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스물여덟이 되기로 했다 -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영화]

글 입력 2022.01.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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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The Kirishima Thing, 2014

 

감독 : 요시다 다이하치

배우 : 카미키 류노스케, 하시모토 아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평범한 금요일 오후. 학교의 최고의 인기인인 ‘키리시마'가 배구부 활동을 그만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배구부원과 친구들은 갑작스런 키리시마의 행동에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가 흐른다. 한편 히로키는 주장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야구부 활동을 선뜻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 영화부인 마에다는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기들이 찍고 싶은 영화를 찍으려 하지만 좀처럼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키리시마가 학교를 왔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다 같이 그가 있다는 옥상으로 향하는데.

 

***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영화부인 마에다는 친구들과 함께 좀비 영화를 찍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청춘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반경 1미터 내에서 주제를 찾아보라고 권한다(하지만 정작 ‘청춘의 리얼리티’를 그려냈다며 호평을 받았다던 <그대여 닦아줘요>는 대회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억지로 만들었던 마에다의 청춘 영화는 전교생으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이에 마에다는 선생님 몰래 친구들과 진짜로 만들고 싶었던 좀비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한편 야구부에서 에이스로 활약하던 히로키는 돌연 동아리를 탈퇴해 버린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진로 희망서를 나눠주며 가고 싶은 대학을 적어 제출하라고 하지만 히로키는 내용을 보지도 않고 가방 안에 집어넣어 버린다. 왜냐하면 그에겐 가고 싶은 학교도, 하고 싶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길을 걷던 히로키의 눈에 야구부 선배가 운동을 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사실 그 선배는 야구에 대한 재능이 별로 없다. 3학년이 되었지만 어떤 대학도 그 선배를 지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렇게 노력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히로키의 마음은 뜨끔했다. 결국 히로키는 그 자리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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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았다. 어렸을 땐 이맘때쯤이면 항상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 가서 묵은 때를 밀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일이 많아서, 또 코로나19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하루라도 빨리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다시 목욕탕에 가고 싶을 따름이다.

 

한편 새해를 맞이하면 내 나름대로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다이어리를 사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기를 쓰진 않는다(시도를 하긴 했지만 습관이 드는 데에 실패했다). 나의 다이어리는 사실 스케줄러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일은 공백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다는 점에서 항상 설렌다 하지만 채워 넣는 설렘은 항상 무엇을 채워 넣을지에 대한 고민과 비례하는 법. 설렘이 커지면 고민도 따라 깊어진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채워 넣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료들과 퇴근 후 술을 마시러 갔다. 서로 술잔을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해 목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MBTI가 ENTJ라던 동기는 자신이 세웠던 목표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했다. 그에 반해 아직 아무것도 세우지 못했던 나는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벌써 1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애석하게도 별거 없었다. 기분이 우울해졌다. 과거 어느 시절의 나를 또다시 보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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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영화를 찾았다. 내가 본 건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라는 일본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는 건 벌써 세 번째다. 아마 국내에서도 이 영화를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일단 제목부터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서 ‘키리시마’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주인공처럼 생각되는 이 인물은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뒷모습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상상 속의 동물처럼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만 언급될 뿐이다. 덕분에 우리는 키리시마가 남학생이며, 굉장히 잘생기고 다재다능한 학생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정작 중요해 보이는 왜 그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서 갑작스레 배구 동아리를 그만뒀는지, 왜 그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등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대신 영화 속에는 다른 아이들이 등장한다. 히로키와 마에다. 카스미와 미카. 라사, 사나, 후스케 등등. 이름은 물론 성격도 관심사도 모두 다른 이 아이들은 흥미롭게도 한 가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재능’과 ‘흥미’ 사이의 문제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일이긴 하지만 나의 재능이 너무나도 모자라다면? 혹은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이지만 그것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면? 혹은 재능과 흥미가 둘 다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어쩌면 아이들이 키리시마를 계속 찾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팔방미인인 ‘키리시마’는 아이들에게 말 그대로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는 재능과 흥미 사이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을 선택하든 그는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자신감도 넘치고 리더쉽도 뛰어나니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적과 의지도 충분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키리시마가 필요했다. 재능과 흥미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에게 키리시마라면 답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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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를 보다가 나는 과거를 떠올렸다. 나는 음악을 했었다. 실용음악과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 학원에 갔을 때만 해도 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남들보다 준비가 조금 늦긴 했지만 아직 남은 시간은 충분했고, 스스로도 작곡에 정말 재능이 있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기대가 나의 착각과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피아노 실력은 더디게 늘었고, 힘들게 쓴 습작들은 형편없었다. 이제 레슨은 그동안의 연습량을 점검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냥 혼나는 시간이었다. 그저 어제보다 덜 혼나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부지런하게 연습한다면 훨씬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년쯤 지나자 진실이 차츰 눈에 들어왔다. 내가 믿었던 나의 재능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슬픈 일이었다. 학원에서는 구제불능의 천덕꾸러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이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음악을 그만두었다.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내가 가진 재능의 한계를 알았을 때 내겐 더 이상 그 고집을 이어나갈 용기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책과 책상 앞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은 항상 우리에게 네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재능과 흥미가 일치하는 일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까지 가르쳐주진 않는다는걸.

 

이후로도 종종 그런 일은 있었다. PD가 되고 싶어서, 작가가 되고 싶어서. 혹은 좋은 경력을 얻기 위해, 하다못해 영어를 잘 하고 위해 등등. 무언가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적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의 재능과 흥미는 한 발짝씩 모자랐고,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일이 부담스러워졌고, 하기 싫은 일들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덕분에 나에겐 여전히 확신이 없다. 어쩌다 보니 문화콘텐츠를 전공했고, 콘텐츠 마케팅 관련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게 나의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화콘텐츠학과를 선택했던 건 자기소개서를 그나마 쓰기가 편했기 때문이었다(3년 내내 학원만 다니느라 다른 아이들처럼 학생부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콘텐츠 마케팅을 선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요즘 나도 히로키가 그랬던 것처럼 자주 무기력증에 빠진다. 벌써 10년이나 지났지만 18살의 나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을 하는 게 내겐 점점 더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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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엔 영화감독이 되는 거야?”

“영화감독은 무리야.”

“그럼… 어째서 이런 지저분한 카메라로 굳이 영화를 찍는거야?”

“가끔은 말야. 우리들이 좋아하는 영화랑 우리들이 찍고 있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냥 그게 좋으니까.”

 

 

그렇다면 재능과 흥미가 일치하지 않는 삶은 불행한 삶일까. 목표를 세웠으나 그 목표를이루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인생일까. 글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가 들려주는 대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결국 키리시마를 만나지 못 했다. 남겨진 그들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료타는 키리시마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리사는 키리시마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에다는 좀비 영화를 마저 완성할 것이고, 히로키 역시 미뤄왔던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아이들이 내린 선택의 결과를 알지 못한다. 만약 기존의 청춘 영화였다면 감독은 우리에게 키리시마가 떠난 후, 남겨진 배구부원들이 죽을 둥 살 둥 노력하여 키리시마의 공백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 독특한 청춘 영화는 대신 우리에게 마에다와 히로키의 대화를 보여준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냐고 묻는 히로키에게 마에다는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도대체 왜 영화를 찍는 거냐고 히로키가 다시 묻자 마에다는 지금 그게 자신이 가장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말에 히로키는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이게 도대체 무슨 결말인가 싶었다. 히로키는 왜 울었을까. 마에다와 달리 하고 싶은 게 없는 자신이 부끄러워서였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엔 그 뜻을 조금이지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위로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히로키와 마찬가지로 마에다의 그 말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나도 위로를 받았다.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살아가야만 하니까.”

 

 

영화 속에서 마에다는 잊지 말라는 듯 옆에서 자신들이 만드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계속 읽어주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그 말이 조금 오글거리긴 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나 역시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이 없긴 마찬가지다. 전공을 따라서,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해온 결과물들을 따라서 이 일을 선택하긴 했지만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즐거워하고 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어쨌거나 모두가 성실하게 하루를 살고 있다. 재능이나 흥미와는 상관없이. 히로키의 야구부 선배처럼, 혹은 키리시마 대신 리베로를 맡게 된 료타처럼 말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 성실함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밌다고 느끼는 때를, 그 일을 해낸 스스로가 뿌듯할 때를 안겨주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마에다가 말했던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지금 찍고 있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느꼈을 때’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나의 목표는 ‘스물여덟이 되는 것’이다.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토익 만점을 받는다거나, 직장에서 광고 매출 얼마를 달성한다거나 등의 크고 작은 목표가 없더라도 우리가 매일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올해만큼은 ‘목표’에 매달리기보단 ‘하루하루의 성실함’에 매달려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평생 왔다 갔다 할 운명이라면 걱정 많은 미래보단 할 일 많은 현재에 보다 충실하기로 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도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문득 달력을 보다가 벌써 1월의 절반이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올해는 과연 나에게 어떤 해가 될까. 올해도 여러 변화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7년간 붙어있던 학교를 떠나 졸업을 하고 이사를 간다. 직장에서도 아마 다른 팀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로 걱정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일상이 달라지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올해도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무사히 스물여덟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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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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