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물들의 미술사 [미술/전시]

액자와 인상파
글 입력 2021.11.0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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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반 고흐의 편지였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그림에 따라 액자의 색깔을 다르게 추천했다. 그리고 꼭 그 색깔의 액자를 써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 접한 고흐의 그림은 편지의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액자에 걸려 있었다. 그림은 변하지 않지만 그림을 소유하는 사람, 혹은 그림이 걸리는 장소에 따라 액자는 바뀔 수 있다. 그러니까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환경, 시스템, 사람을 반영하는 역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액자는 단순히 작품의 보존 수단, 장식적 기능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작품의 마지막 단계가 액자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마지막을 맡는다는 것은 작품을 훼손을 막고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오늘은 ‘액자’라는 사물과 그림,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파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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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는 고대 미노아 문명의 크레타 섬에서 시작됐다. 섬의 프레스코화에는 황소와 황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장식적인 테두리가 그려져 있다. 이처럼 그림을 돋보이게 하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테두리 선’의 기능이다. 이 ‘테두리 선’이 벽에서 분리되어 다시 그림과 벽에 부착될 때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액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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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섬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

 

 

본격적으로 그림에 틀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초상화 전통에 익숙했기 때문에 성상화를 그려 그림을 경배하곤 했다. 하지만 당시 그림을 숭상하는 것은 이단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그림을 들키지 않고 안전하게 옮기거나 가릴 수 있는 덮개가 필요했다. 따라서 이들은 평평한 나무판을 파서 그곳에 그림을 그린 후 높고 좁은 테두리로 사방을 둘러쌌다. 이 테두리는 그림을 서로 겹쳐 놓아도 칠이 벗겨지는 것을 방지했다. 또 나무판을 경첩으로 이어 붙이는 방법도 있었다. 즉 이 때부터 장식적인 용도 뿐 아니라 그림을 보호하고 운반을 용이하게 하는 용도와 숭배자의 욕구를 장식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써 액자의 역할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그림에서 단순히 작품의 부수적인 요소로만 여겨졌던 액자를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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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 <작은 과수원>, 캔버스에 유채, 53.5 x 64.5cm, 1881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위의 액자는인상파전에 출품한 피사로의 액자를 가상으로 만든 것이다.

 

 

19세기 예술가들의 등용문이자 신작 발표의 장이었던 살롱전은 규제로 인해 액자의 선택이 자유롭지 않았다. 살롱전 출품작은 반드시 액자를 끼워야 했으며 금색, 검정색, 또는 아무런 칠을 하지 않은 나무 액자만 허용되었다. 이 때 ‘인상파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카미유 피사로는 살롱전의 권위에 반하는 새로운 액자를 들고 나타났다. 1877년 세 번째 인상파전에서 피사로는 스물두 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모두 복숭아색, 라일락 색, 옥수수 색 등 당시로써는 기상천외한 색깔의 액자를 선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피사로가 직접 색칠한 액자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다. 애초에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맞는 색을 골라 액자를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서인지 현재 전시되어 있는 인상파 작품의 액자는 대부분 19세기 살롱전 스타일의 금색 액자다. 액자와 작품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면 그냥 보아 넘기기 쉬운 부분이다. 아니면 왜 천편일률적인지 궁금증을 갖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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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아를의 도개교>, 캔버스에 유채, 56 x 65cm, 1888년, 크륄러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위의 액자는인상파전에 출품한 피사로의 액자를 가상으로 만든 것이다.


 
아를, 1888년 4월 3일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은 좀처럼 하지 않는 일이긴 하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워. 그것은 노란색 마차와 빨래하는 여인네들이 등장하는 도개교란다. 흙바닥은 강렬한 오렌지, 풀은 초록, 하늘과 물은 파란색이지. 이 그림에는 로얄블루와 금색으로 액자를 해야 하는데, 그림 주위에 닿는 평평한 안쪽은 로얄블루이고 바깥 부분은 금색으로 된 액자여야 해. 파란색 우단 같은 색상으로 직접 칠해도 좋을 것 같아.
 

 

<아를의 도개교>를 그리고 난 후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다. 도개교의 모양이나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하나도 없다. 오직 색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고흐는 다양한 책들로 색채 조합을 배웠다. 특히 들라쿠르아의 색채 이론을 좋아했는데, 이는 19세기 초반 색채 이론가이자 화학교수였던 미셸 외젠 슈브뢸의 이론이 바탕이 됐다. 슈브뢸이 창시한 ‘색채 동시대비 이론’은 색 옆에 무슨 색을 배치하느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주변에 있는 색깔에 따라 파란색이 더 어두워 보일 수도, 밝아 보일 수도 있고 때로는 파란색이 아닌 것 같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이후 인상파 뿐만 아니라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후대의 우리는 액자를 통해 고흐가 즐겨 활용했던 동시대비와 색채대비를 느끼고 이러한 이론의 미술사적 의의 또한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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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드가의 작품을 본 적 있다. <압생트> 그리고 <발레 수업> 두 작품이 같은 액자에 담겨 있어 생경했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이사크 카몽도 컬렉션의 26점에 달하는 드가의 작품 모두가 같은 액자에 담겨 있다고 한다. 특정 화가의 작품이 모두 특정 액자에 담겨 있는 게 뭐가 그리 놀라울 일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바탕을 두고 제작된 작품들을 수집했는데 이들이 모두 같은 액자를 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특히 이사크 카몽도가 작품을 수집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컬렉터들의 액자에 대한 인식은 그저 작품의 부속품 정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의 드가 컬렉션에 있는 액자들은 모두 드가의 작품이다. 가장자리에 리본 장식이 있고, 액자 틀과 작품이 거의 평평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기존에 꽃이나 진주 형태의 장식이 많은 화려한 액자와는 다르다. 리본이라는 고전 장식이 있긴 하지만 직선적이고 간결한 모습이 모더니즘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는 오히려 드가의 액자가 더 친숙해 보인다. 액자를 통해 드가의 사물을, 그리고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읽을 수 있는 것, 이것도 액자와 그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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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크 카몽도 컬렉션. 위부터 <압생트>, <발레 수업>

 

 

전통적인 스타일의 액자는 테두리가 이미지의 중앙으로 갈수록 사선으로 기울어 내려가는 형태다. 이미지와 액자의 높이 차이 때문에 관람객들은 작품 속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분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상파 작가들에게 그림은 가상의 무언가가 아니라 현실의 한 순간을 담아낸 예술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유독 액자에 신경 쓴 이유는 작품을 현실 공간에 융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장식을 줄이고 그림과 액자의 높이를 동일하게 한 것은 그림을 마치 벽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고 작품 자체에도 그림자를 만들지 않아 표현하고자 한 색깔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액자의 역할을 작품을 보호하고 현실 세계와 그림 속 세계를 구분 짓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을 현재에 녹여내는 매개체 역할도 수행하고 있음을 인식함으로써 새롭게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이처럼 단순히 작품의 부속품을 뛰어 넘어 액자라는 사물과 그림, 그리고 예술가들의 관계를 파악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림을 둘러싼 환경이 바뀜에 따라 함께 변화하는 액자를 주의 깊게 살펴보자. 시대의 시선과 사회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단행본

-이지은, 『액자』, 모요사, 2018.

-W. H. 베일리, 최경화 옮김,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 아트북스, 2006,

2. 논문

-조진선, 「미술작품과 액자의 소통 관계에 대한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논문, 2008.

 

 

[신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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