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와 F 사이 [사람]

MBTI로는 정의할 수 없는 것들
글 입력 2022.01.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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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MBTI를 묻는 것은 하나의 필수적인 절차가 되었다. 네 글자의 알파벳은 상대방의 표면을 조금 더 빨리 알 수 있게 해준다. 사람의 성격을 어찌 열여섯 가지의 유형으로 전부 구별할 수 있겠느냐만, 사실 MBTI의 진짜 의의는 그 정확성에 있기보다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MBTI별 특징을 핑계 삼아 우리는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다. 이렇다는데, 너도 진짜 그래? 라며 오가는 질문들 사이에는 결국 너라는 사람이 궁금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외향(E)과 내향(I), 감각(S)과 직관(N), 사고(T)와 감정(S), 판단(J)과 인식(P)을 나타내는 네 개의 알파벳으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나름 MBTI 맹신론자를 자처하지만, MBTI에 사람을 귀속시키는 태도만큼은 항상 경계하려고 노력한다. 참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 성격을 어찌 두 가지로 양분화해서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극단적인 MBTI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 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의 속성을 찾고 싶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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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끔은 MBTI가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 야속할 때가 있다.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사고와 인식 중심인 사람”보다는 “새벽 시간과 영화를 좋아하며 혼자 하는 산책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하고, 낯을 가리는 사람” 이라는 자기소개가 조금 더 따뜻하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핵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구구절절 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새삼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구구절절한 얘기들을 듣고 싶어진다. 나와 같은 시간을,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인지. 하나의 신년의례와도 같이, 새해 첫날 저녁 침대에 누워 MBTI 검사를 다시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똑 같은 알파벳이 화면에 보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나를 표현하는 알파벳이었던 INTP. 올해도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MBTI를 물으면 INTP라 답할 것이다.


신기한 것은, 오랜 시간 내 곁에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나의 MBTI를 INFP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이 바라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궁금해 제 MBTI는 무엇일 것 같아요? ㅡ 라고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INFP일 것 같다는 대답을 하곤 한다. 감정기능인 F가 아니라 사고기능인 T 라고 말하면 당연히 F일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감정형과 사고형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 능력을 꼽곤 한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을 잘하면 F, 공감을 잘하지 못하면 T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하다. 나는 공감을 아주 잘하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의 고민이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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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무게가 있다. 털어놓기 어려운 얘기를 한다는 건 듣는 사람도 이야기의 무게를 느껴야 함을 의미한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나와 공유해주는 건 상대방이 나를 이야기를 해도 믿을 만 한 사람이라 판단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화를 할 때는 가벼이 들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이입해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이나 상황을 그려보려고 노력한다. 대화의 소중함을 알기에 내가 공감하지 못한다면 문제에 대해 생각해서라도 대화에 속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분석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일이 아닌 내 개인적인 일에 있어서는 항상 어떠한 문제 상황이나 선택지를 최대한 이성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나의 주관대로 중심을 잡고 최대한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선택에 있어서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기 싫어 감정을 배제하고 생각하려 하고, 한번 결정한 뒤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나는 T 유형의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한다.


보편적인 T와 F 유형에 대한 또 다른 고정관념으로는 F 유형은 감성적인 것을 좋아하고, T 유형은 감성에 매말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감동받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며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으며 노래를 듣고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감정 표현에 서투른 편인 나는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들을 통해 흐르는 감정들을 느끼는 일이 좋다. 영화 대사나 책의 문장, 노래 가사 속의 솔직하고도 아름다운 말들이 좋다.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나 슬프고 건조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느끼는 것도 좋지만, 왜 그렇게 표현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아한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정보를 알아보는 것과 내 경험과 연결 지어 무언가를 끌어내는 일도 나에게 성취감을 주는 일이다. 나는 감정적인 것에 잠시 몸과 마음을 내맡기는 것도, 분석하고 사고하는 것도 모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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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가끔 MBTI의 T 유형인 사람들이 차갑고 기계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고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네 글자의 알파벳은 분명 사람의 표면을 얕게나마 알게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알파벳이라는 박스에 갇혀 누군가를 섣불리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올해에는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복합적이다. 그래서 사람은 재미있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인 사회는 풍부하다. 누군가를 만나면 MBTI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쉽게 상대방을 파악하는 게 더욱 간편할지라도, 조금 더 아날로그적으로 누군가를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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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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