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계와 불편의 상관관계 [사람]

글 입력 2021.12.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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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걔도 좀..그렇지 않아..?”

 

정말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실은 나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친구 A와 B가 만나 평소 불편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조심스레 A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이었다. 당황한 B는 급하게 다른 이야기로 화두를 돌렸지만, 여전히 찝찝함과 당황스러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고 했다. 내내 신경 쓰였던 B는 결국 나에게 말해주었고, 이유는 몰라도 대화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며 권유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을 말하자면, 솔직히 서운한 감정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충격에 휩싸여 서운함이 묻혀버렸던 건지, 은연중에 나조차도 A를 그렇게 생각했던 건지, 머릿속을 가득 채운 물음표 때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서운함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왜?’라는 의문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내가 말실수를 했나, 내 행동이 불편함을 줬나, 내 태도에 문제가 있었나, 하는 의문들. 이후 계속 고민해 본 후에야 든 생각이지만, A의 성격이 나를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또는 우리가 쉽게 맞물리기 힘든 모양을 지녔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말하고선 내내 나를 걱정하던 B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도 모르게 뇌리에 깊게 박힌 건지 며칠이 지나도 자꾸 떠올랐다. 결국 우리 둘 관계의 역사를 훑어보고, 제삼자와 나의 관계의 양상을 비교해보고, 우리 둘 사이 있었던 큰 이슈들을 열거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도저히 명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나와 A를 배제한 ‘관계’ 그 자체에 깊이 고민했다. 관계란 대체 무엇이길래 손바닥 뒤집듯 서로에 대한 정의가 쉽게 바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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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나는 친밀함이 보장되는 사이라면 관계의 불편함은 당연히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관계의 시작을 생각해보면 사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동반되어야 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본 밑바탕처럼.

 

그렇기에 우리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없다는 것은 친밀함의 농도가 짙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 더 클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기에 잘 맞을 수 있었고,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었고, 융화될 수 있었다. 우연히 같은 집단으로 만나 그 안에서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모여 친구라는 이름 아래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반대로 운이나 연이 없었던 경우는 불편함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초면이라거나, 악감정이 존재한다거나, 상대방의 태도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거나 등의 분명한 이유가 기저에 깔린 관계에서는 너무도 쉽게 불편함을 찾을 수 있었다.

 

*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 지금, 그렇다면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없었던 불편함이 피어올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 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봤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더러 있었던 것 같다. 오랜 기간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내왔는데, 어느 순간 상대방의 단점만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둘만 있는 시간을 조금씩 꺼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도 내가 추측한 A의 이유와 마찬가지로 나의 성격이 상대방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였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한 번 포착되기 시작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단점 릴레이는 결국 상대방의 좋은 모습을 다 가려버리고 만다. 당시의 나는 그러한 상태였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병처럼 계속 이어졌고, 어느새 내 머릿속에 그는 ‘조금 불편한’ 사람이 돼버렸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면, 지금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불편함을 느끼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이제는 단점만을 찾는다거나 그 사람을 떠올리면 즉각적으로 불편한 마음이 재생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동안의 내가 성장을 하면서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고,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는 한동안 만남을 자제하기도 했다. 쉽게 부서질 관계가 아니어서였을까, 다행히 이러한 방법이 통했고 자연스레 불편함은 소멸했다.

 

*

 

사실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A가 여전히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일이 있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난 뒤에 A와 만난 적이 있다. A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다름없이 친밀했고, 다정했다. 이러한 모습이 나처럼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나아져서인지 또는 늘 해오던 대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전자이길 바랄 뿐이다. 운이 좋아서 시작됐던 관계이지만, 그 안에서 교감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그저 ‘운이 좋아서’라는 말로 치부하기 싫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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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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