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 - 포르투갈의 높은 산 [도서]

글 입력 2021.12.1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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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 잃음으로써 소중함을 깨닫는다.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사람이 떠나고서야 소중함을 알고, 손만 뻗으면 닿을만한 거리에 있는 물건이 없어지고 나서야 생각보다 손길이 많이 닿았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사실'에 변화가 생기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인간에게 가족의 죽음과 인생의 몰락으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경험하고 신을 원망하며 저항하는 이야기. 병리학자에게 남편의 시신을 가져오며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며 부검을 요청하는 부인의 이야기. 평생을 함께한 가족을 잃고 손에 쥐고 있던 모든 명예와 부를 벗어던지고 고향으로 떠나 침팬지와 함께 은둔하는 자의 이야기.


세 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삶과 죽음, 그리고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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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죽음은 유일하게 인간이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의 기술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의 신비는 하나둘 발견되고 분석되고 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으며, 감기로 수백수천 명이 죽어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지식이 축적되면서 인류의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먼 우주의 생명체의 존재나 인간의 유전자를 조정해 질병을 치유하는 등 시간만 있다면 언젠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호흡이 끊기고 뇌의 기능이 넘는 경우를 칭한다. 따라서 생의 끝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본인이 아니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예로부터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태양이나 물, 하늘 등 자연을 신으로 모시며 숭배하는 샤머니즘부터 시작해 영혼의 회귀를 믿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미라, 죽음 이후에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생전부터 무덤을 짓고 살아있는 인간을 함께 생매장하는 순장을 하는 등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대비했다.


종교의 영역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바라보고 살아있을 때의 행동이 죽음 이후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강조한다. 죽음을 초월하기 위해 인간은 종교를 의지하기 시작했고 현세의 죄와 업을 뉘우치고 개선하며 죽음 이후에 얻게 될 미지의 세계를 바라보고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가 잠을 잘 때를 생각해보자. 눈을 감고 뜨면 깜깜한 어둠에서 아침 햇살이 밝아오는 아침이 된다. 5시간 이상의 수면을 가정했을 때, 단지 눈을 감았다 뜨는 것으로 '잠'을 자며 시간을 보낸다. 뇌가 살아있기 때문에 무의식의 영역에서 꿈을 꾸고 잠꼬대를 하며 몸 구석구석 재생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기에 나는 잠을 자는 행위를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잠과 죽음을 비교해보았을 때의 차이는 새로운 시작의 유무이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잠을 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으로써 나의 존재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존재의 상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준다. 고인과 함께한 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아름다운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실재하지 않는다. 이때 찾아오는 존재의 괴리는 남아있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라면 더욱.

 

*


책에 등장하는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죽음을 통해 함께했던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고통에 몸부림친다. 고인과 함께 이루었던 행복한 시간은 준비되지 않은 이별 속에서 고통스러운 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 고통에서도 끝은 존재했다. 남겨진 자로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이는 상실감을 분노로 치환했고, 어떤 이는 고인의 모습을 회상하며, 어떤 이는 모든 걸 포기함으로써 삶의 안정을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으로써 잃어버린 삶의 의미는, 죽음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다. 상실 속에서 죽음을 마주하고 추억을 회상하며 미래를 생각했다.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삶의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고, 끊임없는 고뇌와 깨달음으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삶에 변화를 주었다.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상실하고, 죽음을 마주함으로써 성장했다. 일상에 묻혀있던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죽음은 삶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고인에게는 인생의 끝을 보여주고 사후세계의 시작을 알린다. 남겨진 자들에게는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잊고있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를 정립해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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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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