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단편 소설집: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도서]

글 입력 2021.12.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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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


 

단편 소설집의 뼈대는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라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이다.

 

잡지명에서도 보이듯 시작은 1953년 파리였다. 자원이 풍족한 땅 프랑스에서 패션을 비롯한 여러 예술 활동이 꽃 피웠으니 문학이라고 다를 것 없었다. 하지만 1973년, 본사를 미국 뉴욕으로 옮겨 가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했다. 뉴욕 타임스 등 다양한 잡지사가 성행하던 때이니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른다.

 

타임스는 언젠가 파리 리뷰를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 잡지'라고 평했다. 이 추상적인 말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몇 가지 댈 수 있다. 첫 번째, 파리 리뷰가 발행하는 잡지의 다양한 카테고리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소설만을 문학의 영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비평, 칼럼, 인터뷰 등 형식을 세분화하여 '문학'이 지닌 고정적 이미지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또한, 모든 작가는 성별, 인종, 국가과 관련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는다. 작가의 출신이나 과거 업적 혹은 사적인 사실을 제외하고 오로지 글로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 파격적인 조건은 편집자의 관점에선 고달픈 일일 수밖에 없다. 잘 알지 못하는 작가가 가져올 논란이나 이슈도, 세계 곳곳에서 들어오는 원고도, 모두 감별해내야 하니 말이다.

 

기꺼이 고달픈 방향을 택하는 것에서 파리 리뷰의 창의성이 차별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이번에 엮은 15편의 이야기와 각 작품에 달린 해제의 글이 증거다. 반세기 동안 파리 리뷰에 실렸던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 소설을 선정하고, 선정한 이유를 간략하게 서술한 실험 같은 편집 방식이다.

 

소설집은 대개 한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나온다. 물론 한국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보인다. 큐큐 출판사에서 퀴어를 주제로, 예닐곱의 작가를 모아 매년 출간하는 단편집이 그 예시다. 하지만 한 작가가 다른 작가의 글을 고르고, 친히 해제까지 덧붙인 형식은 처음 보았다. '문학 실험실'이라는 별칭이 무척 잘 어울리는 행보다.

 

이 '실험실'에 있는 내용을 상세히 다루는 건 책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느꼈다. 대신 인상적이었던 두 작품의 감상을 나눠보겠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_표지.jpg

 

 

 

단편의 정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책의 독특한 형식 때문에 소설의 내용보다는 추천의 글에 집중했다. 하지만 첫 번째 단편인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는 여태껏 보지 못했던 단편이라서 눈길이 갔다. 15페이지밖에 안 되는 짤막한 글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거의 없었다. 딱 하나 등장한 '재니스'는 호명이나 서술보단 울부짖음이었다.

 

사람들은 묘사되었다. '술을 나눠주고 내가 자는 동안 운전한' 세일즈맨, '미주리주 베서니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온 한 남자를 들이받아 영원히 죽여버린' 마셜타운 출신 어느 가족의 남자. 시작부터 사건을 보여주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균일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인 '나'의 심리는 상상으로 채워야 했다. 책에 없는 내용은 독자 자신이 찾아야 한다. 책 안에 산재한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거나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는 식으로. 단편 소설의 즐거움은 이 까다로움에서 나온다. 함축된 내용을 풀어 헤치고, 생략된 덩어리에 이름을 붙이며 사유의 시간에 빠져든다.

 

이 글을 추천한 작가가 말한다.

 

 
단편소설 쓰기의 주된 문제는 무엇을 생략할지를 아는 것이다. 남겨진 것은 반드시 사라진 모든 것을 함축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경험에 관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경험을 독자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가 정리한 네 문장으로 이 책의 대상을 느꼈다. 비단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글쓰기에 골몰한 사람들에게 조언이 될 만하다. 결국 사람은 타인의 행동, 말, 작품에 영감을 얻어 무언가를 탄생시키므로.

 

 


설명은 독이다 :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


 

글과 영상은 매체의 스타일이나 성격이 다르다. 별 접점이 없을 것 같은 이 둘은 긴밀히 연결된다. 잘 쓴 글은 독자의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그려지고, 잘 만든 영상은 인물의 심리나 분위기를 관람자가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게 만든다.

 

이때 창작자가 피해야 할 건 '설명'이다. 정확히는 설명을 나열하는 것. 독자나 관람자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덧붙이는 말들은 되레 감상을 방해한다. 짧은 이야기가 까다로운 건 이러한 덧댐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열 마디로 전할 말을 한 두 마디로, 때로는 언급하지도 않고 넘어가야 한다.

 

책의 거의 마지막, 14번째 글은 상류사회를 사는 한 부부의 일상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그리는 상류사회의 이미지가 '컨트리클럽'이나 '모피코트' 같은 단어에서 나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에서 눈에 띈 대목은 묘사에 있었다.

 

어느 날 강도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이 사건이 신문 1편에 실린다. 혼자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읽던 브리지 부인의 눈길을 잡은 건 강도 크기나 규모가 아니었다.

 

 
스튜어트 몽고메리가 겨우 2달러 14센트만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노엘 존슨 부인의 반지가 모조 다이아몬드였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똑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관심사인 부분만 캐치한다. 상류사회를 사는 브리지 부인에게는 돈과 관련된 이야기만 중요했다. 이 대목을 끝으로 소제목이 끝나고, 다른 소제목을 달고 나온 이야기가 이어졌다. 명료한 끝맺음에 자연히 다음 페이지에 눈이 갔다.

 

설명하지 않아서 되레 읽게 만드는 건 단편 소설이 지닌 매력 같다.

 

 

 

끝으로


 

책에 담긴 글은 어느 하나 비슷함 없이 다양했다. 해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추천한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언급하며 해설했고, 글쓰기 자체에 주목한 평도 있었고, 해당 작품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다양한 예시를 보여준 글도 있었다.

 

콘텐츠 창작자들은 이야기와 그에 딸린 이야기를 읽으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글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신기한 경험을 함께하면 좋겠다. 이러한 문학 실험을 한국에서도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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