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버려진 것에 담긴 시대의 역사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1.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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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Dion, 〈Brontosauru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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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Dion, 〈The Sea Life of South Korea and Other Curious Tales〉, 2021

 

 

지난 11월 초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약 3개월간 진행되었던 미국 작가 마크 디온(Mark Dion, 1961-)의 국내 첫 개인전 《The Sea Life of South korea and Other Curious Tales》가 막을 내렸다.

 

마크 디온은 아마추어 생태학자이자 자연주의자, 또 수집가로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사물들을 활용해 작업을 이어나가는 예술가이다. 특히 해당 전시에서는 마크 디온이 국내 남해와 서해에서 직접 수집한 해양 폐기물들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캐비넷 형태의 작품 진열대에 나열된 쓰레기들은 모두 바다에서 건진 어망이나 부표, 낚시찌와 한국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라벨과 브랜드의 병뚜껑과 플라스틱 용기, 유리병들이다. 자연과 생태환경에 관해 작업을 제작하는 마크 디온의 작업 방식은 은유적인 묘사보다 적나라하고 직접적이며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예술 작품에는 지극히 사소한 예술가의 개인사적 이야기가 담길 때도 있고, 때로는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 때로는 미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이미지 등이 담긴다.

 

이처럼 예술에는 정답이 없으며 정해진 규정이나 방식도 없다. 예술가들은 캠페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사명감을 갖고 사회와 세상을 변화하려는 메시지를 전달할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며 이를 통해 보는 이들로 물음표와 느낌표를 떠올리게 만드는 예술가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Kurt Schwitters, Merz Picture 32A. The Cherry Picture, 1921.jpg

Kurt Schwitters, 〈Merz Picture 32A. The Cheery Picture〉, 1921


Kurt Schwitters, Zollamtlich geöffnet, 1937–8.jpg

Kurt Schwitters, 〈Zollamtlich geöffnet〉, 1937–8

 

 

독일의 대표적인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948)는 1910년대부터 당시 버려지는 쓰레기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당시에 버려진 티켓, 신문, 성냥, 담배, 천이나 옷가지, 나무 등 쓸모가 없는 쓰레기들이 슈비터스의 작업 재료가 되었다. 콜라주 형태로 제작된 추상적인 작품은 슈비터스 나름의 작업 과정과 미학적인 방식을 통해 제작되었다.

 

슈비터스는 이런 식으로 잡동사니나 폐품, 버려지는 물건으로 만든 작품에 '메르츠(Merz)'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그가 인쇄물에서 우연히 포착한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그저 일반적이고 보잘것없는 폐품을 덕지덕지 붙인 잡동사니 같아 보이지만 슈비터스의 미학은 훨씬 이후에 등장하게 된 정크 아트의 선례이자 예술 작품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힌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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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an, longterm parking, 1982

 

 

프랑스 예술가 아르망(Arman Fernandez, 1928-2005)은 거대한 폐기물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장기주차"라는 제목으로 폐차와 시멘트를 활용해 제작되었다.

 

앞서 슈비터스의 작업이 메르츠 미학이라면 아르망의 작업은 아상블라주(Assemblage)로 수집, 집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설명된다. 전쟁 이후에 서구 사회는 산업화와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며 소비 또한 급증했다. 당시의 산업 폐기물이자 소비사회의 삶 속에 흔적을 갖는 폐차는 거대한 스케일로 제작되어 더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아름다운 것만이 미술관에 작품이 되는 시대는 아주 오래전에 끝이 났다. 앞서 살펴본 작품들은 시대가 배출한 폐품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역사에 남기고 싶거나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맥락을 시각화해 우리의 극사실적 일상을 예술에 반영했다. 이들의 목적이 모두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 더 살기 좋고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로서 소비문화 속 일상용품을 예술과 접목해 각자가 속해서 느낀 시대 의식을 담아낸 것에 의의가 있다.

 

살펴본 것 이외에도 폐품을 이용해 제작된 예술작품은 많고 심지어 버려진 공간도 미술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된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또한, 미술관에서도 환경과 생태 미술을 고려해 기획된 전시가 늘고 있다. 이들이 시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제 "이런 쓰레기가 어떻게 작품이 돼?" 라는 질문보다 예술로 기록되고 박제된 경종의 울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폐기물이 증가했다. 전염병은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일상용품이 되어버린 마스크는 매일 버려지며 카페에서는 전염 확산을 고려해 머그잔이 아니라 일회용 컵에 커피를 담아준다. 비대면 소비를 비롯해 배달음식의 수요 역시 급증하며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식사하고 난 자리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한가득하다.

 

그래도 인간은 학습하며 발전해왔다.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며 굶주린 북극곰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도 좋지만 예술 작품 속 우리와 아주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광경을 통해 사소하고 작은 실천부터 이루어 나간다면 조금은 더 나은 상황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손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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