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약간만 취하면 인생은 축제라네요 [영화]

혈중 0.05%의 효능을 믿으시나요?
글 입력 2022.01.30 16: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이 전복되어있다면 거꾸로 매달린 박쥐야말로 올곧지 않을까 하는 것. 그래서 늘 불안정하고 요동치는 게 삶이라면 거기에 맞춰 적당히 고개를 흔들어대면 제법 안정적인 삶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 사람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건지 영화 <어나더 라운드>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다.

 

   

*

본 글은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주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dPG1iOPBWyovN5nll4vtCZ9YmvF.jpg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약간만 취하면 인생은 축제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캐치프레이즈다. 매즈 미켈슨이 주연 마르틴 역을 맡았는데,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와 이미 숨막히는 군중 심리극 <더 헌트>에서 합을 맞추었단 점에서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영화를 못 보고 있다가 예매해두면 강제로 시간을 내서라도 보지 않을까 싶어 고른 영화였는데, 한동안 ost ‘What a life’만 듣고 지낼 정도로 여운이 남고 그 기운이 가시질 않아서 글로까지 남겨 보려 한다.

 

 

KakaoTalk_20220130_160444917_01.jpg

 

 

작품은 인생에 권태를 느끼던 역사 교사 마르틴이 심리, 음악, 체육 담당인 동료 친구 셋과 ‘혈중 알코올 0.05%의 효능’ 가설을 몸소 검증해나가는 얘기를 해나간다.

 

참 연출이 영리하단 생각이 들었다. 철학 얘기를 하고 싶으면 시험 주제로 키르케고르를 둬서 아무렇지 않게 그의 철학을 얘기하고, 심리학 가설과 효능과 논문은 심리학 교사인 니콜라이가 툭 꺼내놓고, 가끔 음악으로 무언가를 자아내고 싶을 땐 음악 교사 페테르가 연주하고 합창한다. 주인공 마르틴은 이야기를 끌어가고, 체육 교사 톰뮈도 극 중 갈등과 불안을 자아낸단 점에서 서사의 도구나 다름없다.

 

그런데 전혀 도구 같지 않다. 창작, 특히 서사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은 도구화하지 않은 것, 혹은 도구를 도구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장치로 무언갈 끼워 넣으면 종종 ‘나는 이 얘기하려고 서사에 끼워 넣어져 있어요’하고 뻔히 의도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장치 자체와 그 안의 의미를 심을 역량이 있다는 것이겠지만, 동시에 영- 세련되지 못해 아쉽단 생각도 든다. <어나더 라운드>는 그 점에서만큼은 전혀 의도치 않은 체 툭툭 모든 도구를 사용하는데, 그게 일명 ‘주제 샤라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게 오히려 좋단 느낌을 줄 정도로 인상 깊었다.

 

 

KakaoTalk_20220130_160444917_03.jpg


 

다시 영화의 줄거리로 돌아와서, 실험의 절대적인 규칙은 대충 이러하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할 것. 저녁 8시 이후로는 금주할 것. (웬만하면 들키지 말 것).

 

수업이 지루하다 못해 엉성해져 학부모의 단체 항의를 받고, 아내와는 관계가 소원해졌던 마르틴은 알코올과 함께 약간의 고취된 기분으로 담대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가족과도 사이를 회복한다. 나머지 친구 셋도 수업에 있어 향상됨을 느끼고, 혈중 알코올 0.05%의 효능을 굳게 믿는다. 그렇게 잘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늘 과유불급이다. 더 높은 알코올은 더 좋은 효능을 줄 것만 같고, 더 많이 마시면 더 즐거움을 줄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이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인간은 그것을 끊임없이 갈망하게 되고 중독에 이르게 되는데, 이 넷도 거기서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막상 선을 넘어섰을 때의 효용도 그다지 크지 않다. 어디서든 효용 체감 이론이 적용되는가 싶다. 0.05%를 넘어서면서 마르틴은 직시하고 싶지 않던 아내의 외도 사실을 마주하게 되고, 심리학 선생 니콜라이는 실망스러운 남편으로 돌아서게 되며, 그리고 체육 선생 톰뮈는 끝끝내 바다 주변을 맴돌다 바다에 영영 잠기기를 선택한다.

 

 


 

 

다소 비극적인가 싶지만, 정체의 고원에서 몇은 벗어나질 못하지만, 또 몇은 다시 일어나 올라선다. 이제는 취해서가 아니라 한 번 넘어졌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상태인데, 그래서 세상이 다시 올곧게 보인다.

 

몇 번 무언가가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혹은 혼자서 발이 엉켜 넘어지는 건 삶의 필연적인 장치일까 싶다. 함께하던 친구의 부재는 허하고, 접착제로 붙여 소생한 아내와의 관계도 딱 맞아 떨어지진 않지만, 어쨌든 다시 맥주 몇 모금하고 제자들의 졸업 향연에서 춤을 추는 마르틴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자유롭다.

 

초반부에 친구들이 보여달라고 해도 약간 장단 맞추고 말기에 아, 뒤에서 춤추겠네 싶었는데, 이렇게 엔딩에 배치했다는 게 참…… 마음을 내려놓고 흘러가는 영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체감상 내내 핸드헬드로 찍었는지 화면의 흔들림이 잦았는데, 마르틴이 춤을 출 때는 그 흔들림과 움직임이 맞아떨어져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일어설 때의 춤사위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

 

보는 내내 맥주 한 캔 곁들이면 좋겠다 싶은 영화였다. 알코올을 마시라고도, 마시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기울어진 세상에선 몇 번 넘어지고서야 정면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요동치는 파도 위 배에 서 있을 때 가만히 서 있으면 그 울렁임이 세게 다가온다. 춤을 추다 보면 몇 번 미끄러지고 엇박자를 타겠지만 어느샌가 파도의 박자와 일체되어 움직일 때가 올 테다. 정적인 삶에서 불안을 느낄 때 <어나더 라운드>를 한 번쯤 가볍게 본다면 참 좋겠다.

 

 

 

에디터 태그.jpg

 

 

[김가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