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파리 리뷰 단편집

취향이 범람하는 책 한권
글 입력 2021.12.1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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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소설과

단편소설의 단상



외국 소설

어릴 적 나는 외국 소설에 대한 이유 모를 동경심을 갖고 있었다. 형용사로 이어진 문장과 톡톡 튀는 어휘 조합을 읽다 보면 무아지경에 빠질 때가 있었고, 어떨 때는 건조한 문맥과 수동태로 쓰인 시제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가끔은 무얼 읽는지도 기억나지도 않았다. 읽는 동시에 글자가 뇌혈관을 스쳐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외국 소설이 주는 생경한 문장에 빠져 한동안 도서 목록은 외국 소설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나는 책을 멀리하는 성인이 되었고, 다시 책을 찾은건 무료한 업무를 견디지 못했던 어느 날이었다. 습관대로 외국 소설을 찾았고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케빈에 대하여>가 눈에 들어왔다. 영화로 먼저 보았던 작품이라 상당한 흥미를 갖고 시작했던 책이었다. 그런데 웬걸. 에바가 프랭클린에게 보내는 편지로 가득한 책을 완독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두꺼운 책을 인내하는 시간과 다름없었다.

 

종일 글자를 접하던 학생이 아닌, 업무 외에 글자는 SNS 한정으로 접하는 직장인이 되고 깨달았다. 글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이 떨어졌다는 것과 나에게 맞는 번역체가 있다는 것, 번역에 따라 어휘는 한정됐다는 것을. 정체된 나에게 외국 소설은 정서와 역사가 와닿지 않으니 일독도 어려워졌다. 터키형 여성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루과이 사람을 묘사할 때 쓴다는 전형적인 디티람보는 주석 덕분에 알았다.

 

 

단편 소설

나는 문해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 작가가 쓴 책을 찾기 시작했다. 흥미가 없는 분야도 보기 시작했고, 각종 에세이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읽지 못했다. 긴 호흡을 참기엔 나의 집중력은 금방 바닥이 났고, 흥미를 도통 갖지 못했다. 완독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유일한 완독서가 탄생했는데, 바로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였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근무지 근처에 읽을 수 있는 서점이 있어 점심시간마다 갔던 것 같다. 2016년인가 17년도였나, 주로 개발 서적을 억지로 읽었다. 읽고 나면 기억나는 내용도 없지만, 이 또한 과정이리라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다 지겨워진 어느 날에 그냥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싶었다. 매대에서 파스텔톤의 표지가 눈에 띄었다. <쇼코의 미소>는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던 자기 계발 서적과 달리 오랜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짧은 글 안에 담긴 서사는 바짝 집중하기 좋았다. 네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기억하는데, 점심시간마다 한 에피소드를 끝냈다. 물론 그것은 단편 소설이어서가 아니라 작가의 매력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나는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책 이름을 기억하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렇듯 단편소설은 집중하기 조건을 갖고 있다. 핵심만 뽑아놓은 요약 해설집 같다. 다가온 시험 기간에 절친한 선배가 건네준 족보집같다. 뭐든 포인트를 잡고 줄이고 덜어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단편 소설은 독자에게 매우 친절하지만 글쓰기 초보자에게 매우 어려운 글이다. 소설가를 희망하는 사람이 한 권으로 여러 문체와 다양한 스타일의 어휘를 접하기 아주 좋은 기회며, 특히 여러 작가가 엮인 그런 단편집은 더욱이 족집게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여러 작가 중에서 내 취향의 문체를 발견할 수 있고,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결과물을 예상해보는 상상도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의 간단한 약력도 포함돼 덤으로 잡지식도 얻을 수 있다. 나는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 덕분에 다시 독서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

장르의 대가가 고른 '파리 리뷰'의 단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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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문장이 예쁘지 않나?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는 시작하자마자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을 선보인다. 홀린 듯이 문장을 기록하게 된다. 비단 나뿐만 이렇게 느낀 것이 아닌지, 이것은 한국판에서 책의 제목이 됐다. 이 책의 원제는 문학 실험실이라는 별칭이 묻는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답게 'Object Lessons(실물 교육)'라고 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들에게 파리 리뷰의 단편집 중 본인만의 단편 '정수'를 고르고 선택에 대한 인사이트를 남길 것을 요청했다. 덕분에 해설이 있어 이해하지 않는 작품을 더 쉽게 읽어볼 수 있고, 단편이니 재독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모든 작품이 책을 읽는 동안 글귀가 착 달라붙진 않았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의 열 다섯 개의 작품을 실었다. 한 작품당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단편소설 작가 약력과 작품 본문, 그리고 이 소설을 선택한 작가의 약력과 해설지로 한 작품을 끝낸다. 즉, 총 서른 명의 글이 책에 쓰여있고 그것은 곧 목차로 사용됐다.

 

 

데니스 존슨의 <히치하이킹 도중 자동차 사고>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관습을 부수는 통렬하고 날카로운 서사

 

 

조이 윌리엄스의 <어렴풋한 시간>

다니엘 알라르콘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같이 생생한 글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데이비드 민스의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이선 캐닌의 <궁전 도둑>

로리 무어의 엄청난 깊이의 지혜, 수수께끼, 치밀함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

다니엘 오로즈코의 평범한 일상을 환상으로 만드는 세밀한 감각의 축적

 

 

제인 볼스의 <에미 무어의 일기>

리디아 데이비스의 화자, 서술, 유머 모든 것이 명징하다

 

 

제임스 설터의 <방콕>

데이브 에거스의 대화로 구성된 짧은 걸작

 

 

메리베스 휴즈의 <펠리컨의 노래>

메리 겟스킬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알렉산다르 헤몬의 우리는 영원히 실패하기에 경이롭다

 

 

버나드 쿠퍼의 <늙은 새들>

에이미 헴펠의 분노, 애정, 그리움, 두려움을 탁월하게 다룬다

 

 

메리 로비슨의 <라이클리 호수>

샘 립사이트의 이 소설을 읽고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리디아 데이비스의 <플로베르가 보낸 열 가지 이야기>

앨리 스미스의 문장 몇 줄로 우주를 전달한다

 

 

노먼 러시의 <거짓말하는 사람들>

모나 심슨의 편집장은 첫 문장만 읽고 바로 출간을 결정했다

 

 

에번 S. 코널의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

웰스 타워의 완전히 새로운 연민을 느끼게 하는 독창적인 인물

 

 

댈러스 위브의 <스톡홀름행 야간비행>

조이 윌리엄스의 이 미친 시대에도 재미있고 기괴한 이야기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목차

 

 

 

취향이 범람하는 책 한권


 

내가 책을 접하기 전에 알고 있는 작가는 거의 전무하다. 들어본 것 같긴 해도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고, 거의 처음 들어본 작가들이다. 그러다 보니,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의 명성보다 내가 느낀 감동은 조금 덜할지도 모르겠다. 작가 지망생들의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파리 리뷰는 1953년도에 창간했으며, 여러 문학을 다뤄왔다. 지망생뿐만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본인은 '파리 리뷰'란 계간지를 처음 접한 셈이지만, 이 일을 계기로 여러 서치를 해보고 일독한 결과, 파리 리뷰가 가지고 있는 명성과 가치에 대해 동의하게 됐다. 또한 15명의 목소리가 들어간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현재 단편 소설을 써보려는 나에 대해 해결서처럼 다가왔다. 내가 조금 더 선호하는 화법은 어떤 것인지, 스타일은 어떤지 등, 15개의 단편선 중에서도 매력적인 도입부, 문체, 이해, 그리고 취향까지 사로잡은 작품을 두루 살피며 내 취향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인물의 행동묘사를 통해 단편 속 세계관이 구체화한 작품을 주로 선호했다. 꼭 행동묘사를 작가 시점에서 풀어낸 것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대화도 포함된다. 인물의 생각만으로 추상적인 묘사를 통해 모호하고 미스테리하게 다가오는 불분명한 문체보단 분명하고 확실한 결과가 보이는 문체에 대한 취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감성적인 어휘를 찾는다. 이상적인 사고로 풀어낸 객관적인 서술을 선호하면서도 단순하게 행동의 나열, 사건의 결과로 표현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독자가 감상적인 포인트를 가져갈 수 있는 키(key)가 필요했다. 표현하자면 위의 문체가 안타로 치고, 이런 포인트는 홈런을 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태어나길 사고형으로 태어났지만, 감성적으로 발달한 정서적인 성향은 꽂힐 만한 부분을 찾는다. 덤으로 취향과 별개인 도입부의 힘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단편 소설은 그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 같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와 내 취향 조건에는 위에 열거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 나는 '취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 취향에 들어온 단편 소설은 다음과 같다. 레이먼드 카버의 <춤추지 않을래>, 조이 윌리엄스의 <어렴풋한 시간>, 제임스 설터의 <방콕>으로,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고 해설 없이도 글의 분위기에 녹아들 수 있었다. 그리고 취향이니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무조건적인 호감을 느끼게 됐다.

 

 

어떤 일도 그에게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 어떤 일도 노골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를 변화하게 한 일들은 흐릿하고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이상하게 거추장스럽고 있을 법하지 않은 삶을 살게 했다. 죽음은 철저하지 않았다. 죽음에는 선명한 테두리가 없었다. 모든 사랑과 책임만 남겨두고 야옹거리며 영영 사라졌다.

 

<어렴풋한 시간> 중 43쪽

 

 

맬은 기쁜 없는 삶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죽음은 어디에나 있으므로 꼭 시체가 있어야 애도할 수 있는 거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복숭아씨에는 청산가리가 차오른다. 접은 냅킨에 수막염이, 젖은 샤워장에 소아마비가 있다. 영원은 저녁 공기 속에 있다.

 

<어렴풋한 시간> 중 47쪽

 

 

어린 맬 베스터가 아빠를 향해 기어갈때면, 그는 다리를 한껏 벌려 아이를 피했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며 사랑을 주었던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해변가에서 사라졌다. 물에 닿는 것조차 싫어했다던 엄마가 어떻게 상어의 뱃속에서 입고 있던 수영복의 흔적이 나왔다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맬은 해변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곳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맬이 어떤 말을 하고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맬이 행동함에 따라 추측할 뿐이다.

 

 

그들은 술을 마셨다. 레코드를 들었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레코드를 틀었다. 꼬마들, 춤추지 않을래? 남자는 이렇게 말하려고 결심했다가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너희, 춤추지 않을래?" "별로요." 남자애가 말했다. "어서". 남자가 말했다. " 내 마당이야. 원하면 얼마든지 춤을 출 수 있어."

 

<춤추지 않을래> 중 105쪽

 

 

여자의 말은 말은 이전 서사의 한 조각을 돌이키면서 마당에서 있었던 그 장면에 조명을 비추고, 다시금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무한한 침묵 속으로 던져버리면서 이야기의 끝에서 앞을 열어젖힌다. "뭔가 더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다 말로 할수는 없었다. 얼마 후 여자애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덧붙이자면 여자는 그 시도를 멈추었지만 독자는 절대로 멈출 수가 없다.

 

<춤추지 않을래> 중

데이비드 민스의 위대한 이야기는 영원한 가려움

 


남자가 어떠한 사연으로 집안의 모든 가구를 판매하는지는 모른다. 단지 그가 눕던 쪽, 그녀가 눕던 쪽을 통해 '남자'가 등장하지만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떠한 상실을 경험했고, 상실을 잊고자 추억이 서린 모든 것을 자신의 앞마당에서 처분하고자 한다. 진입로에서 훤히 다 보이는 앞마당에서 춤을 춘 '여자애'는 이때 경험한 것을 모두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전말에 대해 독자에게 모두 알려주지 않는다. 남자가 어떤 사연을 갖고 술에 취해 춤추길 권유하는지도,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사랑? 그는 의자에서 뒤로 몸을 기댔다. 처음으로 여자는 그가 요즘 평소보다 술을 더 마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얼굴을 보니 그랬다. 나는 하루의 매 순간 당신 생각을 했어, 그가 말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을 사랑했어. 당신이 절대적으로 새로운 게 좋았고 당신이 말한 것, 행동한 것이 전부 좋았어. 당신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어. 함께 있으면 난 삶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어. 누구나 꿈꿔왔던 모든 것을. 나는 당신을 숭배했어.

 

<방콕> 중 239쪽

 

 

방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과거가 갑작스러운 밀물처럼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거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는 모습으로 지나갔다. 업무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았다. 그는 캐럴의 피부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았다. 비단결같았다. 캐럴의 이야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다.

 

<방콕>중 245쪽

 

 

이미 가정을 이룬 크리스와 전연인 캐럴의 끝내지 못한 이별을 경험하는 대화같다. 캐럴은 크리스가 가지고 있는 현재가 행복한지 추궁하는 것 같다. 가게로 찾아온 그녀를 밀쳐낼 수있음에도 불구하고 캐럴의 말에 저항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거절할 뿐이다. 그는 의자에서 뒤로 몸을 기대는 것처럼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격렬한 거절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 끝내 캐럴이 나가자 방이 헤엄치고 있다고 표현하는 문장에서 크리스의 마음 속에서 의문이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내가 선택한 지금의 삶이 진정 원하는 것이 맞는지.

  

 

 

충실한 가치관에 의한 새로운 발견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위처럼 작가의 해설을 통해 매력을 느낀 경우도 있다. 이는 작품을 어떻게 표현하고 포장할 것인지,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결정하는 편집의 힘처럼 느껴졌다.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을 단 한 줄로 요약한 작가의 인사이트는 - 마치 추천사와 같다 - 그들이 작품을 읽고 어떤 점에서 매력을 느꼈는지, 인물들과 글을 쓴 작가의 생애를 점칠 하여 본인이 느낀 지점을 매력적으로 표현한다. 책은 목적 외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작품을 담기도 급급한 453페이지는 앞단의 편집자와 옮긴 이의 말 이외에 어느 것도 담지 않았다.

 

 

잃어버린 사랑을 느끼려면 아만다를 사랑했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그녀의 웃음과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 턱에 난 작은 흉터를 떠올려야 한다. 노스탤지어는 구체적이고 세밀한 감각이 쌓일 때 생긴다. 다시 말해 작가들의 진부한 문구인 "말로 하지 말고 보여줘라"를 따를 때 가능하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중

다니엘 오로즈코의 평범한 일상을 환상으로 만드는 세밀한 감각의 축적 209쪽

 


작품을 일독하였으나, 재독 하지 않은 상태로 모든 작품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 어렴풋한 감상과 느낌이 있는 상태다. 단순히 작품이 가진 문장을 통해 내 취향임이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수 있는 정도지만, 순수히 독자로서 취향의 재정렬을 할 수 있었고, 작품의 다채로움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됐다. 이외 작가 지망생으로서 문체의 다양성을 느끼는 계기와 시도를 멈추지 않는 문학 본질에 근접한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정신을 엿본 단편적인 예시로, 취향은 아니어도 쉽게 읽히고 손이 가는 작품도 있었다. 이선 캐닌의 <궁전도둑>, 버나드 쿠퍼의 <늙은 새들> 같은 작품이다. 선명하고 선이 확실한 서술은 작가가 가득 채운 공간에 새겨놓은 길을 집중하여 따라가기만 해도 반타작이었다. 반면에 해설을 읽어도 일독으로 전혀 와닿지 않는 작품도 있다. 제인 볼스의 <에미 무어의 일기>,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가 대표적으로, 글을 읽었으나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아직 작품에 빠져들지도 못했는데 인물의 심리에 바로 집중하자니, 흥미를 못 느낀 것 같았다. 해설을 읽어도 별 차이가 없었다. 작가의 의도는 뾰족했지만, 나의 수용력이 그만큼 받쳐주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문예지에 대해 지식도 별로 없고 인제야 글을 쓰면서 혼자 알음알음 알아가는 단계인지라 작가에 관련한 A to Z도 넓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내게 신선했다. 다른 이에게는 닳고 닳은 오래되고 정형적인 문예지일지 몰라도, 내가 만족할 만큼 글을 써보자! 단계인 나에겐 색다른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적용해보자면, 작가 지망생인 나에게 결국 습작을 완성하지 않으면 단순히 도서 목록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습작을 여러 번 쓸 수 있게 하는 동기부여의 책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대중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만의 색을 갖춘 글을 좋아해 줄 사람에게 공감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습작을 완성하는 목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파리 리뷰가 가진 가치관을 담은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I knew every raindrop by its name)>는 충실하게 브랜딩을 이행하고 있다. 이 책을 접했다 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외국 소설과 단편 소설에 대한 단상은 읽기 전과 후가 별반 달라진 점은 없다.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면도 여전히 동일하다. 단지 새로운 라벨링이 붙었을 뿐이다. 새로운 작가의 스타일과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탐험지라고. 그런고로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책에 흥미를 갖고자 하는 독자에게, 또 글이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에게 '경험'을 목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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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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