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에 남는 아르코미술관의 전시들 [전시]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 가운데 땅 :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글 입력 2022.01.0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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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 버블’을 깨뜨리는 전시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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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르코미술관을 자주 가는 편이다. 이번 글에는 인상 깊게 본 두 전시를 기억할 겸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할 전시는 2020년 5월 8일부터 6월 21일까지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이다. 이 전시의 제목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서 빌려왔으며, 소설은 1930년대 부산에서 오사카로 건너간 재일교포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책의 주제는 “소속감 없이 떠도는 이방인의 슬픔과 분노”이다.


이러한 책의 주제와 관련하여 예전에 한 라디오에서 들었던 난민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난민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우리가 사는 사회와 역사 속 분리될 수 없는 자아의 개념을 인지해야 한다고 한다. 개인은 각자가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자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또 난민은 이 사회적 배경이 상실되어 자아의 상실까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사라지는 경험 속에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와 관해 고뇌와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인식 속 정체성은 전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 전시는 승자와 다수의 역사가 아닌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인물들에 주목하고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 소개에 등장하는 “역사 서술의 규범은 누가 정의해 왔으며, 아직 그 역사의 일부가 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역사에서 배제된 존재를 다시 인식하게 한다.


소외의 존재를 만드는 기울어진 사회와 개인의 편향된 시각과 관련하여, ‘필터 버블’의 개념도 연상된다. 이 정의는 필터링을 거친 정보만을 받아들여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없도록 버블에 갇힌 개인을 비유한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에 빗대자면 전시는 역사 속 ‘필터 버블’을 깨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국극, 장애여성극단의 퍼포먼스 등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그들의 움직임에 녹아들게 하면서 말이다. 즉 끊임없이 정보가 제공되는 현 사회의 필터 버블을 꼬집으며 감추어졌던 시각을 제시한다.


필자는 세 명의 작가들 작품 중에 제인 진 카이젠의 <이별의 공동체> 부분이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작품은 구전 ‘바리공주’ 설화에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는데, 작가는 설화를 다르게 구성하여 바라본다. 기존 바리공주는 버려졌던 공주가 죽은 부모님을 살리는 이야기로 ‘효도’에 초점을 맞추어 유명하다. 그러나 작가는 공주가 버려졌다는 점, 바리공주가 삶과 저승 사이를 연결해준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젠더적 문제, 여성의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억울한 죽음에 대해 깊게 표현했고, 더 나아가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들과 연결 지어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어떻게 여겨져 왔는지 생각해보게 했다.

 

더불어 전반적으로 공간 기획력이 돋보였다. 입구에서 여성국극을 선보임으로써 주제를 암시하였고, 초반부에 <반도의 무희> 영상 속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인 최승희를 보면서 그 공간에서 마치 무용수가 탈주하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이 작품이 배치된 안쪽에는 둥그런 하나의 공간이 또 있었는데, 여기서는 정은영의 작품을 통해 장애여성극단의 연출가이자 배우, 트랜스젠더 음악가 등 다양한 인물의 춤과 몸짓을 통해 문제의식을 폭넓게 담아냈다.


1층 전시관에서는 남화연과 정은영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고 2층으로 갈수록 깊이감 있는 흐름이 계속 이어졌다. 2층에서는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이 있으며, 설화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식을 보여주며 향후 역사의 시각은 어때야 하는지 물었다. 마치 달의 반대편을 보여주듯이, 전시는 역사 속 기억되지 못하고 서술되지 못했던, 다른 진실을 날카로운 가시처럼 다가오게 했다.

 

 

 

펜데믹 시대, 파편화된 사회를 봉합하는 전시

《그 가운데 땅 :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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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전시는 2021년 4월 22일부터 6월 13일까지 진행된 《그 가운데 땅 :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이다. 전시 제목 중 ‘가운데 땅’은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세계관과 관련 있다. 그의 세계관 속 중간계 개념은 ‘우리가 살아가는 ‘땅’이 되며, 전시는 중간계, 땅의 역사를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궁극적으로 삶의 터전에서 반추하는 ‘작은 역사’와 그에 따라 선과 악이 뒤섞여있는 복합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그 이야기 속 개인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다섯 개의 큰 서사로 진행된다. 1막에서는 가운데 땅의 역사를 보여준다. 여기서 최하늘의 작품 <앉아서 휴식 중인 조각>과, <문성식의 그림을 보고 있는 조각>이 인상 깊었다. 위 작품을 위치함으로써, 피상적인 것에만 신경 쓰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담으려는 의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앉아 있는 조각의 옷은 실제 외투이고, 그림을 보고 있는 조각은 실제 아이폰을 들고 있다. 마치 문성식의 작품을 휴대폰을 들고 보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입고 있는 옷이나 소지품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강해진 요즘, 옷으로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고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존재도 흥미롭게 담아냈다.


2막이 진행되면서 김수자 작가의 작품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의 <개척된 성명들>이라는 작품은 검은색 배경의 카펫 위에 하얀색의 이름들이 적혀있다. 굳이 작품을 카펫으로 한 이유는 아마 약자와 강자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동물만큼의 취급도 받지 못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강제 노역에 희생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카펫이 아늑함을 위해 존재하고, 쉽게 밟히는 존재인 점을 활용해 인종차별의 문제를 전했다.


또 작품의 제목, <개척된 성명들>에서 ‘개척되다’는 “거친 땅이 일구어져 논이나 밭과 같이 쓸모 있는 땅으로 되다.”라는 의미이다. 작가는 단지 ‘쓸모’라는 이유로 개척된 땅에서 많은 이들이 죽어갔던 역사를 기억하길 바라고 있다. 또 이전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시위부터, 동양인 혐오 문제가 커졌던 시대상과 맞물려, 전시는 타 집단을 배제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하며 우리의 중간계를 다시 찾는다.


*


지금까지 살펴본 두 전시 모두 혐오, 소외, 무고한 희생의 문제를 마주하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파편화된 이들을 다시 봉합하고 있다. 이렇게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주제로 열리는 전시들은 아르코미술관으로 즐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1) 아르코미술관 사이트 전시 도록 및 월텍스트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그 가운데 땅 : 시간이 펼쳐져 땅이 되다》

2) 네이버 지식백과 ‘필터 버블’, 네이버 국어사전 ‘개척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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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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