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아홉 번째 이야기 : 비어있어(空)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共)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1.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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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산의 한 술집에서 인근 대학교수들의 출입 자제를 요청하는 ‘노(No)교수존’ 공고문을 내걸어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진 적이 있었다. 더욱이, “내가 여기 교순데!”라고 말하며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었던 ‘진상’ 손님들을 거부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는 업주의 ‘실언 아닌 실언’도 함께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끝내 대학교수협의회 측의 방침 철회 요구를 업주가 받아들이면서 해당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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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머니투데이)

 

 

그 무렵 서울에서는 한 캠핑장 업체가 40대 이상 커플 손님의 예약을 받지 않겠다며 '노(No)중년존’을 선언해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있었다. 시설의 특성상 2030 젊은 여성 고객의 취향에 맞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중년 고객으로 인한 폐해가 큰 만큼 부득이하게 특정 연령대 손님의 예약을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오죽하면 저러겠나” “고충을 알 것 같다”라며 업체 측을 옹호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연령 차별(ageism)을 조장한다며 거센 비판을 제기한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가지 사례 이외에도 ‘노(No)커플존’이나 ‘노(No)튜버존’, 얼마 전 새롭게 등장한 ‘노(No)미접종자존’에 이르기까지 매장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여겨지는 특정 손님들의 출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거나 일부 제한하는 이른바 ‘노(No)-존’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남에 따라 한동안 잠잠했었던 ‘노(No)-존’ 논쟁에도 다시 한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No)키즈존’ 논쟁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그야말로 ‘노(No)-존’ 논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이들을 동반한 보호자(부모)의 출입을 제한하는 업장을 가리키는 ‘노(No)키즈존’의 유래는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부산의 한 음식점에서 일어났던 아동 안전사고의 책임 소재를 두고 법원이 보호자인 부모가 아닌 업주와 종업원에게 조금 더 큰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후 유사한 사고들까지 발생하면서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커져만 갔다. 결국,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버린 자영업자들은 하나둘 ‘노(No)키즈존’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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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그러던 중, 지난 2017년에는 ‘노(No)키즈존’ 매장 관련 진정 신청 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노(No)키즈존’ 운영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당시 안전상의 이유 등을 들어 13살 이하 모든 아동의 매장 이용을 일절 제한한 제주도의 한 식당에 대해 내린 평등권 침해 판결과 권고 조치가 법적 강제성이 없었던 탓에 실질적인 개선과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식으로 안일함을 보여준 법이 더 많은, 더 다양한 자영업자들로 하여금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잠재적) 손님들의 인식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팽팽한 줄타기를 하던 여론이 조금씩 찬성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설문조사에서는 약 70%가 넘는 응답자가 업장의 환경이나 분위기 개선은 물론, 각종 안전사고 예방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노(No)키즈존’에 찬성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노(No)키즈존’의 ‘주요 타깃’이 되는 영유아/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둔 부모들마저 충분한 정보 공개가 전제된다는 하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찬성이 전체 응답의 절반을 밑돌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물론, 단순 마케팅을 위해 ‘노(No)-존’을 악용하는 일부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노(No)-존’이 처음부터 특정 대상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고자 의도되었던 것은 아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사적 공간인 만큼 업주에게는 운영 방침을 비롯해 운영 전반에 대한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노(No)-존’ 운영 여부와 별개로 업주가 자신에게 있었던 사정이나 상황을 이야기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는 만큼 누군가에게 있어 ‘노(No)-존’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No)-존’이라는 명백한 의미의 차별 행위가 정당화될 순 없는 노릇이다. '노(No)-존’은 어디까지나 특정 공간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두고 형성된 업주와 손님 간의 복잡 다양한 이해관계와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기본권 간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조화롭게 풀어가기 위해 ‘제한적으로’ 허용된 하나의 방법론적 도구일 뿐이다.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것이라고 ‘판단된’ 도구일 뿐이다.


이는 나아가, '노(No)-존의 사례로 말미암아 여전히 우리 사회가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반드시 보듬어야 하는 또 다른 차별의 문제들을 일방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아직까지 충분한 사회적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대안을 마련하지는 못했으나 각자의 권리 행사를 통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려는 기본권 주체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먼저 보여줄 수 있다면, 그래서 어떠한 공감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이기만 한 다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차별이 ‘나쁜’ 이유는 '우리'가 '우리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너와 나'(both) 가 아닌 ‘너 아니면 나’(or)의 문제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 의도와 상관없이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우리를 ‘무감각’과 ‘무관심’의 상태로 몰아넣기 때문이며, 마치 차별이 ‘착하고 좋은’, ‘옳고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끔 우리를 기만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그저 덩그러니 비어있는(空) 곳이 아니라 비어있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共) 지금 이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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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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