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더-스탠드', 언더스터디 [연극]

글 입력 2022.01.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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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대체될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만큼이나 비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의 유일무이함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끝없이 부딪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대체가능성을 확인받을 뿐이다.

 

특출나진 않아도 소소한 특별함 몇 가지를 갖추며 살고 싶다지만 그마저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세상이 하나의 무대라면 무대 뒤에 고여 있을 수밖에 이들에게는 무대 이외의 무언가가 주어져야 맞는 게 아닌가.

 

결국 우리는 모두 '언더스터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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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스터디’란 배우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한 대역 배우를 지칭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더스터디는 주연 배우와 같은 배역을 연습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무대에 설 가능성은 매우 적다.

 

특히 더블 캐스팅이 주를 이루는 뮤지컬, 연극계에서 언더스터디의 필요성은 더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연 배우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상황은 무대 감독을 비롯한 모든 제작자들에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설령 무대에 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 만한 분위기는 언더스터디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 언더스터디 제이크가 있다. 그리고 언더스터디의 언더스터디 해리가 있다. 그리고 두 언더스터디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지만 사실은 언더스터디조차 될 수 없었던 록산느도 있다. 허전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세 인물의 모든 말과 행동들이 이야기가, 또 연극이 된다. 무대 뒤에서, 막 뒤에서 오히려 연극보다 더욱 연극 같은 '진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연극 <언더스터디>는 두 명의 언더스터디 배우 제이크와 해리, 그리고 무대 감독인 록산느 총 3명의 인물들이 꽉 채워낸 선물 상자 같은 작품이었다. 극중 인물들은 세간의 큰 관심을 받는 프란츠 카프카의 미공개 작품을 공연하고자 브로드웨이에 모인 쇼비지니스 종사자들이다.

 

이 작품은 야무지게 채운 텍스트, 카프카의 순수한 예술 정신과 쇼비지니스의 생리 사이의 대비, 연극 속의 연극이라는 액자 구조의 활용을 통해 해당 산업의 모순과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삶 속에서 발버둥치는 세상 모든 언더스터디를 향한 서사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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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연극의 강점은 '텔링'에 있다. 브로드웨이의 냉혹한 생태와 상업주의적인 구조, 자본과 스타만을 내세워 많은 이들을 잠재적 '을'로 밀어내버리는 상황들은 오로지 배우들의 '말'을 통해 전달된다.

 

제이크는 카프카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독특한 인물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철학을 갖고 임하기에 오로지 돈을 위해 언더스터디가 된 듯한 해리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곧 그의 진실된 연기에 마음을 열기도 한다. 이는 철저히 인물들 간의 리듬감 있는 대사로 묘사되는 것이다.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브로드웨이에서 예술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을 지닌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순수성을 잃지 않았음에 다행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느새 이들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블랙코미디인 만큼 배우들의 연기가 익살스럽고, 단순한 배경이지만 대사 역시 다채로운 느낌이라 2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최근 스스로의 언더스터디됨에 한숨 짓게 되는 일들이 많았다. 한 몸 올릴 무대를 얻기 위해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비하고 준비하다가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많다. 현실을 지탱하기에 희망은 유약하고 소망은 가볍다. 결국 원한던 영화 배역을 따지 못한 제이크와 갑의 횡포로 인해 무대를 세울 수 없게 된 록산느, 아무런 결정권을 갖지 못해 그 모든 결정에 휩쓸리게 된 해리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 절망의 맛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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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막을 내리고, 셋은 무대에 기여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이 상황에서 새 인물이 흥겹게 춤을 추며 끝내는 결말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 또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도 들었다. 이 모든 엄숙한 절망들을 부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실컷 조롱하는 일 뿐일 테니. 이 무력한 춤조차 그들의 씁쓸한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언더스터디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언제 무대에 오를 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그래도 언젠가 무대에 오를 지 모른다는 연약한 상상력뿐이다. 그럼에도 그 위치에 선 서로를 응원하고, 아직 잔여해있는 순수성들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의미 없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무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언더스터디들과 함께 손을 부여잡고 그저 춤을 추면 되는 일일지 모른다. 그러면 그곳은 무대가 되고, 우리는 진정 배우가 될 지도 모른다. 아래에 서 봐야(언더-스탠드) 세상을 높이 볼 수 있다.

 

세상 모든 언더스터디들에게, 삶이라는 무대 위의 주체적 배우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바치는 이 연극은 그렇기에 큰 울림을 준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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