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확실성과 마주하기 - 초현실주의 거장들 展 [전시]

글 입력 2021.12.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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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라는 흐름은 기본적으로 근대라는 세계가 도래하는 것과 관련된다. 전-근대의 세계는 시간에 따른 인류와 문명의 발전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안정적인 세계였다. 시간을 들여 노동을 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임금을 지불받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이 발전하여 삶이 더욱 편리해지고, 농사를 하면 결실을 맺고 그걸로 끼니를 해결하고 겨울이 지나 다시 씨를 심을 수 있는, 그런 확실하고 보장된 세계였던 것이다.

 

과학과 종교가 발전이 극에 달해 세계가 인류의 지성이 포화되는 순간 전-근대라는 확실성의 세계로부터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도달하게 된다. 어긋난 믿음은 제국주의를 발전시키고, 과학의 발전은 세계 대전 속에서 인류 말살의 참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근대라는 시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인간은 합리성과 절대성의 영역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고 인간성이 보장받을 수 있는 세계를 탐구하기 시작하게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작업은 가장 인간적인 세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물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인정받았던 과학과 신앙의 합리성을 전복시켜 다시금 인간 본연의 마음에 집중하고자 하였다.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표면적으로는 기괴하고 불쾌하며 일견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지만, 견고성과 확실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과 불확실성을 그려내려고 한 것이다. 고도로 발전한 과학과 신앙이 인간과 사회를 파괴하게 된 상황에서, 비합리적이고 불완전한 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현실주의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은 거의 100년 가까이 지난 과거의 것들이지만, 그것이 지닌 메시지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 인류는 오히려 더욱 체계적이고 견고한 세계를 살아가게 되었다. 100년 전과 비교해 사회의 시스템은 더 견고해졌고,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심지어 이제는 모든 정보들이 전산화되어 동일한 체계하에 처리되고 있어 거대한 흐름으로부터 벗어나기 더욱 힘들어졌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왜곡된 형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비일상적인 형상들, 형태와 메시지 사이의 간극, 시간의 순서로 진행되지 않는 영상들을 바라보며 우리를 옥죄는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체험을 하기 바란다. 초현실주의의 세계에서 그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초현실주의 포스터_1108.jpg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들이다. 흘러내리는 시계의 그림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는 편집증적 작품 세계로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이번 전시에서는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태양열 테이블」 등,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에서는 배경과 대상이 반전된 것 같은 모습(「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도 보이고,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사물이 너무나도 정갈하고 예쁘게 배치된 모습(「태양열 테이블」)도 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어색한 대상들의 조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정교하고 뻔뻔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 표면적 부조화와 예술적인 정교함이 동시에 한눈에 들어올 때의 오묘함이 충격적이다.

 

 

이미지08_살바도르 달리-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jpg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 (Couple aux têtes pleines de nuages), 1936

판넬에 유채, 98,5 x 77 x 4,5cm(L), 87,5 x 72,4 x 4,5cm(R)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미지10_살바도르 달리-태양열 테이블.jpg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태양열 테이블 (Table solaire), 1936

판넬에 유채, 60 x 46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편집증이라는 것은 체계적인 망상을 그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인데, 그런 측면에서 전-근대적 과학적 논리성이 극대화된 근대의 모습과도 같은 신경 증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극한까지 나아간 논리성과 체계성이 결국 장애를 일으키는 느낌을 주는데, 이것이 아마 우리 현대인의 마음속 상처들과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의 일상과 사회는 체계적이고 선형적으로 구성되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인간의 모든 모습들이 반드시 선형적으로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선형성의 감옥에 갇힌 인간들이 우연적이고 비논리적인 형상들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종에 공황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달리의 작업은 따라서 논리성의 세계 끝에 존재하는 공황과도 같은 모습들이고,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인 우리 주변의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같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사고로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은 영역이 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체계와 논리들에서 벗어나, 불확실성의 세계를 인정하고 그와 함께 살아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로테스크한 형상들, 꿈의 모습들, 그러한 이질적인 것들과 함께 공존하며 지내는 연습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이번 전시는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품들의 실물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이 장기간 공사에 돌입하게 되면서, 유명한 작가들의 걸작이 공사 기간 동안 세계 각국을 순회하게 된 것이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소중한 작품들이 언제 또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회화와 영상예술과 조형예술 작품들을 실제로 마주하여 작품의 아우라를 느껴보길 바란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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