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그럼에도 여기에서

글 입력 2021.11.2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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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의 섬세한 터치로 깊은 사유를 만화에 녹여내는 작가 실키(Silkidoodle).

 

그를 처음 알게 된 곳은 인스타그램 게시물에서였다. 누구나 한 번쯤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속삭였을 법한 옅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어, 독자에게 짙은 감상을 남기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실키 작가 특유의 감각이 잘 묻어난 문체와 깊은 통찰력은 아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서투른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동질감이 그의 만화에 더 큰 애정을 갖게 했다.

 

실키 작가가 수많은 SNS 팔로워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온 것 또한 독자들이 그 이야기에 마음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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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실키 작가의 신간,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작가의 경험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재구성한 열네 편의 만화가 담겨 있는 단편집이다.

 

이번 단편집에서 작가 실키는 이전보다 길어진 작품 분량만큼 삶을 꼼꼼히 관찰하여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만큼 소재와 주제의 폭도 넓어지고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작가는 한국뿐만 아니라 인도, 프랑스 등을 거치며 다양한 나라에서 겪은 일을 만화에 녹여낸다. 물론 일부 일화에는 허구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비극으로만 여겼던 경험이 알고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성장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누구나 비슷할 것으로 단정 짓고 무시했던 나의 존재가, 실은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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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기에서』는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 걸맞은 탁월한 작품이다.

 

이는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웹 카툰’이라기보다는, 정제된 생각으로 독자에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철학적 단문에 가깝다. 그렇기에 독자는 눈길이 한 컷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길게 잡아도 좋다. 작가의 의도가 꾹꾹 담긴 그림과 문장을 품으며 엉킨 생각과 마음을 다듬을 수 있는 것이 이러한 그래픽 노블의 묘미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질문거리를 던진다. 그 질문에 따라 만화 속 주인공의 모습은 가지각색으로 바뀌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결에 맞추어 만화의 그림체 또한 자유롭게 변화한다.

 

때로는 익숙한 그림체로, 때로는 작가의 이전 작품들에서 보지 못했던 독특한 선과 구성으로 만나는 단편들은, 각자 힘든 일상을 살고 있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그럼에도 여기에서’ 나아가는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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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집에서 작가 실키는 길어진 작품 분량만큼 삶을 꼼꼼히 관찰하여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만큼 소재와 주제의 폭도 넓어지고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프랑스에서 쓴 편지>는 2020년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19 초기 유행 당시 록다운(이동제한령)에 들어간 프랑스에서의 시간을 다룬다.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은 한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지만, 록다운까지는 가지 않았던 한국과는 다른 일상의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친구의 집>은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주인공을 따라간다. 절친했지만 이제는 삶의 공간,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모두 달라진 관계. 그 만남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1인칭의 시점으로 그려내는 솜씨가 놀라운 작품이다.

 

<방황>은 아이라고도, 어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성인이 되었지만 독립하기에는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 어른의 이야기이다. 사회적 보호망이 허술할 때 여성이며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존재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번 책에서 주변인으로 많은 관심이 기울긴 했지만 실키의 또 하나의 시선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내면, 고뇌하는 자아를 향해 있다. <360도>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원의 삶> 같은 짤막한 작품들이 그런 예이다. 너무 힘겨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지만,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책임져야 할 내 일과 내일이 있다”는 <360도>의 한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현실 속 고통과 책임감 사이의 고뇌에 공감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힘겨운 삶 속에서 여전히 힘을 내보는 작품도 있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를 상상하는 <고슴도치를 불러주세요>는 읽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작품이며, <얼렁뚱땅 요리조리>는 요리라는 ‘나를 잘 먹이는 행위’가 얼마나 삶에 활력이 되는지를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 옳고 그름을 따지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좌충우돌하며 실수하고 후회를 남기는 상황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보다 미숙했던 모습을 편집하지 않은 이유는 어렸을 때의 서투름이 잘못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아직 서투른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다.

 

- 그럼에도 여기에서 보도자료 中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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