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13.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한 시절을 끝냈다고 믿고 굿바이 인사를 건네겠다.
글 입력 2021.11.14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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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타인에게 가닿기 위한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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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이 글은 안 읽었으면 좋겠다. 만약 읽더라도 너무 속상해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먼저 말하고 싶다.

 

나는 얼마 전에 허리의 피부를 칼로 찢어 몇 개의 덩어리들을 떼어내고 다시 피부를 봉합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며칠간은 엄청나게 집게발이 큰 꽃게가 허리를 콱!하고 물고 있는 것 같았다가 일주일이 지나자 따끔따끔한 정도로 나아졌다. 샤워를 마친 뒤 허리에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이기 위해 등을 돌렸을 때, 거울에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꼬맨 자국이 빨갛게 보인다. 나도 모르게 속상한 마음이 솟아난다. 얼른 약을 바르고 다시 거즈를 대는 수밖에 없다.

 

덩어리들이 거기 있었던 건 어림잡아 10년 정도 된 것 같다. 피부과에 한번도 안 가본 것은 아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덩어리가 언젠가 너무 커보인 고등학교 1학년 즈음에 동네 피부과에 갔었다. 의사는 섬유종 같다고 했다. 왜 생기는지도 알 수 없고 수술해도 다시 생기고 번질 가능성이 있어서 자기네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그 뒤로는 더 알아볼 생각을 안 하고 그냥 살았다. 거울에서 안 보이는 부분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덩어리는 나에게 창피함을 줬다. 목욕탕에 가기가 무서웠다. 남들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수 없었기에 허리가 훤히 드러나는 크롭티 같은 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밑위가 짧은 바지도 마찬가지다. 덩어리를 아는 건 가족들, 그리고 지나간 애인들, 몇 안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발견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쳐 보여줬다. 그중에서는 기어이 징그럽다는 말을 해 상처를 준 사람도 있다.

 

허리에 있는 덩어리들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된 건 6개월 전이다. 엄마가 섬유종 관련 수술을 잘한다고 입소문이 자자한 병원을 맘카페에서 알아냈다. 그 병원은 평일밖에 운영을 안 해서 아껴놓은 연차를 써서 갔다. 대기표 순서에 따라 안내된 방에 들어가서 의사 앞에서 허리를 깠는데 자기는 모르는 케이스라며 원장에게 가라고 했다. 원장은 수술이 있어 30분 정도 기다려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손쓸 수 없이 심각한 병일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원장을 기다렸다가 이름이 불려 원장 방으로 들어갔다. 원장은 내가 허리를 까자마자 몇 번 만지더니 “이건 섬유종이 아니고, %$#$%@인데?” 라고 긴 영어 이름을 말했다. 내가 못 알아들으니 구글에 검색해 보여줬다. special case라고 상단에 가장 먼저 떴다. 한글로는 ‘상세불명의 양성 지방종성 신생물'이라고 한다. 수술 후 진단서를 보고 알았다. 원장은 흔한 케이스가 아니라며 거듭 강조했고, 외과 수술을 해야 하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피부 속에서부터 자랐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드러내야 하며 그러므로 흉터가 꽤 크게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장의 일정상 수술은 6개월 뒤에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수술 당일 아침 엄마가 같이 병원에 가려고 고구마를 싸들고 집에 왔다. 아침부터 온 엄마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서로를 다독였다. 수술하러 들어가기 전에 원장이 다시 한번 무조건 흉터가 남을 것이며 이런 케이스는 너무나 희귀한 케이스라 자기도 이번에 수술해보고 안 되면 여러 번 해야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그런 질문을 했다. 더 일찍 왔으면 어땠냐고. 원장이 엄마를 째려보더니 왜 지나간 일을 이야기하냐고 했다. 수술은 부분마취로 진행됐고, 난 옆으로 누워서 허리를 깐 채 원장에게 덩어리들을 맡겼다. 원장이 보여준 덩어리는 멍게 같았다. 수술은 30분 정도 걸렸고 다행히 한번에 덩어리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마취가 잘 먹었는지 몇 시간 가량은 아프지 않았다.

 

병원에서 나와 집에 돌아가는 택시에서 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왜 하루만에 끝날 수술을 여태까지 미뤘는지. 직접 말할 자신이 없어 대답 대신 창밖에 단풍이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있는 걸 보고 말을 돌렸다. 엄마, 왜 단풍은 떨어지기 전에 저렇게 기를 쓰고 예쁠까?

 

나는 돈도 없었고 시간이 특히 없었다. 고작 잘 보이지도 않는 허리를 수술하느라 시간을 쓰는 건 지난 시절의 내겐 일종의 사치였다. 고등학생의 나는 우리집의 사정이 나아지려면 내가 공부를 해야된다고 생각했고(지금으로선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내신따기는 더럽게 어려운 이 고등학교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고 대학에 잘 가기 위해서는 졸지언정 수업을 빠져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의 나는 학교는 빠질 수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는 빠질 수 없었다. 수술하고 회복하려면 며칠간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대체할 인력이 넘쳐나는 아르바이트 특성상 짤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짤리면 독학으로 재수해서 간신히 수도권으로 옮긴 학교에 갈 돈이 없으니까. 낮에는 학교에,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갔다. 그래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교재를 사고 점심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나는 덩어리와 헤어짐으로써 한 시절을 끝냈다고 믿고 굿바이 인사를 건네겠다. 지긋지긋했다고,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말라고. 몸이 아픈데 시간을 못 내는 일이랑은 영원히 이별해버릴 거라고. 그리고 이 모든 게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거듭 말하고 싶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게 까치의 잘못이 아닌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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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익명
    • 첫 문장부터 울컥하네요 .. 예전 에세이부터 정독합니다. 글 읽기가 너무 편하고 좋아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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