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슨트의 시각에도 사각지대는 드리운다 [미술/전시]

글 입력 2021.11.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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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작가님이세요?" *민재영 작가의 개인전 <생활의 발견>에서 도슨트가 될 기회를 얻은 필자는 전시 해설을 유려하게 진행해 가는 한 여인을 보고 운을 뗐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그저 그녀의 절반만큼만 해내고 싶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들이민 질문이었다. 짐짓 당연하다는 그녀의 표정이 절박한 나의 심사를 잠재웠다. 무엇을 중점으로 전시 해설을 하면 좋겠냐는 물음에 그녀는 명료한 대답을 내놓았다. "보이는 대로 하세요.“

 

혹자들은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를 혼동하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민재영 작가의 답변에 많은 의문이 들어 차마 어떤 말로 문답을 끝내야 할지 아주 짧은 순간 고민했었다. 필자의 눈에는 원색이 혼재한 획들과 흑백의 대비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의지가 수반되는 관찰을 통해 무엇을 보려 했던 것일까. 숱한 수사로 점철될, 작품에 대한 심오한 의미를 찾고 전달하려 했을 얄팍한 심사만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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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9일 토요일, 작품 설명 중인 민재영 작가와 이를 경청하는 관람객

 


엉켜있거나 동떨어진 사람들, 도로 위 자동차, 촘촘하거나 널찍하게 배치된 가로획, 흐릿하거나 뚜렷한 윤곽, 특정할 수 없는 색감이 보였다. 그것이 민재영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분명 기시감이 느껴지는 일상의 장면들이 생경하게 보인다. 동양화인듯 아닌듯 기법의 변주가 시선을 끌면 군중의 연대와 개인의 고독이 병치하고 사람 없이 줄 이은 자동차만이 군상을 은유하면 양복이나 교복으로 상징되는 집단이 도화지를 아우른다.

 

군중과 개인의 대비, 보편과 특수의 대조, 연대와 고립의 비교가 성곡미술관을 채운다. 쌍용그룹 성곡 김성곤 창업주의 자택을 개조한 건물의 서사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의 항들이 부조화 속 조화를 이룬다. 전시 <생활의 발견> 영문명은 'Hidden Meanings in Everyday Life'이다. 이를 직역하면 '일상생활에 숨겨진 의미'이다. 즉, 무엇을 찾아내는 행위에는 관찰자의 관점이 수반되나 그 또한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대상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유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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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먼지 낀 날,(Dusty Day) 2018, 한지에 수묵담채, 125x1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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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교차로(Across the street at midnight), 2017, 한지에 수묵채색, 83x122cm

 

 

"어떠한 재현도 결국은 내적 구성의 결과물이고 아무도 각자가 본 것과 똑같은 것을 보지 못하지만, 내가 본 것에 대한 입출력 과정을 기록한 것을 나누면서, 또 나는 타인이 본 세상을 이미지로 보면서 서로 간의 다른 세계로 진입할 것이다." 1층 전시실로 향하는 길에서 민재영 작가의 기조가 서린 문장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모든 이들의 시각은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전제가 그녀의 작품은 일상의 총체적 상징이 아닌 단편(斷片)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기억 속 유동적인 잔상을 의도한 작가는 동양화의 주재료인 지필묵과 수묵화의 기본 필법인 중봉법을 활용하되 관습에서 탈피했다. 브라운관의 주사선이 비치고 형태가 불분명한 영상이 소음과 함께 전달되는 것처럼 그녀의 작품은 이성과 감성 속 야단스레 피어나는 인간의 심상적 징후를 담았다. 가로 먹선을 그린 후 짧고 긴 획선을 겹쳐 면과 형태를 드러내면 윤곽이 부각되는 모필선과는 달리 양감이 살아난다. 관객은 미디어의 화면을 보듯 잊었던 생활의 일부를 발견한다.

 

선의 중첩은 보편에 대한 도전이다. 비단 기법뿐만이 아니라 메시지도 그러했다. 민재영 작가는 자신만의 보편을 그려냈다. 익명의 군중 중 한 명으로서 도시를 스쳐 지나갈 때 개인은 그 자체만으로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누군가와의 교집합을 찾아 귀속의식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작가는 공통점에서 비롯되는 집단의 뚜렷한 구분을 복장이나 행동을 기준으로 포착했다. 온전히 같을 수 없는 개인의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지듯 겹쳐진 원색이 양상을 이루지만 공간의 여백까지 채운 선들은 보편에 섞이지 못한 개인의 특수성을 가리키듯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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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게이트(Gate), 2014, 한지에 수묵채색, 125x170cm

 

 

동시대에 남고 싶은 작가이기에 가능한 행보였다. 으레 개별성과 사회의 관성이 충돌하고 반복한다는 것을 흘려보내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각각의 요소 즉, 개인과 사회를 정의하는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삶이 일반적 사회 구성원의 범주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타인의 보편과 자신의 것이 다를 수 있다는 밑그림에 불특정 다수이기도, 때로는 작가 집단의 일원으로서 오늘의 순간을 그린다.

 

가로획이 그리 돋보이지 않았던 초기 작품에는 백토와 먹 등이 혼용되기도 했다. 이질적인 재료가 혼합매체로서 공존할 때 대비가 가능했음을 1999년 ‘내일이 오기 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2021년의 ‘내일이 오기 전 II’에서는 간격이 느슨해진 선과 다양한 색감을 볼 수 있다. 해당 작품은 2017년 이후 빼곡한 가로획과 비교적 단조로운 먹의 농담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녀의 시도를 자아낸다. 작가는 모더니즘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대두된 20세기 말을, 여유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21세기의 현재를, 기법에까지 반영했다. 당대의 수요가 다르듯 그녀도 다르게, 그리고 같게 존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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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내일이 오기 전(Before Tomorrow Comes), 2021, 한지에 수묵채색, 100x136cm

 


"우리는 우리의 등이나 얼굴, 정수리를 직접 볼 수 없으며 거울 같은 도구나 타자의 눈에 비친 나로 나의 모습을 반추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일종의 매체 개입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직면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작품 ‘기념촬영’에서는 양복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 부재함을 알 수 있다. 흔하지만 지나치기 쉬운 일면에 눈길을 두는 작가는 누구나 기념촬영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개인은 사진이나 회화를 통해 자신이 보는 광경을 담기도 하지만 즉자적 존재를 확인하기도 한다. 본인을 대상화하여 세상을 보고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에 비친 무엇에 의탁해야 하는 인간은 선천적 사회적 동물이 자명하다.

 

한편, 관객이 의존한 장치가 자신에 대한 객관적 관점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는 민재영 작가의 작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미술이 개인과 사회의 상응을 돕는 미디어의 역할이라면 사물화된 이미지의 끝없는 복제 속 원본이 변형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녀는 실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연출된 영화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거나 모델을 섭외하여 특정 상황을 연출하여 작업하기도 했다. 작품 ‘만찬중계’는 그녀가 졸업한 서울대학교 연례행사의 실재이며 객차에서의 부대낌을 풍겨내는 작품 ‘사람숲’은 연출된 것이다.

 

개인은 자신이 구축한 틀에 의해 사회를 보는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그 누구도 오롯하고 완전한 세상을 파악할 수 없다. 다른 이의 경험에 나를 대입시켜 보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모든 경험에 현존하며 살아갈 수 없다. 즉, 특정 개인은 있다가도 없는 존재인 것이다. 영은미술관 입주 작가였던 민재영 작가는 작품 ‘A동’과 ‘은신’을 통해 이를 표현했다. 전자는 함께 생활하며 자신과 가장 동일시할 수 있는 작가 집단에서 본인이 아닌 그들을 조명한 것이고 후자는 초록빛이 일렁이는 배경에 벤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작품으로서 작가가 쉼터에서 숨을 고를 때의 감상을 담은 것이다. 그녀는 그곳에 있었으나 그곳에 없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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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사람숲(The Human Forest), 2006, 한지에 수묵채색, 136x2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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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영, PM 8:30, 2018, 한지에 수묵채색, 125x170cm

 

 

"우리는 사물 자체를 본다. 세계란 우리가 보고 있는 바 그것이다. 이러한 유의 표현은 자연적 인간과, 눈을 뜨면서부터 철학자가 공통적으로 갖는 신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우리의 삶 속에 뿌리 내리고 있는 무언의 ‘의견들’의 심층을 반영하고 있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저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Le visible et l’invisible)』의 한 구절이다. 도슨트로서 전시실에 대기하는 동안 관람객들의 동선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작품과 제목을 번갈아 본다. 동행한 이에게 자신이 예상한 제목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내 다른 것을 알고 멋쩍은 표정을 짓기도 한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전시 중인 작품의 작가와 관객이 호흡하는 ‘아티스트 토크(Artist Talk)’가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전문적 지식의 유무와 예술에 대한 애정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작가와 눈을 맞추고 있노라면 절로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작가나 관객이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질문을 말하는 관객도 있고 장내 누군가는 필경 단언할 수 있는 질문을 꺼내는 관객도 있다. 필자는 광경의 관찰자로서 작가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헤아린 모범 답안을 머릿속에서 맴돌려 보았다. 그리고 한 달여 동안 전시작들을 공부한 내가 작가의 의중을 곡해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퐁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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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3일 토요일 오후 2시, 성곡미술관 '아티스트 토크(Artist Talk)' 현장

 

 

"그러나 그러한 신념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 신념을 명제 또는 진술로서 명확히 발언하고자 하면, 우리는 무엇이고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물이나 세계는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면,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들과 모순들에 봉착한다." 퐁티가 남긴 문장은 필자가 명증할 수 없는 대상임에도 그렇다고 확언했던, 오만을 일갈한다.

 

전통적 재료를 통해 현대적 풍경을 제시한 민재영 작가는 개인전 <생활의 발견>에서 그녀가 20년간 구축한 실험정신을 한껏 드러낸다. 개인의 원경에 자신과 유리된 사회가 있고 근경엔 밀접한 일상이 존재하듯이 이번 전시는 관객의 관점을 이분법적으로 와해시켜 더 넓은 시야를 안겨 준다. 결과로 나아가는 수많은 원인들과 과정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민재영(1968-) 작가는 199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졸업, 1999년 동 대학원 동양화 전공 석사를 거쳐 2007년 서울대학교 동양화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개인전 <생활의 발견>은 성곡미술관에서 10월 7일부터 오는 11월 28일까지 진행된다.

 

 

[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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