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옛날옛적 신들이 살았답니다 [영화]

신들의 이야기, 영화 <이터널스> 파헤치기
글 입력 2021.11.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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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영화를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 세상에 영화는 왜 이리 많은지 보고 있는 와중에도 쏟아져나오고 거슬러 올라가 보려 하면 끝이 없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찍 일어나는 새를 자처하기다. 뭐가 개봉했다 싶으면 일단 본다. 하나라도 볼 게 늘기 전에 해치우는 셈이다. 이번에 해치움을 당한 영화는 <이터널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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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영화 <이터널스>의

전반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립니다.

 

 

 

펑 터진 풍선


 

<이터널스>는 MCU가 엔드게임(2019) 이후 처음 선보이는 히어로 팀업 무비다. 엔드게임의 결말에 호불호가 갈렸던 것을 떠나, 새 페이즈를 맞이하는 만큼 의미가 크다.

 

기대가 과하게 부풀려졌던 탓인지, 혹은 정말 영화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탓인지, 개봉 직후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개봉 초기 로튼토마토 지수는 50%에 다다랐고, 마블에 후한 한국 관객들의 반응도 냉소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리버드로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개봉일(11/3) 바로 다음 날, 영화가 어떻게 풍선을 터뜨렸는지를 보러 아이맥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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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소외된


 

‘인간’ 입장에서 한 줄 평을 하자면 그렇다.

 

기원전 고대부터 인간의 발전에 알게 모르게 도와왔던 존재가 있으며, 그게 이터널스라는 게 영화의 주 설정이다. 인류 최초의 금속 검이라든지, 바빌론의 발전이라든지, 쟁기를 준다든지, …. 신이 인간에 애정을 갖고 무언가를 베푼 듯한 느낌을 주는데, 정작 보는 관객이 인간이다. 시혜적인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10명이나 되는 새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관객이 한 명 한 명 애정을 갖기도 전에 이야기는 휙휙 지나간다. 대사 하나하나의 밀도가 높아 불필요한 장면 없이 지나가지만, 밀도 높은 대사의 빈도마저 높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흐름을 훑어야 해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피상적으로 인물을 이해할 뿐이다.

 

클라이맥스에 치달아서 일어나는 갈등과 고민도 그래서 당혹스럽다. 캐릭터가 화내고 고민하는 그 심리까지 공감할 수 없다. 캐릭터끼리 지지고 볶고 다시 결합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관객은 이방인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건 아마도


 

히어로 영화라 하면 진부하더라도 클리셰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히어로 영화도 엄연한 ‘장르’ 영화고, 히어로 영화로서의 특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 관객은 아마도, 캐릭터끼리의 호흡을 원하고 화려한 CG와 액션을 기대하고 마블 특유의 개그나 사운드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흡을 늦게 가져가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지휘 하의 <이터널스>는 잔잔한 예술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템포를 빠르게, 가볍게 가져왔던 것과는 다른 기조다. 이전의 마블 영화들관 다른 속도감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질진 몰라도, 그 차별성이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시 ‘관객이 히어로 무비에 기대하는 바’를 고민해볼 때다. 예술영화는 많다. 철학적인 영화도 많다. 마블이 대형 프랜차이즈로서, 히어로 무비 시리즈로서 가질 수 있는 특색들로 돌아가야 할 때다.

 

 

 

그럼에도


 

그렇다고 희대의 망작으로 까내리는 건 아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에서 보여줬던 풍경과 인간의 아름다운 배치는 <이터널스>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자연과 이터널스가 한 화면에 잡힐 때면, 특히 수평선 혹은 지평선을 올곧게 담아낼 때 웅장하고 거대한 느낌을 자아낸다. 직접 가서 촬영했든, CG로 처리한 배경이든 감독은 자연을 마치 자신의 미장센처럼 가지각색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눈이 즐겁다.

 

막바지에 신과 비슷한 존재로 추앙되던 이터널스 각각의 캐릭터는 결국 인간과 다름없는 고뇌에 휩싸인다. 누군가는 신념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고, 누군가는 스스로와 싸움을 한다.

 

각종 신화의 모티프로부터 나온 캐릭터들의 영화지만, 한편으론 휴먼드라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의 가치를 되새겨보기도 한다. 초중반엔 시혜적으로 보였던 그들이, 후반엔 나와 시선을 마주하는, 같은 인간으로 바라보게 된다.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다양성이다. 인종, 성별, 나이, 장애 등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단순히 영화의 아무 배역이 아니라, 히어로다. 상징을 갖는 인물들에 다양성을 부여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지구 전체에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는데 특정 집단에 집중된 히어로 양상이야말로 부자연스럽다.

 

영화는 그 다양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지도 않는다. 청각장애가 있는 히어로와는 자연스럽게 수어를 쓰고, 의도적으로 인종이나 성별로 이슈를 만들어 소비하지도 않는다.

 

모든 배우가 그저 ‘사람’으로서 존재하고, 영화 속 모든 이터널스는 별다른 수식어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다양성이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실현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를 갖는다. 적정선에서 이루어진, 이상적인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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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오며 했던 생각은, 캐릭터당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도 부족할 큰 서사를 어찌저찌 잘 자르고 붙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냈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탈락했을 많은 서사와 감정선이 캐릭터에 정붙이기 어렵게 했지만 말이다.

 

인물들을 더 깊이있게 마주한다면 관객은 얼마든지 애정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이터널즈>가 앞으로의 페이즈를 위한 예고편처럼 툭툭 잘라진 것이었다면, 다음 영화에선 한 편의 온전한 이야기가 꾸려져 우리를 찾아오길 바랄 뿐이다.

 


[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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