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사월의 로맨스 [음악]

우린 헤어질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글 입력 2021.11.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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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나 사랑하고 싶다. 괜히 쑥스러워 사랑하고 싶다는 말 앞에 이유를 만들어낸다. 봄이라서, 여름이라서, 가을이라서, 겨울이라서, 추우니까, 계절을 타니까 – 수식어 뒤에는 결국 사랑하고 싶다는 본심이 붙는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보이기 시작하는 11월, 우리는 가을이라서, 가을을 타서 연애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계절에는 이미지가 있다. 가을은 유독 쓸쓸해 보이는 달이다. 그래서인지 가을이라 사랑하고 싶다는 말은 유독 더 외롭게 느껴진다. 유독 가을 같은 사랑 노래가 가득 담겨있는 앨범이 있다.

 

2018년 9월, 가을의 시작과 함께 발매된 김사월의 정규앨범 ‘로맨스’에는 사랑 노래 열두 곡이 담겨있다. 사랑은 주로 ‘사탕같이 달콤한 사랑’과 같이 단 것에 비유되곤 한다. 김사월의 ‘로맨스’ 속 사랑 노래들은 온통 씁쓸하다.

 

사랑하고 있는, 사랑했던, 사랑할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사랑에 대한 진실이 있다. 모든 종류의 사랑에는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녀 간의 사랑뿐만이 아닌,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도 – 모두 끝이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가 우리를 떠난다.

 

김사월의 ‘로맨스’는 사랑과 떠나보냄에 대한 앨범이다.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후 남아버린 감정들을 정리하는 일 까지 모두 사랑이다. 김사월의 ‘로맨스’ 앨범은 사랑에 대한 아주 솔직하고도 담백한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툭툭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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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로맨스

 

내 마음 받으러 올래

난 운전은 못하니 네가 가지러 와

엄청 많으니까 아무 때나 찾아와

사랑 보다 먼저 넌

나를 사랑하라 했잖아

너도 그거 못하잖아

우리를 돕고 싶어

 

교훈적인 강연과 책들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말을 자주 접하곤 한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역설적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기에 타인을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사랑할 대상이 필요한 존재인 인간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게 그 사랑을 주고자 한다.

 

앨범명과 같은 제목을 가진 첫 트랙 ‘로맨스’는 로맨스의 시작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 도울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사랑을 시작한다. 마음에 품고 있는 ‘엄청 많은’ 사랑을 직접 건네러 갈 용기는 없지만, 사랑을 찾으러 온다면 기꺼이 주리라 말한다.

 

사랑의 시작이란 누구에게나 설레는 일 아닐까? 질리도록 사랑해 본 이에게도, 처음 사랑을 하는 이에게도 시작이란 어쩔 수 없이 가슴 떨림을 불러오는 일일 것이다. ‘로맨스’는 시작하는 이의 설렘을 조심히 응원하듯 따듯한 멜로디 위에 불안함을 애써 접어두고 자신의 마음을 수줍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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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연인이여

 

연인이여 새파란 글은

안 믿을게요 그렇죠

연인이여 따스한 말을

난 믿을게요 그렇죠

어둠으로 우리 달려가봐요

나를 사랑해줘요

내게 보여주는 당신을

난 사랑할 거야

 

[연인 :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2번 트랙 ‘연인이여’의 가사는 사랑하고 있는 나 스스로 하는 다짐이자, 사랑하는 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가스파 노에의 영화 <러브>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장면에서 빨갛고 노란 조명을 사용한다. 사랑은 따뜻한 마음과 온기를 나누는 것이기에 따뜻한 색감을 연상시킨다. 글은 새파랗다. 여러 번 정제된 글은 이성적이고 사실적이며 차갑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는 어설프고 미숙하지만 따뜻한 말을 믿고 싶어진다.


그렇게 우리는 막연한 믿음으로 암흑 같은 심연을 가진 사랑에 뛰어든다. 김사월은 “내게 보여주는 당신을 난 사랑할 거야”라고 속삭인다. 타인은 미지의 세계다. 그래서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더욱더 어렵다. ‘연인이여’의 가사처럼, 우리는 타인의 모든 면을 알 수 없지만, 우리의 눈에 비친 타인을 사랑한다. 사랑은 그걸로 충분하다.

 

 

 

 

04. 프라하

 

오랫동안 너를 좋아했지

얼마나고 하면 나조차 모르게

(중략)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나는 못 본체 지나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던 날

내 마음은 숨기는 게 좋아


드라마나 영화에는 남자 주인공이나 여자 주인공을 홀로 짝사랑하는 서브 캐릭터가 등장한다. 우리는 지독한 짝사랑을 한 번쯤 겪어본 후에야 달콤한 주인공 커플의 사랑놀음을 보느라 평소에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서브 캐릭터의 사랑에 눈길을 준다.

 

사랑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누군가가 스며들고, 표현해야만 빛을 발하는 것들과는 다르게 사랑은 자꾸만 숨기고 싶어진다. 혹시라도 나만 좋아할까 봐, 내 마음의 크기가 너무 큰 것일까 봐, 상처받기 두려워 사랑하는 우리는 자꾸만 숨으려 한다. ‘프라하’는 밝은 멜로디 위에 이런 사랑의 역설적인 면을 가사로 풀어낸다.

 

짝사랑도 습관이 된다는 말이 있다. 숨기는 게 습관이 된 이는 ‘프라하’의 가사처럼 사랑하는 이가 앞에 있어도 못 본 채 할 수 밖에 없다. 김사월의 노래는 유독 개인의 지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졌다. 김사월의 노래는 듣는 이의 지난 사랑의 흔적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프라하’를 들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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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우리

 

우리가 처음 자던 날에

널 좋아했는지도 몰라

믿지 않았지

언제나 사랑에 실패했으니까

되돌릴 수 있음 좋을텐데

우린 헤어질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사랑하고 연애하는 일련의 일들에는 전형적인 과정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며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상처받고 슬퍼하는 이들은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사랑한다. 연애가 끝나면 우리는 그 연애를 실패한 것이라 치부한다. 그렇다면 헤어지지 않는 연애는 모두 성공한 것이며, 헤어지는 이들은 실패한 사랑을 하는 것인가?

 

사실 우리의 사랑은 실패한 적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연애 속에서, 우리는 타인을 만나는 동시에 새로운 나 자신을 마주한다. 어느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은 말했다. 사랑은 슬픔과 원망을 주는 동시에 행복을 주기도 한다고.

 

불시에 스며드는 사랑의 예측 불가능성처럼, 유한성도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그러니 사랑에 끝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며, 사랑을 통해 상실 이후의 공허를 짊어지며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까지 모두 사랑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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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세상에게

 

지금은 그때도 우리도 남지 않고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발자국만이

세차게 울리고 있어

이제야 깨달았지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불확실한 나에게

이미 정해진 것은

방황 하나뿐이라는 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빈자리가 남는다. 사랑이 주는 빈자리는 참으로 잔인하다. 채우고 싶다고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돌이킬 수 없는 허전함을 안겨주니 말이다. 사랑은 우리를 어느 순간에 묶이게 만든다. 사람으로 기억되는 장소와 시간에서, 시간은 흐르고 장소는 그곳에 머물러 있지만, 사람만이 부재할 때 우리는 다시 그 공허를 실감한다.

 

사랑했다면 겪어야만 하는 일들을 어찌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는 견뎌야 한다. 무너지고 방황하며 사랑 이후의 나 자신을 찾아가야 한다. 방황 속에서 다시 사랑하고 길을 찾으며 우리는 성장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성장을 관통한다. 그러니 사랑하고 싶은 자여, 사랑이 주는 모든 감정을 끌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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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앨범 ‘로맨스’는 사랑의 시작부터 연애 이후의 나를 마주하는 과정까지, 연애와 사랑의 흐름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그려낸 앨범이다. 트랙 순서대로 앨범을 감상하면,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기분이 든다. 명확한 상황을 그려내는 대신, 감정의 흐름에 초점을 둔 가사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연애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김사월의 ‘로맨스’는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동시에 사랑하는, 사랑했던 모든 이를 응원한다. 언젠가 헤어질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이여, 사랑의 끝에는 결국 단단해진 자신을 마주하게 되리라. 그러니 헤어질지라도, 방황하더라도 사랑하자고.

 

 

[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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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코코
    • 좋아하는 앨범인데 앨범만큼이나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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