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돌파하는 힘.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도서]

글 입력 2021.11.0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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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지게 사는 건, 인생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깨달은 어느 날이다. 소중했던 내 친구가 귀찮아졌고, 쓸데없는 생각이 밀고 들어와 꽥 소리를 질렀고, 별 되도 않는 사소한 이유로 모든 걸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 과분한 여유 때문이었다. 싫다, 싫어.


리프트와 모노레일을 타러 갔다. 초코음료에 노을을 보고, 며칠 후 어디든 가자, 하곤 혼자 여행을 떠났다. 집라인, 루지, 호텔, 케이블카, 산책, 바다, 산으로. “자리를 바꾸면 새로운 시선이 열려요. 원래 알던 것도 다르게 느껴지고요. (권정민 작가)” 어쩐지 이번 여행이 생각나는 문구가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속 곳곳에 녹아있는 것 같아 여행을 되새기며, 도서를 리뷰한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다고 느껴질 땐 변화해야 해요. 갑자기 ‘영어를 배워야겠어, 직업을 바꿔야겠어.’ 같은 거창한 다짐보다 매일 나에게 벌어지는 사건,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귀하게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일이에요. ‘그냥 이 순간을 그리자’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관찰자가 되어서 나의 매일을 기록했어요. 덕분에 모든 걸 새롭게 보게 되었어요. 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었죠. _노인경 작가 256p

 

어차피 미래를 걱정한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고, 오늘 마주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는 게 낫죠. _이수지 작가 104p

 


바다로 사라지는 해를 보며 생각했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왜 여행할 때만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야? 산을 건너 도를 넘어갔다고 달라진 사투리를 듣곤, 같은 한국인데 이렇게 생소하고 느낌 있게 다가올 수 있나? 신호등을 건너는 (아마도 그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강아지를 보며 지구는 참 넓고 볼 것도 많다, 세상 좋네. 생각한다.


혼자 온 걸 알고 묻지도 않은 사진을 찍어 준 고마운 직원분, 감사의 표시를 한 콜택시 기사님, 나의 안부를 묻던 버스 기사님, 주변에서 들리던 생동감 넘치는 누군가의 대화 속 사투리, 사진을 부탁받아 찍어드린 분들의 웃음. 변화함에서 내가 줄곧 있던 곳이 고마웠고, 순간순간, 하나하나가 당연한 게 아님을 느꼈다.


또,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5m 근처에 바다 위 체험시설이 있었으나 잠깐 멍 때리느라 벌었던 2분 덕에 놓치고, 근처에 괜찮은 카페를 찾아갔더니 없어진 지 오래, 짧은 스케줄에 포기한 섬 여행, 노을 담으려 택시 타고 도착한 호텔은 이미 바닷소리만 남은 칠흑만이. 몇 가지 더 있으나 하여튼 빡빡하게 계획했다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쉽지 않고, 계획하지 않았다면 주변에 놓치는 게 많다.


그래도 이수지 작가의 말처럼 나는 최선의 것을 선택했고, 그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칠흑에서 수십 개의 별을 봤고, 바다 근처를 산책할 수 있었고, 그때 그 시간과 그 장소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여러 장소와 분위기와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순간의 힘과 사소한 기쁨이 그림책 작가들의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이렇게 도서와 리뷰를 통해 그를 느끼고 공감하며 삶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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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생각과 걱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A. ‘일단 안 될 거야’라고 마음먹고 시작하세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면, 두꺼운 책 만들기를 목표로 삼지 말고, 4컷 그리기를 목표로 삼는 거죠. 자잘한 성취의 감각이 쌓여야 더 큰 용기를 낼 줄 알게 돼요. 저는 ‘너무 무서우니 일단 엔터를 누른다.’는 심정으로 일해요. _노인경 작가 253p

 


내일 하자는 마음보다는 지금, 오늘이라도 조금만. 이런 마인드가 시작을 쉽게 한다고 한다. 본인이 있는 곳에서 조금씩, 1cm만큼이라도 한다면 나중엔 변화된 자신과 세상을 볼 것이라는 댄서 모니카의 인터뷰가 생각이 난다. 첫술에 배부르랴. 실천력과 용기가 부족한 나에게 말하고 싶다.


실제로 지금 이 리뷰가 오랜만에 기고하는 글이라 서성이고 있을 때 도움을 준 문장이다. 너무 무서우니까 일단 엔터부터 친다는 생각으로 해보자, 라고. 그 덕에 시작했고, 이렇게 끝을 향해 간다. 일단 고. 작은 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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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가 한계고 난 최선을 다했어, 라고 자신이 설득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_유설화 작가 143p

 


나도 이 극(極)의 지점을 좋아한다. 분명하고 확실한, 똥인지 된장인지 꼭! 굳이 찍어 먹고 데어봐야 아는. 분필 소리가 좋아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거구나 깨달은 것도 학생 관리 일을 잠깐 하면서 고생과 상처 끝에 ‘난 할 만큼 했어, 한계야.’ 느낀 덕이었고, 직무가 궁금해 굳이 고집해서 인턴을 한끝에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어떤 대화가 생각난다. 자신을 설득하는 것엔 끝장을 보는 것만큼 깨끗한 게 없다고 말하는 내가, 현생을 고민하던 아는 지인에게 “그냥 뭔 큰일이 생겨서 가타부타 말없이 손 털고 그 직무를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그런 일이 있길 바라줄까?” 하니 나보곤 무서운 애라며 그 입 다물란 소리만 들은 대화.

 

오랜만에, 여행과 책으로 타인의 삶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도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의 책 내음과 파란색 글씨의 책 표지, 곳곳에 사진들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꿋꿋이 빛나는 작품을 쏟아내는 그림책 작가들의 힘의 원천과 생의 길목에서 ‘돌파하는 힘’이 필요한 이들에게 10명의 작가의 이야기는 삶을 회복할 용기를 북돋아 주니, 원하는 문장을 취해 한동안 깊이 새기며 자신을 지키는 방파제를 만들어 내길 바란다.

 

 

[서지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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