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야지 [사람]

나도 이런 내가 피곤하다
글 입력 2021.12.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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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야지.


매일 아침 이렇게 생각한다. 가장 먼저 컴퓨터 혹은 다이어리에 차곡차곡 적어둔 할 일을 확인한다. 해야 할 일은 물론이거니와 취미 생활까지 계획해둔다. 하고 싶었던 여가 중 오늘의 남는 시간에 딱 들어맞을 법한 것을 하나 골라둔다. 머릿속으로 시간 배분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종일 시간 계산을 한다. 예를 들어 오늘은 이런 식이었다. 9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잡지를 읽고 글감을 찾아서 와야지. 12시 30분에 돌아와서 스페인어 숙제를 하고, 점심을 다 먹고 수업 준비를 하면 되겠다. 5시에 수업이 끝나면 잠깐 쉬다가 이번 주에 기고할 초고를 다 쓰고, 가능하면 지원서도 한 항목 정도는 쓰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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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재차 곱씹으며 움직인다. 계획한 대로 일이 잘 흘러가면 그만큼 보람찬 일이 또 없다. 하루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과 고민은 분명 나를 성장시킨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말이다.


나는 피곤하리만큼 계획적인 데 비해 다소 즉흥적이기도 하다. 철저히 세운 계획을 내 손으로 흔들어 대는 일이 잦다는 의미이다. 예상치 못하게 발생한 외부의 문제에는 차라리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는데, 나 자신의 은근한 설득은 좀처럼 떨쳐내기가 어렵다. 이때 보통 문제는 두 가지 원인에서 발생한다.


첫 번째, 추가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다. 혹은 두 번째, 잠깐 정신을 놓고 시간을 허비한다.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예능이 생기는 게 내 일반적인 돌발상황이다. 대기 줄에 넣어두었다가 차근차근 보면 좋으련만, ‘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내 온 정신은 그곳에 쏠린다. 다행히 할 일을 전부 미뤄두고 취미에 뛰어드는 성격은 못되어서,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드라마를 켠다. 그리고 장렬히 밤을 새운다.


정주행은 학창시절부터 나의 고질병 같은 거였다. 도저히 한번 시작한 무언가를 멈추지를 못한다. 시험 기간에는 일부러 흥미로운 콘텐츠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꼼짝없이 끝을 볼 나를 알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중간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웹툰 ‘신의 탑’에 빠져 4일간 3-4시간으로 잠을 줄여가며 올라온 회차를 전부 본 적도 있다.


당시에는 괜찮다고 주장하며 살았지만, 당연히 밤을 새우는 행위는 다음 날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를 꽉 채워서 살고 아침에 골골대는 내 모습이 약간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정주행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다른 해결책도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다. 멀티태스킹을 하면 밤을 새우지 않고도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 크게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은 유튜브 영상들은 주로 밥을 먹으면서 본다. 이동하면서 소리만 듣거나, 젖은 머리를 말리며 눈으로만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멀티태스킹을 거듭하며 한 번에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는 충족감을 얻었다. 하나의 시간에 두 개 이상의 일을 해내는 내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군다나 쏟아져나오는 온갖 콘텐츠들은 나의 멀티태스킹을 부추겼고, 나는 그것에 쉽게 중독되었다.


요리할 때는 팟캐스트, 밥 먹을 때는 넷플릭스. 여러 가지 플랫폼을 오가며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한의 인풋을 꾹꾹 눌러 담는다. 이제는 동시에 여러 감각을 사용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멀티태스킹은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을 하는 동안 하나의 과제에 온전히 집중하는 건 불가능하다. 집중하지 못하면 결국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하루의 루틴은 어그러진다.


확실히 내 멀티태스킹은 목적성을 잃었다. 요리할 때 팟캐스트를 듣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난 자료 조사를 위해 팟캐스트를 들을 때도 눈으로 읽을 기삿거리를 찾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대한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모든 두뇌활동을 잡아먹은 듯하다. 이제 난 효율성을 잃고 무작정 많은 일을 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시간을 허비했을 때



조금 느슨하게 살며 집중력을 되찾으면 좋을 텐데, 난 나에게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


거의 매일 기상 알람을 맞춰둔다. 매번 알람이 울리자마자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적당한 루틴을 유지하는 게 좋다.


가끔 일정이 빡빡한데도 유난히 눈이 안 떠지는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랬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공기가 나름 따뜻한 날이었다. 이불 안이 딱 포근하고 좋아 습관적으로 9시 알람을 끄고 9시 반 즈음 눈을 떴다. 아, 늦었다. 어느 정도 넉넉하게 짜둔 일정이라 특별히 늦은 것도 아닌데 나는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놓친 30분을 자책했다. 여유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에 글도 다급히 읽어내렸다.


사실 총평하자면 괜찮은 하루였다. 늦게 잠들었지만, 잘 일어났고, 부지런히 할 일도 모두 챙겼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칭찬해보려는 마음 사이로 허비한 시간만이 도드라져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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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안정감을 쫓았을 뿐인데, 언제부터 불안이 피었는지 모르겠다. 매일 내가 허용하는 생산성 수준을 뛰어넘기 위한 하루를 보낸다. 언제나 욕심을 부리는 나 때문에 가끔은 일상이 고단하다. 종일 계산을 하고, 내다 버린 시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힐긋거린다. 피곤한 와중에도 보람과 성취를 놓지 못하고 여전히 생산성을 우선순위로 놓겠다고 고집한다.


요즘 부쩍 이런 식의 일상에 대한 만족과 회의 사이에서 비틀거리는 날이 잦아졌다. 아주 나중에, 내가 나의 기준에 걸맞게 ‘일상적으로 생산적인’ 사람이 되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산적인 하루의 다짐을 포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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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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