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괜찮다, 내 털쯤은. [도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글 입력 2022.01.1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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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인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원숭이 인간이다. 세상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인간이라는 부류에 속하지도 못하는 원숭이다. 계속 깎아내지 않으면 수북하게 자라나는 털 때문에 그는 미칠 지경이다. 사람인 척 밖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털을 깎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는 남들보다 이른 새벽에 기상해 털을 깎는 행위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것은 털뿐만이 아니다. 자꾸만 원숭이처럼 굽어버리는 등을 더 이상 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는 헬스클럽을 다닌다. 허리를 강화하기 위해 매일 같이 열심히 기구를 들었다. 직립 보행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달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땀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리며 뛰기도 했다.

 

그는 나름대로 순응한 것이다. 본인이 원숭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지만 받아들인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그 사실을, 본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했다. 그가 말하기를, 남들처럼 ‘인간답게’ 살기 위해, 원숭이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매일 같이 운동했다고 한다. 또 하나, 미친 듯이 책을 읽어 댔고 공부에 매달렸다. 단지 남들처럼 똑같이 살기 위해. 원숭이가 아닌 인간으로서.

 

그는 매일 같이 운동한 탓에 대학에 들어갈 무렵 굉장히 탄탄한 몸을 가지게 되었고, 공부에 매달린 만큼 지적 수준도 상당해졌다. 그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자 발버둥 쳤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몸짱 엄친아’라는 별명으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원숭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너무나 완벽한 그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빠졌다.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는 종종 혼자 영화관에 가곤 하는데, 그곳에 본인처럼 늘 혼자 오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용기 있게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보지만, 이후에 연락을 망설인다. 이유는 그가 사람이 아닌 원숭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도 아닌 원숭이가 그렇게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해도 되는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좌절한다.

 

친구 없는 외로운 삶을 살아온 그는 어느 날 밤 용기 내어 그녀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렇게 둘은 가까워진다. 그는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그럴수록 본인이 원숭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된다. 그녀에게 ‘나 사실 원숭이야.’라고 고백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심 끝에 결국 말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기에.

 

“괜찮아, 니 털쯤은.”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간결하고 감사했다. 그는 그녀에게 나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원숭이라고 정체를 고백했고, 털이 매일 자라나고 원숭이처럼 변해 가는 몸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몇 십 년 동안 노력한 과정을 털어놨다. 그녀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침착했다.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으며 그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의 피나는 노력에 위로를 전하기도 했고 앞으로도 그 노력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그녀는 헤어짐을 얘기한다. 그는 역시 자신이 원숭이라서 그런 것이냐고 묻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답한다. 니 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 때문이라며, 그녀는 여느 평범한 연인처럼 평범한 이별을 전한다.

 

그녀와는 헤어졌지만, 그는 가끔씩 그녀를 떠올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괜찮다, 내 털쯤은.”

 

오늘도 그는 원숭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남들보다 이른 아침을 맞이하며 운동화 끈을 조이고 밖을 나선다.

 

 

 

괜찮다, 내 털쯤은


 

우리는 누구나 원숭이 인간이다.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콤플렉스(complex)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실제로 원숭이라면, 그의 몸에 수북한 털이 매일 자라나고 등이 휘고 직립보행이 어려운 것이 그에게는 콤플렉스일 것이다. 콤플렉스의 존재를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면 그는 엄친아라는 별명을 가진 뛰어난 사람이 아닌, 속 편한 원숭이로 변한 채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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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것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까지 심적으로 꽤나 복잡한 과정을 거칠 때도 있다. 소설 속 '그'의 태도에 내가 감명받았던 이유는,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원숭이로 살아갈 뿐이다. 그뿐이다. 그렇다. 그뿐이다.'

 

나는 과연 나의 콤플렉스를 저렇게 의연한 태도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던가, 되짚어 보았다.

 

요즘 시대에 '자존감'이라는 키워드는 굉장히 주요하다. 자존감을 높이는 법, 자존감이 낮으면 안 되는 이유 등의 다양한 제목을 건 자존감 관련 콘텐츠도 무수히 많다. 그래서 도대체 자존감이 높다는 것은 뭘까?

 

자존감의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면,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인 다음에야 우리는 비로소 '발전'이라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정하고 노력으로 극복하는 것이 더 나은 삶에 가까워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의 성격 중 어떤 부분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꽤나 생각이 많은 편인데, 생각이 깊어지고 고민이 길어질수록 괴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서 생각은 멈출 줄 몰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굴레를 잠시 멈추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그게 스스로를 편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억지로 성격을 바꾸고자 했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지만 이제는 괴롭지 않다. 그냥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수용이 결국 스스로를 가장 편하게 만드는 방법이 되었다. 수용하기 시작하자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의외의 장점을 발견할 때도 있었다. 깊은 생각이 섬세한 행동을 불러일으켜 타인을 배려할 수 있었으며, 신중하게 고민한 탓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다.

 

소설 속 '그'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은 하면서도, 그 모습 자체를 괜찮다고 보듬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스스로가 아닌, 타인인 그녀에게서 괜찮다고 보듬어줄 것을 바랐다. 어쩌면 그는 타인에게 원숭이여도 괜찮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괜찮다, 내 털쯤은.' 주문을 거는 그의 모습이 한 단계 더 단단해진 그의 미래를 그려보게 만든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어떠한 모습조차 용인하며 살아갈 때, 존재는 조금 더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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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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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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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밤
    • 백퍼 공감합니다.  자존감은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듯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 아닌 자존심만 높아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며 살아 가는듯 합니다. 잘읽고 상당히 공감가는 글이라 댓글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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