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계추 소리는 누구에게나 들리니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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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라면 몰라도 뮤지컬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도, 잘 보는 편도 아니지만 ‘렌트’와 렌트의 넘버 중 하나인 ‘Seasons Of Love’는 너무 유명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명작을 탄생시킨 작가가 누군지는 몰랐다.
1990년 뉴욕,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하는 존(앤드류 가필드)은 뮤지컬의 전설로 남을 작품을 쓰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작곡에 매진한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공연을 며칠 앞두고 많은 일들이 갑작스레 몰려온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 아티스트의 삶을 꿈꾸는 여자 친구 수전(알렉산드라 쉽), 꿈을 접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선택한 친구 마이클(로빈 데 헤수스), 예술계를 뒤흔든 사회적 이슈 등이 그를 전방위로 압박한다. 서른 살 생일은 다가오고, 존은 예술가로서의 삶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 <틱, 틱... 붐!>, 네이버 영화
조나단은 가난한 예술가임에도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꿈을 포기하지 않지만 미래는 희미하다. 하지만 세상을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마음을 가진 조나단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의 작품에 이를 녹여낸다.
그렇게 써 내려간 첫 작품 ‘슈퍼비아’는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계 전설적인 존재이자 조나단의 우상인 스티븐 손드하임으로부터 호평과 진심 어린 조언을 얻는다. 슈퍼비아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의 솔로곡이 극을 잘 이어줄 거라는 조언에 조나단은 곡을 써 내려간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고 비슷한 단어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마감 직전이 됐는데도 여전히 빈 여백에는 커서만 깜빡이는데, 유능한 작곡가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의 고통을 받는 건 매한가지인 듯해서 동질감마저 느껴졌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어릴 때부터 친구인 소울메이트 마이클이 조나단을 안쓰럽게 여겨 소개해 준 자리에서 조나단이 일을 냈고, 둘은 가치관으로 인해 언쟁을 벌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자 친구 수전은 뉴욕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무용 강사 제의를 받고 함께 가자는 제안을 하고 조나단은 회피한다.
내 꿈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꿈도 소중한 법인데 계속 답을 회피하는 조나단이 갑갑하게 느껴져 조나단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영화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자 친구 수전에게 더 마음이 갔다. 어쨌거나 서로의 방향이 다르다는 걸 깨닫고 좋게 마무리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슈퍼비아’의 워크숍은 성공적으로 끝나 곧 정식으로 계약을 할 것 같았지만 에이전트로부터 난해해서 관광객을 노리기에는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러닝 타임 절반 이상이 흘렀으니 앞에서 고생을 잔뜩 한 주인공이 당연히 성공할 거라 생각했는데, 극적인 뮤지컬이 아닌 그런 뮤지컬을 쓰는 작가의 전기 영화라는 걸 상기시켜준 장면이었다.
뮤지컬 작가라는 꿈을 위해 5년간 다이너에서 서빙을 하며 간간이 돈을 벌고 8년 동안 매달린 작품을 공개한지 반나절 만에 저런 평과 함께 바로 다음 작품 작업에 들어가라는 말을 듣는다면 미쳐버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것도 주변 사람들과 다툴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그런 조나단에게 에이전트는 주변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라는 조언을 한다. 조나단이 활동했을 당시는 호모포비아, 마약 중독, 에이즈 등이 사회 이슈로 떠올랐을 때였고 절친 마이클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훗날 12년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며 뮤지컬계의 한 획을 그은 ‘렌트’가 만들어진다. 퀴어 커뮤니티와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유색인종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 ‘렌트’ 초연 전날 조나단은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해 그 시작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브로드웨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며 좌석을 구할 수가 없어서 못 본다는 뮤지컬 ‘해밀턴’을 직접 쓰고 연기까지 했던 뮤지컬 배우 린 마누엘 미란다가 감독을 맡은 <틱, 틱... 붐!>은 조나단 라슨에 대한 애정이 돋보였다.
악상이 떠올랐을 때 수영장 레일이 악보로 바뀌는 연출처럼 영화에서만 가능한 연출과 뮤지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요소를 적절히 섞은 <틱, 틱... 붐!>은 굳이 따지자면 힐링 영화는 아니지만 요즘 줄줄이 공개되는 어둡고 자극적이기만 한 영상물들에 질려갈 때쯤 내가 바라왔던 뮤지컬 영화였다.
첫 시도 만에 성공한 사람은 드물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항상 한꺼번에 덮쳐오고 신경도 안 쓰고 틱, 틱 흘러가는 시계는 나를 미치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 소리에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를 상상하며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바심 낼 필요 없이 하던 대로 묵묵히 해나간다면 길은 열려있기 마련이다. 시계추 소리는 누구에게나 들리니까.
[신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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