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구피의 안락사

구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지막 선택
글 입력 2021.11.29 11:1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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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손가락 크기도 안 되는 작은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많은 새끼들을 품고 낳은 장한 녀석이다. 그 작은 몸뚱아리에서 치어 예닐곱 마리가 2-3번 주기로 줄줄이 나올 정도였으니, 참 기특한 구피였다.

 

구피를 키우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신기하게도 '세상의 법칙'이다. '암컷'은 언제나 몸이 고생스럽다는 점이다. 몸통이 기껏해야 2cm 정도 되는 구피의 어린이 시절부터 키운 나로서, 이들의 생태계 법칙과 순환 세계를 깨닫게 됐다. 똑같은 밥을 먹고 자라도 수컷들의 강렬한 구애 행동으로 인해 암컷은 매번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빠르게 늙어간다. 빠른 속도로 노화를 경험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은 대부분 암컷 구피다.

 

어제 세상을 떠난 구피는 암컷들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 보통 구피의 변은 얇고 기다란 반죽처럼 짧게 끊겨 어항 바닥에 떨어진다. 하지만 이 아이의 몸통에 위태롭게 매달린 '변'처럼 추정되는 줄기는 분명 변보다 훨씬 더 굵고 진한 색깔이었다. 몇 분만에 떨어지는 변과 달리, 그 돌출된 줄기는 몇 시간이 지나도 구피의 몸과 분리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탈장을 한 것이었다. 1cm도 안 되는 연약한 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작은 몸뚱아리가 쉴 새 없이 치어들을 품고 세상에 내보내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탈장한 구피의 장은 만지면 곧 뭉개질 것만 같았다. 탈장한 채 위태로이 유유히 어항 속을 헤엄치는 구피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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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잠겼다. 운명에 맡겨 이 아이를 어항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고통의 시간을 줄이도록 먼저 떠나보낼 것인가. 생명을 키우고 떠나보내는 일에 대해여, 비인간 동물인 구피에게도 연명치료 또는 안락사가 필요하다는걸 깨달았다. 생명의 목숨을 겨우 이어가지만 고통의 양과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 연명치료. 그리고 자연적 죽음 전 생명을 마감시키는 안락사. 나는 말 못하는 구피의 주인으로서 이 두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할 책임과 권리가 있었다.

 

구피를 잘 알고 능숙하게 키우는 자가 그랬다.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가야 가장 고통이 짧은 채로 생을 마감할 수 있다고. 그래서 냉동고에 얼음과 같이 밀착해 떠나보내는 것이 좋다고.

 

자연에서 살아가는 구피 중에 탈장을 한 개체가 있다면 당연히 자연사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집에서 가장 큰 애정과 관심을 받는 주인공인 나의 구피기에, 그 결말은 달랐다. 가장 아끼는 생명체가 가장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실거리며 먹이도 제대로 씹지 못하고, 먹이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배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 상태를 어느 주인이 넋놓고 바라만 볼 수 있겠는가.

 

심호흡을 했다. 급격하게 약해진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냉동고에 들어갈 작은 컵에 구피를 담기 위해 어항에 손을 뻗는다. 아픈 몸인데도 그 작은 몸으로 어찌나 쏜살같이 숨어버리는지, 생의 마지막 순간임을 아는 것일까? 삶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자동 반사 반응인지도 모를 정도로 발버둥치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 작은 생명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어항 앞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퇴근 후 화장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구피들 밥부터 주었던 정성, 새끼를 낳는 장면을 보고 아이처럼 기뻐했던 순간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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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에 컵을 넣기 전 마지막으로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수고했어, 좋은 곳으로 갈거야.'

 

구피는 급격하게 차가워진 몸으로 가장 빠르게, 고통없이 세상을 떠났다. 구피의 안락사는 주인인 내가 마지막으로 선물할 수 있는 '가장 적은 고통의 삶'이었다.


'안락사'에 관해서라면 구피의 죽음을 단호하게 결정할 수 있는 근거는 딱 하나였다.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사람처럼 고급의 의료 기술로 연명 치료가 가능한 존재라면 당연히 안락사를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구피는 어느 누구도 장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아픔을 구해줄 수 없었다. 그 연약함과 아픔의 고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떠나보낸 것이다.

 

등 뼈는 구부러진 채 몸 밖으로 튀어나와있는 연약한 장, 그 약한 몸이 될 때까지 이 삶을 고생스럽게 살아간 구피의 명복을 빈다. 노란색의 풍만한 몸통과 파란 빛의 아름다운 꼬리를 지녔던, 호기심이 많아 우렁이를 입에 넣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던 구피. 입 속에 들어간 그 우렁이를 빼내기 위해 택시를 타고 핀셋을 사와 수술까지 해줬던, 유난히 유별난 이 구피를 잊지 못할 것이다.

  

 

  

신지예 컬쳐리스트.jpe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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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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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 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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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은경
    • 저는 암수를 분리해서 키우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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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리안
    • 너무 공감해요.. 저희 아이도 지금 몸이 기억자로 되어서 바닥에서 연명하고 있는데.. 이따가 집에가서 안락사를 해줄지 고민이에요... 괴로워하는걸 보기가 힘들기도하고.. 그게 그 아이한테 더 나을거 같아서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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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 탈장 저절로 회복하는 경우도 많은데.. ㅠㅠ
      그리고, 보통 암컷이나 여성이 수명이 더 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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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유진
    • 저희 집 구피도.. 몸이 안좋아서 지금 치료중인데 이 글을보니 정말 폭풍 눈물이 나네요...... 말못하는 물속생물이어서 소리조차 못내는 동물이어서 너무너무 안타깝고 더 슬프고 속상한것같아요.. 물고기 키우는게 이렇게 슬프고 힘든일인줄 몰랐는데... 퇴근후에 화장실도 안가고 밥부터 주신다는 이야기, 너무 공감되고 우렁이 이야기를 하시며 별났던 구피라는 글을 보니 정말 오열정도로 눈물이 흐르네요... 안락사를 선택하시고 보내시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지..... 부디 편안하게 마지막길을 갔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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