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타인을 안다는 것, 나를 안다는 것

글 입력 2021.11.1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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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작가들 표1.jpg

 

 

선택할 자유는 때때로 아득한 심연 같다.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인생은 선택의 연속, 인간은 선택의 집합체로 만들어진다는 말. 여러 번 보고 들었지만, 매번 잔인한 말이다. 결과를 모르는, 정답과 오답이 없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는 건 진정 ‘자유’일까. 필자에게는 고통에 가깝다.


며칠 전 인생 판도가 바뀔 만한 제안을 받았다. 필자에게는 큰 정신적 충격과 부담이었기에 ‘사건’으로 칭하겠다.


*


필자에게는 오랜 A라는 꿈이 있었다. 3년간 아등바등 준비했지만 첫 번째로는 실력과 스펙 그리고 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취업 관문을 뚫기가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본인을 설득하지 못했다.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이상으로 남겼다.


그리고 며칠 전, 직장 동료가 필자에게 물었다.


직장 동료 : 재희님, A 꿈 아직 안 놓았죠?

나 : 아니에요! 저 완전히 포기했어요!


(그로부터 1시간 후)


익명의 누군가 : 재희야, A 일 해보지 않을래?

 

*

 

 

행복과 즐거움도 물론 소중해요. 하지만 나와 타자에 대해 간절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건 반대의 감정이에요. 삶의 우선순위를 통렬하게 고민하게 하지요. 부정적 사건이 벌어지면 생각해요. ‘아, 삶의 우선순위를 고민하라는 뜻이구나.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게 뭐지?’라고요.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A 꿈 그리고 현재 하는 일의 장단점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었다. 삶의 우선순위를 나열해봤다. 실제로 A 꿈을 열렬히 좇았을 때와 지금, 필자의 우선순위는 많이 바뀐 상태였다.


결론적으로는 오랜 꿈을 좇지 않는 선택을 내렸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프리랜서로 일해야 한다는 점이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금전적인 부분도 작용했다. 인터뷰이 중 하나인 고정순 그림책 작가의 말처럼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니 우선순위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다 보면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고 숨결을 나누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까진 책이나 저명한 강사의 강연을 들으며 ‘인생 꿀팁’을 얻는다.


이번 ‘사건’. 필자의 인생이 흔들리는 순간 만난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그림책이라는 편안한 소재로 풀어내는 작가를 만나 그들의 세계관을 인터뷰한 책이다.

 

 

 

반성과 자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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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또는 명언집 같다. 아니, 그보다는 믿고 따르는 언니, 친구가 따뜻하지만 냉정하게 건네는 인생 조언 같다. 쓰디쓴 인생과 사회를 포근한 그림으로 말하는 그림책 작가여서 그럴까.


 

마시멜롱의 “가봐야겠어”와 노라의 “생각해볼 거예요”는 같은 결심을 딛고 있다. 경험 없이 믿어버리지 않고,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으며, 사건의 여러 측면과 의미를 검토하고 판단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겠다는 결심. 유예할 줄 아는 힘. 주체적인 나로 서기 위한 중요한 퍼즐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다.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유예할 줄 아는 힘.


인간은 불확실함을 두려워하기에 빠른 판단을 내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상과 인간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명암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 특히나 필자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누군가를 필자의 가치관이나 직관으로 첫인상 판단하기. 끊고 싶은 습관이다. 최근에도 누군가의 인상을 단번에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오랜 대화 후에 긍정적으로 바뀐, 후회되는 경험이 있다.


한 인간이나 현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들을 범주화하지 않는 것. 그들이 나의 체계 안에서 여집합으로 존재해도 그냥 그대로 두는 것. 이지은 작가의 말처럼 유예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Q : 자기 수용이 잘 되지 않아서 괴로움을 겪는 독자가 있다면 뭐라고 말씀하고 싶나요? 

 

A : 자신의 초라함을 알게 되는 순간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잖아요. 닿을 수 없는 바깥의 반짝이는 것들을 보면서 더욱 자신을 괴롭히게 되지요. 가만히 앉아서 자신을 미워하는 시간에 손을 움직여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건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여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물질적인 것보다 상대의 경험을 질투한다. 그럴 때면 이어지는 탓.탓.탓. 권정민 작가의 말처럼 가지지 못한 ‘반짝이는 것’을 열망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내 것이었다면’이라는 상상부터 시작에서 질투, 증오 등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온다.


하지만 결국엔 생각과 상상보다는 뭐든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단축되고 있지만 아직 남의 것을 탐하는 데 시간을 쏟는, 마음 뿌리가 단단하지 않은 필자다.


 

어느 육아서에서 그러더라고요. 오늘 잠깐 영양이 부족해 보일 순 있지만, 아이의 한 달 치 식사를 더해보면 모든 영양소가 충분하다고, 그러니 당장 앞에 있는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요. 저에겐 그 말이 인생 잠언처럼 들렸어요. ‘당장 눈앞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너무 불안해하거나 연연하지 말고 그냥 계속하자, 그러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저절로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야’ 라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작가 활동을 할 때와 아이들 양육할 때 모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가 있다. 다이어리에 있는 할 일을 다 하지 못했을 때가 보통 그렇다. 가벼울 땐 찝찝한 마음뿐이지만 심할 땐 자책으로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연속성을 인지한다면 필자의 노력은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하나의 챌린지를 한다고 했을 때 1년이면 365개. 하지만 330개, 250개라는 숫자가 365개와 비교해봤을 땐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만 결코 불완전한 것이 아님을, 하루의 노력이 0.00001ml만큼 채워도 결국은 나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 한다.


또한 이수지 작가와 같이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저절로 무언가가 되어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어느 순간’, ‘저절로’, ‘무언가’라는, 어찌보면 무책임한 단어의 나열이지만 필자도 똑같은 말을 한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되겠지’.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말이다.

 

 

 

열 세계를 만나다



열 가지 세계를 만났다. 타인의 우주를 들여다 볼 때면 무한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다. 타인의 경험이 마치 내 것 같고, 그들의 장점이 마치 나에게 내재 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오묘한 용기가 생긴달까.


이들이 그림책 작가여서 좋다. 아이들에게도 그들의 우주가 닿을 수 있으니까. 


 

복잡하고 거대하고 낯선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내느라 고군분투할 때, 어떤 가치를 믿고 붙들어야 할지 막막할 때, 그림책은 아름다운 은유로 다시 한번 믿어볼 용기, 일어날 용기를 북돋워준다.

 

-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

 


아이와 성인, 모두를 포용하는 그림책. 그리고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타인의 인생을 맛보기 할 수 있는 시간, 나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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