 수 없는 감정적인 동요가 발생하는 일이라 불안하다고 말하였다.
 
프로이트는 왜 음악을 두려워하며 듣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인간의 무의식과 정신분석 분야에서는 커다란 업적을 세운 지성인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감미로운 음악조차 편안하게 감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는 강박증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 섬세한 희로애락 감정을 느낀다면 자신의 연약하고 위태로운 마음이 밖으로 표출될까 봐 두려워서 모든 감정적인 동요를 거부하는 완강한 태도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22라스트세션_가로프로필(클린본)_전박찬(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유신론자 루이스는 신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였고 자유의지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설령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도 사실 축복을 내리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며 주장하였다. 사람마다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태도 차이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유신론자는 삶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든 전부 신의 뜻이니 내어 맡기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고 믿기에 모든 고통의 원인을 과학과 심리학적 분석으로 이해하고 해결하고자 한다.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전혀 다른 신념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각자의 삶을 통해서 만들어진 세계관에서는 그게 모두 정답이고 옳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신의 존재 여부를 믿든, 믿지 않든 모두 개인의 자유이고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어떤 세계관 필터로 바라보며 삶을 해석할 것인지는 자유의지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연극 후반부에 루이스가 말하는 대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하느님에 대한 개념을 세워도, 매번 그 개념을 산산조각 냅니다. 그런데도 다시 하느님을 믿어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요. 깨어있기 위해서요'
 
이 대목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 대신에 삶 혹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겹쳐 들렸다. 최근에는 삶과 사랑에 대한 개념을 세워도 매번 믿었던 관념이 산산 조각나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알에서 깨어나오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 같았다. 루이스의 대사는 신념이 무너지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또다시 새로운 믿음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되새겨주었다.
 
비록 알 수 없는 혼란과 불안이 시시각각 찾아오는 삶이지만, 삶과 사랑의 본질을 깊숙하게 깨닫고 느끼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어두고 겸허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은 결국 인간이 한층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과정이라 느낀다.
 
 
[이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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