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광야를 찾아서 - 살바도르 달리展

글 입력 2022.01.0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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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살바도르 달리전 ver.2.jpg



미술전은 두 번째였던가? 이 전시관의 초입이 나는 좋다. 빨려 들어가는 감각, 항상 작가의 생애와 서사로 시작하고 맥을 이어 가는 이 공간의 스토리텔링이 나는 좋았다. 목적지만이 분명하고 과정인 길은 지워져 있던 일상 공간의 선형 법칙, 그로부터 벗어난 여기 이 모종의 규율은 마찬가지로 지워져 있던 공간을 바라보는 나의 감관을 일깨워 준다. 달리의 전시회, 순서는 생애와 사조이다. 검정색 스크린도어가 절로 열리고 나는 그의 유년에서 시작해 그의 죽음까지 이어진 짧은 길을 따라 걷는다.



섹션 01_천재의 탄생_전시전경, 2021.jpg



분명 나는 이 전시회에 매료되어 여기 있다지만, 이 길 끝으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떤 강박으로부터 벗어나, 전시를 음미할 수만도 없었다. 무어건 의미를 찾아내어 글로 써내야만 한다는 것. 그의 유년과 미학 사조의 변천을 소개하는 여기 초입에서부터 이 강박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러나 글은 더욱 쓰이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톺아보며 억지 의미를 찾아내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섹션1을 서둘러 지났다.


그러고 보면 미술전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데, 미술전을 잘 체험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구조적인 의미를 획책고자 애쓰는 것보다는, 공간을 따라 인도되다간 발견될 `나의 순간`을 찾아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살바도르 달리`라는 서사의 창자 속에서 발견될 `나의 순간`이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을 떠올리기 위해 잠시 대열을 이탈해본다.



섹션 02_초현실주의 _전시전경 (2), 2021.jpg

슈거스핑크스의 그림이 전시된 공간.

그림이 없는 좌측 빈 벽으로 도망쳐 잠깐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내 관념 속에서 전시회는 사색을 돕는 가장 좋은 공간으로 그려져 있었지만, 일요일의 전시회, 사람은 너무나 많았고 뒷사람의 인기척에 떠밀리어 가자니 그림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찾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눈에 담지 못할 것만 같다. 이 전시회의 초대권 신청 링크로부터 나를 이끈 무언가, 내가 달리의 두 글자를 볼 적에 내 안에 상기되곤 무거운 나를 인도한 그 유인이 무엇이었던 지에 대해 의식해본다.


머릿속 빈곤한 미술관 위로 몇 안 되는 그의 그림을 떠올려보곤 이내 답해보았다. 그것은 그의 수염도, 기행도, 패션도 아니고 그가 가진 인간적 매력과 카리스마도 아니며, 잘 알지도 못하는 초현실주의니 뭐니 하는 것도 아닌 것. 그가 그린 꿈의 그림 속에 있는 황량한 광야이다. 달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상기되는 그림, `기억의 지속`을 생각할 적에 아직도 피어오르는 강렬한 인상이란 광야의 이미지였다. 까닭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2. 지는 밤의 그림자 Shades of Night Descending, 1931.jpg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 The Shades of Night Descending>, 1931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과연, 생각을 정리하고 나아가 초현실주의 섹션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꿈속 광야가 나를 맞이한다. 그리운 감촉이 눈에 와닿는다. 촉촉한 질감과 높은 채도의 색감으로 구성된 광야, 이 아름다운 황량함이라는 모순이 내게로 달려드는 듯하다. 유화의 빈틈 없는 이 색감만으로도 벌써 어떤 그리움 같은 편안함이 야기된다. 서늘한 편안함, 곧 사라짐을 알기에, 또 그래야만 감각되는 그런 편안함이다.


그의 초현실주의를 두고 `손으로 그린 꿈속의 사진들`이라고 하더라. 그의 꿈속은 이렇듯 사막에 닮아 있었을까. 그림의 앞에서 드디어 이런 질문들이 상기되기 시작한다. "택하라면 하루에 22시간 동안 잠을 자겠다"라고 말한 그는, 그의 황량한 꿈속에서 무엇을 찾고자 한 것일지, 어쩌면 내가 광야를 찾아온 까닭과 비슷한 것은 아닐지,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며 그의 꿈속 세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미술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나로서는 의미를 해석할 수가 없기에 그려내야만 하는 것이다.



4.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jpg

<임신한 여성이 된 나폴레옹의 코, 독특한 폐허에서 멜랑콜리한 분위기 속 그의 그림자를 따라 걷다.

Napoleon`s Nose, Transformed into a Pregnant Woman, Strolling His Shadow with Melancholia amongst Original Ruins>, 1945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전시회를 찾아오는 까닭은 새로운 심상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관람이란 내가 그려낸 심상 너머의 것들을 모색하기 위함, 천재들의 상상을 쭈욱 늘어뜨려 놓고 하나하나 뒤적이며 내 마음의 모양에 맞는지 접 맞추어 보는 행위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가다간 `나의 순간`, 즉 새로이 발견해 모실 이미지 앞에 매료되어 오래도록 그를 응시하는 것, 이것이 내가 전시회를 기쁘게 찾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이 찾는 바를 견지하고서, 섹션 3 한쪽에 마련된 `달리의 상징들 Dalinian Symbol`에 대한 해석을 염두에 두고 관람하면 조금 더 재미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녹아내리는 시계`, `개미`부터 `목발`, `줄넘기하는 소녀`, `사이프러스 나무`의 상징을 염두에 두고서 그림을 바라보면 그 안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퍽 좋다. 하지만 해석까지는 해낼 수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도슨트 없이 위의 그림을 바라보자면 막막함이 몰려오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제목과 이미지만으로는 해석이 어렵다. 오디오 도슨트를 챙겨오시길 권한다.


이번 전시회가 `달리의 초현실주의 특별전`은 아니었기에, 안타깝게도 내 찾는 광야의 이미지는 그리 많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본 전시회는 달리의 생애, 사조와 철학 및 기법 등 달리를 풍부히 소개하고 있다. 초현실주의로 가장 유명한 그이지만, 그 외에도 그의 재능과 매력이 무궁했기에 하나하나 소개하는 것만으로 전시회는 가득 차 있던 것이다.



섹션 08_드림즈 오브 달리_전시전경, 2021 (2).jpg

섹션 08 드림즈 오브 달리 전시전경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전시회의 막바지 부, 멀티미디어실에 준비된 영상 속 광야를 곱씹는다. 나는 무엇에 이끌려, 무엇을 찾고자 여기에 왔고 얼마나 찾아가는 것일까. 초현실주의는 `손으로 그린 꿈의 사진`이라고 하였다. 나는 그의 꿈속 이미지 중 어디에 동조된 것인지 아직 모르겠다. 영상 속에는 `만종`을 닮은 두 탑과 광막한 광야, 그를 따라 카메라는 움직여 탑의 꼭대기에 다다르니 아득한 높이의 코끼리가 광야를 걷는다. 이 고독하고도 시원한 이미지.


왜 광야였을까? 언제나 심상에 떠오르는 이미지에 까닭일랑 찾아볼 순 없었지만, 우리는 짧은 기억 속 일상을 되짚으며 그 힌트를 찾아보곤 한다. 이 고독하고도 시원한 이미지. 내 그것을 그리워한 까닭이란 그 반대급부의 무언가를 내가 겪고 있는 탓이려니. 출근길 옆 사람의 간격으로부터, 가끔씩은 떨어져 있고픈 회사 동료 선배로부터, 댓바람부터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고객사의 전화로부터, 빽빽이 마련되어 있는 스케줄들로부터, 그리고 그 어지런 위에 덧입히어 가슴을 누르는 내 억눌린 욕망과 꿈들과 커리어와 현실적인 문제들과 자그마한 방으로부터. 나는 이런 것을 겪을 적에 광야를 떠올리나. 달리의 광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그리어 동조해보려는 불필요한 일도 없이 그저 나는 그의 아름다운 광야가 보고팠다. 촉촉하고도 황량한 이미지, 적막하지만은 않은 이 고독의 공간을 이제 나 또한 마음속으로 따라 그려본다.


달리의 꿈, 그 안에 반복되는 무대인 광야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택하라면 22시간 동안 꿈속에 있겠다`라고 말 한 그의 꿈속은 어떠한 공간이었을지. 반복되는 심상에는 내재된 까닭이 있으리라 믿는바, 그러나 그 까닭까지 그려내 보이진 못하겠다. 그럼에도 그의 무대, 모든 것이 치워진 꿈의 공간 위에 그의 자유로운 상상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감을 본다. 법칙을 상기하는 사물이 치워진 위에서야 존재할 수 있는 것들, 인과 없이 존재되는 `자유` 같은 것들이 순차대로 도착한 손님들처럼 좌석을 차지해 있다.


그림 안에서, 존재들은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다. 일종의 불가한 것들이 모여서 규율도 서로 간의 상관관계도 없이 오롯 존재하니, 자유를 상기시킨다. 사막의 위에서 완전히 홀로써 존재할 수 있음, 그 완벽한 자유가…. 보라. 하늘도, 구름도, 초생달과 탑도, 어느 것 하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것은 표정 없는 암석이 그저 안으로 안으로 수렴하듯, 상호 아무런 눈길도 주고받지 않는다. 오직 그림의 앵글만이 이 저마다 존재하는 것들을 다정히 포착하고 있을 뿐이었다.



5.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 Dematerialization Near the Nose of Nero, 1947.jpg

<네로의 코 주위의 탈물질화 Dematerialization Near the Nose of Nero>, 1947

ⓒ Salvador Dali, Fundacio Gala-Salvador Dali, SACK, 2021



언젠가 그의 광야, 그의 사막들로 가득 채워진 방에 가보고 싶다. 관객은 없을수록 좋다. 아주 없다면 더욱 좋다. 그러면 나는 거기서 외롭지 않은 고독을 음미하고프다. 유화로만이 존재할 수 있는 이 촉촉한 색감의 사막 같은, 꿈으로만이 존재할 수 있는 `녹아 멈추어버린 시간`과도 같은. 그래, 어느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과연 달리는 유명한 화가였고 전시회는 사람들로 정말이지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달리의 전시회를 기웃거리느라 이 글에까지 도달한 분이 거기 계신다면, 가능한 조용한 시간, 개관으로부터 충분히 시간이 지난 즈음 나지막이 찾아오시길.


도슨트 없이 그림들 앞에 서자면,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초라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안에 `나의 순간`들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무얼 찾아 여기 오실는지 모를 여러분께 내가 드릴 수 있을 말씀이 딱히 없겠지만, 그래도 찾아오심을 추천드린다. 무엇을 찾아와, 무얼 찾아가실지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정해진 뜻도 규칙도 없는 이 자유의 숲엘 찾아와 느긋한 속도로 거닐어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린다. 여러분의 마음으로부터 나와 그의 난해한 그림을 비추곤 메아리쳐 돌아갈, 잊힌 순간들을 찾아가시길.


전시회를 반추하며,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다가 보니 어느샌가 글 길은 이만치 뻗어 왔고, 나는 나의 순간들을 갈무리한다. 그림 앞을 그림처럼 서서 사색할 수는 없었기에, 대열에서 이탈해 `슈거스핑크스` 옆의 적당한 구석에서 펜을 놀리는 내가 기억에 다시 떠오른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조금 이상하게 바라보았던 것도 같다만 행복했다. 전시회는 그래도 이상한 곳이 아니기에…. 역시 붐비어도 전시회는 사색을 위한 좋은 공간이었구나. 다음 휴가, 어느 한산한 주일 오전 이곳을 다시 찾아야지. 그땐 마음껏 `슈거스핑크스`의 따뜻한 광야 앞을 하염없이 머물러야겠다.



섹션 02_초현실주의 _전시전경 (1), 2021.jpg

섹션02 초현실주의 전시 전경_슈거 스핑크스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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