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포르투갈의 높은 산, 상실의 또 다른 이름

상실을 겪은 세 남자의 이야기
글 입력 2021.12.1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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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인상 깊게 봤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 소설가인 ‘얀 마텔’ 작가의 신간을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굉장히 궁금했다. 정확한 지명을 말하는 것인지 무언가를 은유하는 것인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총 세 가지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읽으면서 ‘이 인물이 여기서 또 등장하네?’라는 느낌을 자주 받아서 작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썼는지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 부분은 직접 읽어야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므로 생략하도록 하겠다)

 

 


첫 번째 이야기, 집을 잃다


 

첫 번째 장은 토마스의 이야기이다. 토마스는 숙부의 하녀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해 열애를 시작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가스파르라는 아이가 태어난다. 하지만 세 사람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도라와 가스파르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한순간에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토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부고까지 듣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는 큰 상실에 빠져, 세상에 반발심을 품게 되고 급기야 뒤로 걷는 행동까지 하게 된다.

 

이후 토마스는 율리우스 신부의 일기를 읽고 놀라울 만큼 궁금증을 품게 된다. 일기를 필사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도 보인다. 토마스는 일기에 등장하는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험난한 여정을 이어나간다. 운전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토마스가 운전을 하게 되고, 오직 그곳에 가야겠다는 열망 하나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자동차라는 물건이 생소했던 시기, 토마스가 운전대를 잡고 끙끙거리는 모습에서, 면허를 따겠다고 연습하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해 괜스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토마스는 밀려나고, 버려지고, 유기당하는 느낌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도로주행 시험을 볼 때 정말 이랬던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많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영혼이 고통스럽고 기계를 운전하는 데에 진절머리 나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그의 시련이 절반만 끝나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씻지 않고 면도를 하지 않아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직장을 잃어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아들과 연인이 그리워서다. 그가 흐느끼는 이유는, 이유는, 이유는. (p.158)
 

 

첫 번째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인데, 토마스의 감정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부분이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아들과 연인을 잃고, 아버지까지 잃은 한 사내의 이야기. 차마 이해한다고도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이리라. 읽으면서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 토마스의 이야기였다.

 

 

 

두 번째 이야기, 집으로


 

두 번째 이야기는 아내를 잃은 아우제비우라는 한 의사의 이야기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인 죽은 아내와 함께, 종교와 죽음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죽은 아내와 대화를 나눈 것은 그의 환각일까, 상상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또한, 약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종교적인 죽음에 관해 대화하는 부분이 이어지는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연결 지어 말하는 그녀 때문에 그 작가의 작품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아우제비우에게 마리아라는 한 노부인이 찾아와 남편의 부검을 요청하게 되는데, 그는 떨떠름해하면서도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부검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괴했는데, 발에서 나온 토사물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해 아쉽다. 맥락상 ‘아이의 죽음’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한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흉부를 갈랐을 때 보이는 침팬지 한 마리와 새끼 곰은 각각 남편 라파엘과 아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마리아 부인은 남편의 시신 안에 자리를 잡고는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라는 말을 한다. 아우제비우는 그녀의 부탁을 따라 시신을 다시 봉합하게 된다.

 

이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 인상 깊었다.

 

 

 

세 번째 이야기, 집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캐나다의 상원 의원인 피터이다.

 

피터는 아내와 사별한 후,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무료한 삶을 살아가던 남성이다. 그러다 영장류 연구소에 방문한 그는 ‘오도’라는 침팬지를 만나게 되고 마치 운명처럼 이끌리게 된다. 그렇게 그는 만 5천 달러라는 거금을 주고 오도를 데리고 오게 된다. 그리고 그는 오도가 머물기에 캐나다는 적합한 기후가 아니라고 생각해, 포르투갈에 이민을 가기로 마음먹는다.

 

오도와 피터는 텍스트로만 보아도 교감 그 자체를 한다고 느껴졌다. 눈빛만으로도 대화가 통하는 그런 것 말이다. 포르투갈에서 피터와 오도가 산책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오도가 피터의 샌드위치를 뺏어 먹고, 커피까지 호로록 마셔버리는 행동이 정말 귀여웠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한낮의 즐거운 분위기가 그려져 빙긋 웃음이 났다.

   

 
오도가 왜 같이 있으려 하는지, 왜 특별히 그를 원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또 다른 미스터리다. (p.352)
 

 

이 구절은 ‘피터와 오도가 정말 운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가끔 TV 동물농장을 보면서도 ‘사람 – 동물 간 운명은 정말 존재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텍스트로써 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새로웠다. 피터가 마지막 숨이 다하고 심장이 멎는 장면에서, 이후에 오도가 그 옆에 반 시간쯤 머물렀다는 부분 또한 이러한 감정을 다시 느끼게 했다.

   

*

   

책의 분량이 그렇게 짧지 않았는데도 굉장히 잘 읽혔던 작품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같은 상실은 삶에 정말 큰 충격을 줌과 동시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다. 누군가는 슬픔에 빠져 남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기이한 일을 겪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로서 위로를 받게 된다.

 

얀 마텔 작가가 결국 말하고 싶었던 것은, ‘각자가 상실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며, 그것들은 모두 존중되어야 마땅하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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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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