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쓰고자 하는 용기

글 입력 2022.01.0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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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자 하는 용기. 요즘은 그것에 관해 계속 생각한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글을 솔직하게 쓰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충돌되는 지점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해도 되나, 이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까지 오픈해야 하는가의 상한선을 정해두는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글을 써오면서 불특정한 관객들이 내 글을 읽고 피드백을 남겨주는 일, 내 글을 통해 SNS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숱하게 마주한 이후로는 남에게 읽힐 내 글이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특히나 나는 기사 형식의 글을 쓰면서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는데, 처음에는 단어 검열, 문장 검열의 수준에 이르렀다가 갈수록 글을 쓰는 나와 글을 쓰지 않는 내가 완벽하게 분리된 느낌을 받았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글을 쓰는 나를 보기 위해 내 SNS를 팔로우한 사람들에게 글을 쓰지 않는 내 자아를 보고 실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새로 파게 만들고, 블로그 글도 서로이웃으로 돌려버렸다. 아직까지는 이를 다시 오픈하고 싶은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작성한 에세이를 주고받으며 피드백하는 모임을 하고 있는데, 열 명도 채 안 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읽힐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도 내가 글 뒤로 자꾸만 숨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글에서 드러난 두려움을 사람들이 캐치해주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두려움을 누군가 끄집어줬을 때 그 당혹감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줄곧 하면서 내심 대단함을 비췄다. 솔직히 그 모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곳 아트인사이트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책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모든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심경이 그렇다. 저렇게까지 솔직할 수가, 불특정한 다수가 읽는 자신의 이야기에 저렇게까지 거리낌이 없을 수가. 과연 나였으면 할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 (제삼자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를 통한 메세지가 한 마디로 축약될 수 없을 때 좀 더 매력을 느낀다.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갈망. 내 이야기를 드러냄과 동시에 무언가 전달해주고 싶은 것. 비로소 개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글이 가진 힘은 우리가 속한 사회를 샅샅이 분석하는 일 중 하나라고 여길 수 있게 됐다.

 

예컨대 내가 입은 피해를 이야기하면서 피해의 정도와 피해자성을 구분하는 사회적인 시선에 관해 폭로하고 싶었던 것과 같이. 동시에 나와 같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씁쓸한 마음과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으로 귀결되는 지점까지 이르고 싶다는 욕심. 글을 쓰기 위해 특정한 사실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게 어느 시점에는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재를 쓰고 싶은 이유에는 쓰고자 하는 나의 용기를 확인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내 용기를 남에게도 쥐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인 듯싶다.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글을 쓰지 않는 나의 애매모호한 분리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지만, 머지않아 글을 쓰지 않는 나의 못 미더움까지도 글을 쓰는 나에게 용기로 전이되었으면 한다. 내 글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보태어준 사람들에게서 돌려받은 용기의 무게를 생각해서라도.

 

어느덧 2021년이 지나갔다.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일을 겪을 것이고, 가끔은 쓰지 않고 싶어질 순간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지금껏 내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던 건 전달된 용기를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부족해진 용기를 타인으로부터 충전하기 위해, 다시 그 용기를 전달해주기 위해 부단히 쓰고자 한다.

 

 

[이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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