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특한 연출, '끝없음에 관하여' [영화]

글 입력 2021.12.1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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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도시를 나는 연인, 시골길에서 춤을 추는 젊은 여성들, 바 안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보는 손님들 등 연작 시처럼 여러 인물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끝없음에 관하여>만의 독특한 형식은 회화처럼 아름다운 미장센과 어우러진다.

 

마르크 샤갈의 대표작 [도시 위에서]를 오마주한 영화의 한 장면을 포착한 것으로, 영화의 환상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영상미를 엿볼 수 있다.

 

 

 

영화의 흐름은 이런 식이었다.


 

영화의 흐름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독립적인 장면들이 대강 2분씩 30컷의 모음으로 만들어져있고, 기승전결을 느끼기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

 

카메라를 한 편에 세팅해두고, 건물도, 사람도, 시간의 흐름도 정지된 채 몇몇 사람만 움직이거나 이야기를 한다. 대사와 대사 사이에 공백이 길고, 원활한 대화가 아닌 혼자 허공을 향해 이야기하는듯한, 상대로부터 대답이 없는 장면들도 여러 개다.


어떤 공간에 사진을 찰칵하고 찍어두고, 정지된 액정에 몇 군데만 움직이는 듯한 독특한 딥 포커스 구성은 긴 호흡 안에 궁금증과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다. 무언가를 시사하는 것인가 싶다가도 서로 간에 긴밀한 상호작용이 없는 장면과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인지 실소가 터져 나온다.


레스토랑의 한 직원이 포도주를 따르다가, 곧이어 잔에는 포도주가 넘쳐흐른다. 당황한 손님이 일어나자,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흡수가 되는지 아닌지는 안중에 없고 포도주를 찹찹찹 닦아낸다. 그런 반복되는 장면을 수 초 동안 보고 있으면 웃음과 함께 조용한 가운데서 내레이션이 나온다. ‘다른 생각에 빠진 남자를 보았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내레이션은 반갑게만 느껴졌다.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가 있다.’ 등 새로운 장면의 전환이나 설명을 하는 내레이션이, 단순한 문장이지만 되려 친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영화는 조용한 가운데 흡입력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나를 뻘쭘하게 느낄 정도로 웃음기가 없거나 이질적이었다.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게 하며 관객을 붕 떠 있게 하는 느낌 또는 배척하는 느낌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집중하게 했다.

 

신기한 영화이자 작품이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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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은 회색빛이다. 원색 한 방울만 톡 찍어둔다면 눈의 피로가 확 몰려올 수도 있겠다 느낄 정도로, 무채색만의 정제되고 단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촬영 기법 때문인지, 색감 때문인지, 대사의 양 때문인지, 정지되거나 최소한의 움직임이 이는 장면들 때문인지, 전쟁 후의 모습으로 투영되는 흙빛에서 아이러니하게 깨끗하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끊임없이 뒤바뀌는 기법도 집중력을 일으키지만, 무겁고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도 집중력을 일으킨다. 전자는 포커스가 맞춰진 인물이나 소리에 신경이 간다면, 후자는 스크린의 전체를 보게 만든다.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는 후자다. 진하고 우직하게 멈춰있는 장면은 인물의 표정뿐 아니라 주변의 것들을 살피고 관찰하는 재미로 이끈다.

 

어느 손에 국자를 들고 있는지, 어느 쪽으로 사람이 지나쳐 가는지, 사람들은 어디를 쳐다보고 있는지, 가방은 어떤 형태인지, 옷은 어떤 형태인지 등. 관찰의 묘미도 있다.

 

 

 

의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바, 의도는 무엇인가. 리뷰를 기고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영화를 본 나에게도, 이 영화를 볼 이들을 위해서라도 정리는 필요했다.


 

제목에 있는 ‘끝없음’은 무한한 공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과학적 측면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이 영화에서 끝없음이란, 존재나 인간다움을 나타내는 흔적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 로이 안데르손 감독


 

전쟁 중이라도, 친구가 내 인사를 받지 않을 때라도, 위로받을 곳이 없더라도, 답을 알지 못하더라도, 춤을 추거나 와인을 마시더라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무수히 많은 흔적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는 감독이 ‘몇백 년 된 미술 작품에서도 지금을 반영하고 있다는 걸 느꼈듯’, 우리의 삶은 조각나 있고, 타인의 삶을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인간이기에 같은 고민을 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을 정도로 긴밀하다는 건 아닐까. 너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그 안에서 동질과 서로에 대한 위로 역시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버스에서 우는 이의 편을 들어주는 위로가 존재하며, 서로를 안아주는 포근함이 존재한다. 기쁨은 항상 존재하며, 사랑과 관심은 끝없이 존재한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며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로이 안데르손 감독은 이런 위로를, 영화의 장면 장면에 책갈피처럼 하나씩 꽂아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영화 <끝없음에 관하여>는 그간 보았던 여러 영화와 달라서 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보고 나오면서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가득 찼지만, 한 편의 영화가 아닌 미술관에 들렀다고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린다고 결론지었다.

 

미술관에서 가끔은 그 안의 인물이 내게 말을 걸어오거나 서로의 대화가 들렸으면 하는 상상을 하는데, 그 것 그대로 스크린에 담아 놓은 것 같다. (실제로 감독 로이 안데르손은 오토 딕스의 ‘저널리스트 실비아 폰 하르덴의 초상화’에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했고, 신즉물주의 등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한다)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영화의 독특한 느낌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영화의 흐름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온 순간까지 관객의 생각을 멎게 할 것 같다. 생경한 경험이 되었다. 영화의 미장센을 눈으로 좇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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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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