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과 성경, 성경과 샤갈 -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글 입력 2021.12.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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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샤갈.


샤갈이라는 이름은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대표작 <도시 위로>, <생일> 등으로 친숙한 이름이다. 샤갈은 일생에 걸쳐 자신만의 아름답고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예술가였다.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샤갈은, 그 영향 덕분인지 한평생 ‘성서’라는 주제에 천착해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만약 제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저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 마르크 샤갈

 

 

‘Chagall and the Bible’이라는 전시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성서’를 주제로 그린, 샤갈의 여러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샤갈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과 성서’ 그리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동시에 조명하려는 전시의 시도에 필자 역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총 4가지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먼저 섹션 1에선 샤갈 작품 속 등장하는 주요 모티프들을 탐구한다. 특히 그가 자주 표현한 ‘비행하는 연인’, ‘성모자’, ‘동물’, ‘파리의 모습’이 화폭에 담긴다. 다음으로 섹션 2와 3에선 성서를 기반으로 샤갈이 펼쳐 보인 세계를 한가득 마주할 수 있다.

 

그는 성서에서 105가지 장면을 선별해 판화로 제작하고, 성서에 나오는 주요 사건과 인물을 새롭게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섹션 4에서는 샤갈의 말년에 그린 삽화와 판화 작품이 소개되며 말년까지 경주해온 그의 예술혼에 초점을 맞춘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 3가지는 <예루살렘, 통곡의 벽>, <강기슭에서의 부활>, <또 다른 빛을 향하여>다.

 


[꾸미기][크기변환]03. 예루살렘, 통곡의 벽.jpg

Marc Chagall, Jérusalem, le mur des lamentations, 1931, huile et gouache sur toile, 100 x 81.2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먼저, <예루살렘 통곡의 벽>이다.


45살의 나이에 이스라엘에 방문해, 영적인 충격을 받은 샤갈은 그 현장을 그림으로 재현해낸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을 주인공으로 한, 이 그림은 한낮의 풍경을 담아내면서도 왠지 모를 탄식의 감정이 전해진다.


라디오로 추정되는 기계를 탁자에 두고, 의자에 앉아 세월을 보내는 등이 굽은 노인. 통곡의 벽의 질감을 느끼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순례자들. 바닥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벽만을 바라보는 이들까지.


벽 곳곳에 돋아난 풀들과 이끼들, 군데군데 패인 흔적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고통받았던 유대인의 삶 자체로까지 느껴진다. 유대인의 성지로 알려진 통곡의 벽을 그리며, 샤갈은 아마도 유대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신에 대한 경건함을 되새겼을 수도 있겠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해가,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의 징표로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르겠다.

 


[꾸미기][크기변환]06. 강기슭에서의 부활.jpg

Marc Chagall, La Résurrection au bord du fleuve, 1947, Oil on Original canvas, 98 x 73.5 cm, Private Collection,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두 번째는 <강기슭에서의 부활>이다.


<강기슭에서의 부활>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특징은 붉은색과 보라색의 대비다. 그림 속 여러 지점에서 샤갈 자신의 상징들(두 개의 얼굴을 가진 화가, 바이올린 연주자, 촛대, 책을 읽는 여인)이 드러나며, 동시에 유대교와 기독교적 색채가 병존한다.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많은 예술가가 예수를 최초의 유대교 선교자로 표현했다. 샤갈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수는 유대인 대학살 시기, 구원의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유대인의 원형으로서 그려진다.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며, 유대인이자 예술가로서 예수의 순교자적 지위를 빌려와 표현하는 그의 열정은 샤갈만의 강렬한 색감과 함께 화폭에 아름답게 구현된다.

 


[꾸미기][크기변환]08. 또 다른 빛을 향하여.jpg

Marc Chagall, Vers l'autre Clarté, 1985, M.1050, Color lithograph, 63 x 48 cm, © Marc Chagall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마지막은 <또 다른 빛을 향하여>다.


<또 다른 빛을 향하여>는 샤갈이 작고한 1985년에 그려진, 유작과 다름없는 작품이다. 날개 달린 화가가 의자에 앉아 꽃다발을 든 연인을 그리고 있는 모습에서, 샤갈이 말년까지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게 한다.


화가의 머리를 슬며시 만지는 날개 달린 존재는,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짐작된다. 샤갈이 78세가 되던 해에 쓴 시 ‘또 다른 빛을 위하여’에서 그는 ‘눈을 감는 그 날까지 신을 위하여 다시 한번 그림을 그려낼 것’이라는 다짐을 밝힌다. 이렇듯 샤갈은 그림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신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며, ‘내가 이뤄낸 모든 것이 신의 것’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보인다.


채색에 사용한 몽환적인 파란색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작품을 통해, 샤갈이 고백한 인류와 신에 대한 사랑을 어렴풋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람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합니다."

 

- 마르크 샤갈

 

 

이처럼 <샤갈 특별전 Chagall and the Bible> 전시에선, 마르크 샤갈이 선보이는 신실한 선함을 느낄 수 있다. 구원과 희망이라는 단어를 놓치고 사는 엄혹한 현실에서, 냉소를 거두고 잠시나마 ‘또 다른 빛’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주엽.jpg

 

 

[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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