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평은 헤아리는 일이다 [문화 전반]

한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글 입력 2021.11.2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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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일에 대하여


 

운 좋게 매체의 지면을 빌려 영화에 대한 글을 싣고 있다. 나는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처음 기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 싶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 안에 좋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내게 그런 게 있을까.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작품을 앞에 세워두는 글쓰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작품 뒤에 서서 말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에게 좋은 것을 건네줄 수 있는 수월한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기마다 내게 좋은 책갈피가 되어준 작품들이 있다. 그에 응답으로 글을 써왔으므로 그들은 나의 고마운 글감이 되어준 턱. 나는 훌륭한 작품들에게 빚지고 사는 셈이다.

 

까만 밤에 이불 속에서 읽었던 책들은, 수영을 못하는 내가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유영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래된 작품들에게는 긴 세월을 통과해도 사라지지 않는 진리를 배웠다. 사랑과 재치를 품은 영화들로 인해, 그래 아무렴 인생은 살만한 것이라고 끄덕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게 하나같이 묘안이고 구원이었으니 도망치거나 맞섰던 지난날에도 나는 혼자였다고 말할 수 없다.

 

작품에 대하여 글을 쓴다는 건 어떤가. 해석은 자유라지만 나쁜 평론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기준을 평론가 신형철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 책머리에서 얻었다. 그는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연재 지면에 이런 추신을 달았다.

 

 

“영화라는 매체의 문법을 잘 모르는 내가 감히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 한다.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영화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책을 읽을 때처럼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쁜 평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고 혼내는 것”


억울하게 꾸짖음을 당한 아이(작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맘도 모르면서어….’

 

나는 나의 고마운 책갈피들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런 의미로 작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작품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다. 나는 잘 헤아리기 위해 다시, 여러 번, 계속해서 볼 것이다. 이런 결심을 하고 나니 좋은 글 솜씨라도 얻은 것처럼 이상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결심에 무색하게 내 글은 매번 작품의 줄거리와 메시지를 겨우 읊는 것에 불과하다. 신형철의 말처럼, 해석은 기술이라지만 나는 능력 없는 초심자다. 글을 쓰고 나면 어쩐지 너무나도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진실하려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부끄러워지는 까닭은 유려한 글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헤아림에 실패한 흔적들을 목격해서다. 그리하여 부끄러움은 나의 힘이 된다.

 

 

[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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