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이 삶을 여정하는 방법 - 소마

글 입력 2022.01.0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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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에세이를 몇 편 작성했다. 이유가 뭐든 간에 속내나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기에 늘 다른 주제에서 글감을 찾곤 했다. 그런 내가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제껏 멀리했던 에세이를 쓰고자 했던 걸까. 그간 썼던 주제와 일기장을 가득 메운 이야기들,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을 한데 모아 살펴본 결과, 나는 ‘인간’에 대해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었다. 물음표로 채워진 물이 넘쳐 흐를때쯤 의문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조금씩 해소할 수 있었고, 여전히 내 안의 수조에는 ‘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주제가 넘실거리며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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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는 인간의 모습을 주인공의 여정에 빗댄 이야기다. 저자 채사장은 아주 오래 인간의 본질, 내면, 의식에 큰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느끼는 주제이자 가장 어려워하는 주제를 소설이란 형식을 빌려 주인공인 소마를 통해 표현했다. 이전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에서 선보인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가는 법이 이번에도 적용되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지만, 그 안에 정치, 종교, 사랑, 사회 등 여러 지식이 바통을 터치하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책은 총 6부로 어린 소마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화살을 찾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걸음을 옮기던 중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미지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신으로 추측되는 그 존재는 소마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았고, 다음 날 마을로 돌아간 소마는 쑥대밭이 되어버린 마을과 시신으로 남겨진 부모님의 모습을 목격한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엄마의 품에서 소마가 잠이 들면서 1부는 마무리된다.

 

소마는 기억을 잃은 채 엘가나라는 남자에 의해 그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사무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그 안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던 중 자신의 또래인 헤렌이 집안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와의 악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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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렌은 자신을 ‘빛’, 소마를 ‘어둠’이라 칭했고, 어둠이라는 명칭이 단단히 묶여 사라지지 않게 소마를 열심히 괴롭힌다. 그러나 소마는 이에 대항하지 않고, 묵묵히 그 무게를 받아낸다. 소마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집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서도 아니었고, 헤렌보다 힘이 약해서도 아니었고, 괴롭힘에 해탈한 상태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당연해서였다. 소마는 이러한 현실이 비윤리적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고, 세상이 그에게 내리는 가혹함은 자연과도 같아서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소마의 인생에서 선택권이 있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소마가 생에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한 선택은 용병이 되는 것이었다. 비록 훈육 기사인 다닐로의 괴롭힘과 다른 용병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늘 그래왔듯 작은 반항 없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훈련을 받는 고네와 네이케스의 제의로 그들의 무리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된다. 바로 ‘내일의 세상’을 준비하는 것. 모든게 당연한 이 세상이 실은 누군가로 인해 변화할 수 있음을, 그게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소마는 깨닫게 된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바람과 같고 물과 같고 햇볕과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배경처럼 원래 거기에 그렇게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이 주는 슬픔과 고통은 당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담담하게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의심 없이 믿어왔던 것이다.” -140p
 

 

헤렌의 악행으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고네를 잃은 소마는 어느새 아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전장의 신이 되어있었다. 그가 세 번째 이름으로 불리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속에서 고네의 죽음을 오해하고 있는 네이케스와의 악연이 시작됐고, 소마는 계속 싸워왔으며, 어린 시절 시작된 헤렌과의 악연은 끝날 줄을 몰랐다. 처음의 다짐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칼을 휘둘러온 소마는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그득한 늙은이인 동시에 세상을 군림하는 군주가 되었다.

 

내일의 세상을 바라던 소마에게 드디어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나씩 변화를 주었다. 전쟁도 끝났고, 복수도 끝났고, 원하던 목표도 이루었지만, 소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잠식해갔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긴 시간을 쉼 없이 달려왔는지 허무해 있기도 잠시, 좋은 것만 주려 했던 세상은 자신을 배신했고 하루아침에 유년기의 버림받은 소마가 된다. 여기까지가 소마의 여정을 담은 5부까지의 내용이고, 6부에서는 오로지 소마의 내면세계만을 다루면서 책은 마무리된다.

 

*

 

정말 길었다. 평소였다면 줄거리 정도는 가볍게 짚고 넘어갔겠지만, 이번은 그럴 수 없었다. 나의 필력으로 고작 몇 줄 안에 소마의 인생을 담기엔 너무도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의 본질을 소마의 인생에 빗대어 표현한 만큼 그 모습이 조금이나마 비치길 바랬다.

 

1부와 6부는 유년기의 소마로 형식이 매우 비슷했다. 이를 단순히 수미상관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저자는 뜻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소설은 소마의 삶의 시작과 성장, 끝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을 다루니 마지막은 집에 돌아와야 한다고. 여행을 마치면 반드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하니까.

   

 
“그렇게 소마의 시간은 세계의 거대한 시간에서 지류로 갈라져 나와 무한히 펼쳐진 공간 위로 새로운 물길을 내며 굽이굽이 헤매었다. 누구도, 그 무엇도 그의 항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시 세계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결정은 온전히 그에게 맡겨져 있었다.” -269p
 

 

소마는 죽음을 맞닥뜨릴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삶을 이어갈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그때마다 소마의 내적 투쟁은 치열하게 일어났고, 소마는 매번 삶을 이어가는 선택을 했으며, 이어지는 삶에서 다시금 찾아오는 시련의 몫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냈다. 그가 삶을 선택한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을 거로 생각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거나 눈앞의 죽음이 두려웠거나. 간절히 죽음을 희망하더라도 고통에 다다른 순간 삶으로 복귀하고픈 모순된 욕망으로 가득한 게 인간이기 때문에, 후자의 이유였다면 소마 역시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선택 앞에서 소마의 결정과 그에 이르기까지의 내적 투쟁을 통해 저자는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혼란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것 같다. 일어설 것인지 주저앉을 것인지, 맞서 싸울 것인지 한 발 뒤로 물러날 것인지, 이겨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달릴 것인지 멈춰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두려웠던 적이 있었다. 사소한 선택이 불러올 결과의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가 없어서, 그 책임을 온전히 내가 져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무서웠다. 내가 책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은 꾸준히 있었고, 무게를 덜기 위해서는 변명이라는 이름으로 탓을 돌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늘 타인의 의견을 구한다는 이유로 은근슬쩍 그 무게를 그들에게 덜어줬다.

 

당사자들은 모르지만 ‘걔가 너무 확고하게 밀어붙여서’ 따위의 변명은 자기합리화를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이야 내 삶 어딘가에서 발생하는 선택의 책임은 내 몫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지금과 꽤 달랐다. 중세시대를 살아가는 소마의 모습에서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어렸던 내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자신과 다른 타인에게 흥미가 생기고, 거울 속의 자신을 때론 이해할 수 없음을 느낄 때, 인간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복잡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인간의 여러 모습 중 앞선 대목을 통해 오직 ‘살면서 수많은 선택지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만을 담았지만, 이외에도 오랜 시간 인간의 내면에 대해 고찰해온 저자의 고민이 정말 많이 책에 담겨있다. 만약 저자처럼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거나 요즈음의 나처럼 인간에 대한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하거나, 또는 삶의 조각 형태가 궁금한 이들이 있다면 얼른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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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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