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ENFP의 상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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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와 함께 인사동 끝자락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담배를 입에 문 코트 차림의 아저씨가 비뚜름한 자세로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너무도 당당한 그 작태가 제임스 딘을 떠오르게 했다.
바로 옆이 차도였던 탓에 피할 수도 없었던 상황, 이내 매캐한 연기가 우리의 온몸을 쓰다듬었다. 들으라는 듯 과하게 기침을 한 우리는 고개를 돌려 그의 동태를 살폈지만, 그는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시대를 풍미한 반항아다운 애티튜드였다.
-길빵은 법적으로 규제를 해야 돼.
-벌금 같은 게 있긴 할 걸? 근데 누가 걸렸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어.
-그런 거 말고, 진짜 강력한 법이 있어야 돼.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은 때려도 무죄인 법 어때?
-약간 정당방위 느낌으로?
-그렇지.
걸음을 옮기던 우리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내 눈의 초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본 Y는 그런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 아저씨 생각 중이야?
-아까 그 길빵방지법 있잖아. 생각해보니까 좀 웃길 것 같애.
-왜?
-길빵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엄청 많잖아. 나 인턴 할 때 생각하면 나이 좀 있는 상사 중에 흡연 금지구역에서 담배 안 피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지? 길빵방지법 생기면 상사가 길빵하는 거 기다렸다가 줘 패는 사람들이 엄청 많지 않을까?
-그러다가 걸리면?
-안 들키게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우리 누나가 집에만 들어오면 사수 욕하는데, 되게 좋아할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이 길빵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리는 건 일도 아니라니까? 우리나라에 흡연 금지구역이 얼마나 많은데.
-길빵하는 사람들이 당하고만 있을까? 입에 담배 물고 있길래 신나게 줘 팼는데 알고 보니 비타스틱이면?
-그러네, 담배 안 피우는 사람들은 그런 거 잘 모를 거 아냐.
-이거 단편으로 찍어도 재밌겠다.
어느새 제임스 딘 같은 것은 잊어버린 우리는 실없이 웃었다.
-사실상 결투를 조장하는 법 아니야? 담배 물고 있는 동안은 서로 때려도 죄가 없는 거잖아.
-그러네?
-싸우기 직전에 서로 담배 물라고 하는 거지.
-그럼 비흡연자들은 어떡해?
-경찰서 가기 싫으면 피우겠지?
-흡연을 조장하는 법이 될 수도 있겠는데?
입법은 이렇게나 어려운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박호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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