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각과 상상 만나기 -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시]

글 입력 2021.12.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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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는 예술가의 모든 심리적인 상황 즉 꿈, 무의식, 심리적인 자율성을 총동원하여 금기시된 자기 생각과 사고를 그대로 표현하려는 운동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즉흥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단어를 즉시 표현하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축에는 문학가인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만 레이 등이 있다.


총 6개의 섹션 (1섹션 초현실주의 혁명, 2섹션 다다와 초현실주의, 3섹션 꿈꾸는 사유, 4섹션 우연과 비합리성, 5섹션 욕망, 6섹션 기묘한 낯익음)으로 구성된 전시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쟁의 얼굴 _살바도르 달리



[크기변환]전쟁의 얼굴 - 살바도르 달리 출처;위키아트.jpg

 

 

작품 앞에 몇 분 동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골이 상접한 채 사람인지 해골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얼굴에는 괴로움과 전쟁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그러나 눈과 입에 그려진 반복된 그림은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표정을 알 수 없고 이제는 뼈만 남은 누군가의 죽음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는 듯했다. 전쟁의 참혹한 비극을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는 그림들은 봐왔었지만, 전쟁을 겪은 타인의 표정을 이토록 가깝게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눈 안에 빨려 들어가도 그다음 해골, 해골, 해골.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은 섬뜩하게 느껴진다. 사람의 피를 갉아 먹는 듯 유유히 꼬리를 흔드는 뱀의 형상도 보인다. 뒤섞이는 여러 감정이, 작품 제목 자체를 오롯이 느끼게 해준다.

 

 

 

위대한 편집증 _살바도르 달리



[크기변환]위대한 편집증 - 살바도르 달리 출처;위키아트.jpg

 

 

1929년 살바도르 달리가 한 작품에 여러 개의 이미지와 장면을 겹치기 시작하면서 ‘편집광적 비판 방법’이라고 불렀던 방식의 예시이다. 언뜻 숨은그림찾기 놀이가 생각났던 작품은 사람들의 형상이 모여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낸다.

 

‘캔버스를 살펴보는 동안 자신의 특정한 꿈과 욕망을 기억나게 하는 부분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오디오 가이드가 설명해주듯 나는 이상하게 이 작품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보다 뭔가의 생명력을 느꼈다.

 

오른쪽 위의 희미한 형상이 강아지라고 상상한 것을 시작으로, 각 개체가 함께 힘을 모으고 협동하며 나아가는 느낌, 큰 얼굴의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모습처럼 보였다. 활동적이고 의지를 돋우는 생활에 대한 열망이 투영된 것일까.

 

 

 

비너스의 이비인후과적 머리 _살바도르 달리



코와 귀의 위치가 뒤바뀐 비너스 조각상이다. 변형을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바꾸고자 한 작품은, 사람 얼굴의 형태가 유지된 덕인지 엄청나게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향수를 손목과 귀 뒤에 뿌리곤 하는데, 그때는 코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곤소곤 이야기해야 할 때는 생각보다 얼굴에 훨씬 더 가까이 붙어서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귀걸이를 한다면 어떨까. 엉뚱한 상상은 끝없이 이어지며 작품 앞에 머물 수 있게 했다.


상상의 나래도 잠시, 실제가 된다면 이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머뭇거렸다. 뭐든 제 역할을 하는 곳에 자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한편, 이런 생각을 꼬집는 것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지 않나, 생각한다.

 

 

 

증인 _만 레이



[크기변환]이미지09_만 레이-증인.jpg

 만 레이(Man Ray, 1890-1976)

증인(Le Témoin), 1941

혼합재료, 15,4 x 29,8 x 29,8 cm

© MAN RAY TRUST/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만 레이의 작품에서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사탕 포장 상자에 눈 모양의 유리구슬을 넣었다.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 그렇게 멈추게 만들고, 실체 없는 무언가와 마주친다. 트럭의 뒤에 붙여진 눈 스티커를 보거나 쓰레기통 뚜껑 또는 우연한 조합으로 만든 눈 형상을 본다면, 우린 움츠러든다. 본다는 행위 자체는 실체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들고, 의식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무엇을 보는 것일까, 무엇을 알고 있고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말해야 하고, 눈앞에서 솔직해져야 할 것만 같다.

 

 

 

성막 _이브 탕기


 

[크기변환]성막 - 이브탕기 출처;위키아트.jpg


 

만 레이의 ‘증인’과 가까운 곳에 설치된 이 작품에 연달아 소름이 돋았다. 마음에 눈이 있다면 너무 무섭지 않을까. 말투와 행동, 분위기가 눈이었다면 더 솔직하게 드러나진 않을까 상상한다.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될 때, 거짓 없는 눈빛은 서로에게 독이 될까? 금세 익숙해진 비주얼은 언뜻 귀엽게까지 느껴진다. 서로 말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눈의 힘과 눈에 매료되었다는 만 레이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앉아있는 사람 _에일린 아거


 

[크기변환]이미지03_에일린 아거-앉아있는 사람.jpg

에일린 아거(Eileen Agar, 1899-1991)

앉아있는 사람(Seated Figure), 1956

캔버스에 유채, 184 × 163 cm

Photo ©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초현실주의자들 중 최초의 여성 작가였다는데 의의가 크다고 한다. 작품은 울퉁불퉁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입은 옷이나 앉아 있는 소파의 질감을 압축하고 박제한 뒤, 그 위를 색칠한 느낌을 준다. 어디까지가 손발이고 얼굴인지, 소파의 형태나 혹은 반려동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역시 상상의 공간을 선물한다.

 

왼쪽 중반의 번개 모양의 꽃이 담긴 물병, 그 옆의 고양이.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은 사람이 밤색 소파에 앉아 초록색 담요를 덮고 있고, 세모난 모양의 카펫이 깔린 장소가 연상된다. 초현실주의가 타인에게 제공하는 상상력의 진가를 알게 된다.

 

 

 

인형놀이 _한스 벨머



금지되고 무의식적인 사고를 침입하는 것에 매료된 초현실주의자 한스 벨머. 그의 작품은 인형들의 변형과 재조합에 섬뜩함을 준다. 사전에 검색하고 갔었지만, 생각 보다 놀라지 않았고, 생각보다 더 놀랐다.

 

불쾌한 느낌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쯤,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배경과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는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되자,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정권에 유익함을 준다고 생각하여 그만두고 인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에 대한 보상으로 인형을 ‘통제’하는 작품을 보였고, 나치 정권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의 인생 안팎으로 일어난 사건들, 통제, 욕구를 알게 되니, 작품들이 더욱더 괴롭게 느껴졌다. 사람의 신체가 조각나 있는 것처럼 보여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존재감만은 뚜렷했다.

 

*

 

전시는 충분히 친절하고, 충분히 불친절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을 통해 초현실주의의 매력ㅡ관람객에게 작품을 상상으로 맡기고 해석을 맡기는ㅡ을 알게 되었고, 작가들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사고와 관람객의 상상이 만나 풍요로워짐을 경험했다.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 시간이 맞물려 더 잘 향유할 수 있었기에 가이드는 꼭 듣기 바란다.

 

 

 

서지유.jpg

 

 

[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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