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빼빼로 데이가 생일이라면

선물 회고록
글 입력 2021.11.15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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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언제냐는 질문에 "11월 11일이요"라고 답하면, 대부분 "어떻게 빼빼로 데이가 생일이에요?"라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내비친다.

 

이처럼 다들 내 생일을 빼빼로 데이로 알고 있기에 나 역시 내 생일을 빼빼로 데이라고 소개하는 편이다. 물론 이는 제과 회사의 마케팅 상술임을 알지만, 그 덕분에 매년 다양한 빼빼로를 받는 기쁨을 누린 나기에 그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현재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혹은 가래떡 데이)로 부르길 권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빼빼로 데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이다.

 

아무래도 친구나 연인끼리 빼빼로를 주고받는 날이 생일이기에 주변 사람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빼빼로를 받곤 한다. 사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날이지만, 생일자인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항이다. 오직 11월 11일이 생일인 사람만의 특권이랄까.

 

예전에 받았던 선물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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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빼빼로는 단돈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생일선물이지 않은가? 주는 사람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일선물을 챙겨줄 수 있고, 받는 사람은 부담되지 않는 생일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만족스러운 거래이지 않나 싶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생들끼리 챙겨줄 수 있는 선물에 한계가 있었다. 아직 공부하는 학생인 만큼 대부분 부모님께 용돈을 타서 생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돈을 모아 과자 상자를 챙겨주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 누구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내 경우는 따로 챙겨준 것만으로도 고마웠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간식거리가 늘어간다는 기쁨에 네모난 황토색 상자를 반겼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빼빼로를 환영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매년 십일월 중반만 되면 과자를 잔뜩 받고, 먹고, 치우다 보니 차츰 질려가기 시작했다. 평생 먹을 빼빼로를 이미 다 먹은 듯한 기분이랄까. 그동안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사양하고 싶어졌다. 물론 다들 좋은 마음에서 주는 선물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달갑지는 않다.

 

매번 적어도 기본 20개 이상의 빼빼로를 받았고, 다음 날이 생일인 동생 역시 갖가지 빼빼로를 손에 쥐고 돌아왔다. 그렇게 집안에 수북이 쌓인 빼빼로 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을 남에게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어머니가 회사 사람들이나 지인들에게 돌림으로써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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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후에는 생일선물은 무조건 물품으로 달라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빼빼로는 직접 받든 기프티콘으로 구매하든 결국에는 남겨질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친구들은 내가 먹을거리에 진절머리가 났음을 알기에 입에 들어가는 건 피해서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아직 먼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먹을거리를 선물하고 있다. 그들이 나쁜 의도를 품은 것도 아니고, 센스없는 선물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마냥 기뻐할 수 없는 내가 안타깝게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아"하는 탄식이 자연스레 나올 때 더욱 그러하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기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십 년 넘게 생일마다 엄청나게 단 과자를 먹으니 어느새 진저리가 나는 걸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난 날이 빼빼로 데이인 걸 원망한 적은 없다. 일종의 기념일인 만큼 더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고, 11월 11일이란 기억하기 쉬운 날짜 덕분에 내 생일을 까먹지 않는 사람이 꽤 많은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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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도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할로윈 데이 등 다양한 기념일에 태어난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신기해하며 그에 걸맞은 축하 인사를 보내주곤 한다.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가 생일인 친구의 경우에는 나처럼 과자, 초콜릿, 사탕, 젤리 등을 기피한다. 아무래도 이는 기념일에 태어난 사람들의 숙명인 것 같다.

 

사실 생일 자체로도 너무 소중하고 뜻깊은 날이지 않은가. 부모님께서 낳아주신 덕분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으니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생일이 되면 진심과 애정이 깃든 선물과 편지를 보내고, 그날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 같다.

 

이번 생일은 너무나도 행복했으니, 내년 생일 역시 더욱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의 생일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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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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