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 [사람]

글 입력 2021.12.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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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다. 올해 날씨는 한참 전부터 추운 겨울 같았지만, 12라는 숫자를 마주하고 나니 연말이 다가옴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연말을 보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열 수도 있겠고, 집에서 나 홀로 집에를 보며 핫초코를 홀짝이거나, 가족들과 끝내주는 식사를 할 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연말을 보내기 위한 이 모든 행위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을 것이다. 2021년 한 해, 당신은 얼마나 많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고 또 얼마나 많은 부재를 실감했는가.

 

사전적 의미의 부재는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뜻하는 명사로 구분된다. 이건 물리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심리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으며 물리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상대가 떠나버렸거나,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멀어져 버렸을 때 혹은 둘 다 해당할 때ㅡ그리고 내 삶에서 그들의 빈자리를 느낄 때 우리는 부재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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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을 만드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일이 있다. 물건을 사는 건 쉽지만 오래도록 그 물건을 방치하지 않고 내 곁에 두는 건 더 어렵다. 예전에 어디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당신을 울게 한다고. 나는 그 말에 아직도 깊이 공감한다. 익숙함은 당연하다는 착각을 불러온다. 당연히 오래도록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사라질 때, 그 빈자리는 더욱 크게만 다가온다.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은 우리를 울게 만든다.

 

가족이나 친구 등, 내가 맺은 인간관계의 바운더리 밖에서 부재를 처음 실감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언젠가부터 야채를 파는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매일매일 앉아 계시는 건 아니었고, 주로 주말이 다가오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항상 귀여운 귀마개나 털모자를 쓰고 계셨다. 하교할 때마다 마주치는 할머니의 모습에 어느새 나는 익숙해졌고, 어렸던 나는 마음속으로 할머니께 야채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 드리기도 했다.

 

희미해진 초등학생 때의 기억이지만 야채 장사가 잘됐던 것 같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손님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항상 혼자 앉아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더 익숙했다. 몇 주쯤 지나고 나니 매번 같은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야채 할머니에게 친밀감이 들었다. 혼자 앉아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심심해 보여서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초등학생 같은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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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용기 내 할머니께 “이 야채는 뭐에요?” 라며 말을 건넸고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시간이 오래 지나 그 야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부재하다. 그 이후로 나는 하굣길을 오가며 할머니와 자주 인사를 나눴다. 할머니는 말수가 많으신 편은 아니었지만 웃음이 많으셨다.

 

종종 하굣길에 정문 앞에 야채 할머니가 계시면 인사를 나누는 일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면 할머니는 소녀같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거려주셨다. 반복되는 상호작용은 안정감을 가져온다. 할머니는 나에게 학교 정문 앞에 항상 있는 사람으로 자리했다. 야채 할머니가 그 자리에 계시지 않는 날에는 되레 서운함을 느꼈다.

 

5학년이 6학년이 되는 동안 나는 키가 많이 컸고, 그만큼 바빠졌다. 6교시를 하고 집에 가는 날들이 많아졌고, 어느 순간부터 야채 할머니가 정문 앞에 계시는지 아닌지를 살피지 않게 되었다. 정문 앞에 계시는 날에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전처럼 할머니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초등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해라며 친구들과 신나게 놀러 다니는 사이, 야채 할머니가 학교 앞에 나오시는 횟수가 드문드문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이었나, 날씨가 추워질 무렵 문득 야채 할머니가 추우시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문득 야채 할머니의 털모자가 보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 이후로 야채 할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13살의 나에게 야채 할머니의 부재를 실감한 순간의 여운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몸이 아프신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셨을까, 날씨가 추워져 잠시 쉬시나, 혼자 온갖 생각을 하며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고는 야채 할머니를 조금 더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죄책감을 느꼈다. 부재는 후회를 가져온다. 그래도 끝에는 항상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할머니는 다른 곳에 건강히 잘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칠 때까지도 나는 종종 하굣길에 텅 빈 자리를 보면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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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생 때 부재의 허전함과 슬픔을 알았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부재를 다루는 데 서툴다. 겨울은 유독 지나간 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떠나야만 했고 떠나보내야만 했던 것들이 있는 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삶에서 사라져 간 것들도 있다. 후자로 인한 부재가 더 마음 아프다. 새로운 만남이나 소비를 한다고 상실로 인한 빈자리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지만, 아직 나는 부재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지난 한 해 새로 내 곁을 내준 것과 그곳에 없는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씁쓸해지는 동시에 잃어버리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것들은 영원히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연말에도, 그다음 연말에도 말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불 때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 것 영영 부재하지 않기를 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가 나를 떠나겠지만, 포근한 연말 분위기는 괜히 영원을 소망해보게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올해 어떤 것을 잃었고 어떤 것의 부재를 실감했는가. 그리고 부재의 빈자리와 공허를 어떤 방식으로 매꾸어 나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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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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