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 로테/운수 [공연]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여자들의 이야기, 연극 <로테/운수>
글 입력 2021.11.0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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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하이카라의 두 번째 공연, <로테/운수>



‘하이카라’는 2016년 연출가 서승연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시작한 여성 예술인 창작 집단이다.  첫 번째 작품이었던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를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관람한 사람으로서 다음 작품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최근 두 번째 작품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또다시 대학로를 찾았다.

 

‘하이카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며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단체로, 이번에 펼쳐지는 연극 <로테/운수> 또한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여성 2인극이다. 참고로, 이번 공연은 2020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선정작으로 초연 당시 관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로테/운수’는 제목 그대로, 두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다. 한 명은 로테, 다른 한 명은 운수. 이름을 듣자마자 익숙하게 느껴졌다면 맞다. 각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베르테르가 사랑했던 여자인 ‘로테’와 <운수 좋은 날> 속 김첨지의 아내, ‘운수’이다. 그러나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그들의 시점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남성 주인공의 관점에서 사랑이라고 해석되어 온 기존의 로맨스 서사를 여성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서사 아래 살아남으려 노력해온 여성들의 이야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운수 좋은 날>의 페미니즘적 재해석.

 

"왜 안 만나줘"라는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수천 건의 기사가 뜬다. 사랑한다고 말하던 남성이 스토킹을 시작으로 방화, 불법 촬영물 유포, 살인까지 저지르는 기사는 이제 너무 흔하다. 그리고 '사랑'을 했을 뿐이라는 남성 가해자들은 쉽게 용서받아왔다.

 

그들이 '사랑'했기 때문에 저지른 수많은 범죄 앞에서 여성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여성에게는 '안전이별'이라는 키워드가 익숙한 이곳에서 연애란 무엇인가? 사랑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나?

 

누가, 무엇을 사랑이라고 해석해온 걸까?

 

- <로테/운수>시놉시스 中

 

 

시놉시스에서도 밝히듯,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알려진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더 나아가 스토킹과 가정폭력 등의 범죄가 미화되기까지 하는 현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그들의 시점에서 사랑은 과연 사랑이었을까.’

 

※ 참고로, 해당 공연은 스토킹 범죄와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가 포함됩니다. 때문에 관련 트라우마가 있거나 갑작스러운 비명과 과격한 행동에 대한 공포가 있는 사람들은 관람 시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아래 본문에는 연극 <로테/운수>의

내용 및 연출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연극 <로테/운수> 이야기: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로테2_김한별이.jpg

 

 

첫 번째 인물, 김로테는 젊은 대학 부교수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남자친구가 있고 능력도 뛰어난 로테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한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서운 집착까지 이어진 연하 제자(베르테르)의 스토킹.

 

그러나 남자친구도, 경찰도, 주변 사람들도, 심지어 가족도 로테를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인기가 많아서’, ‘여자 혼자 집에 있어서’ 등 요점에서 벗어난 ‘태도의 문제’로 대응할 뿐이다. 결국 로테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괜찮았고, 괜찮아 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스토킹하던 어린 제자가 결국 자살을 하게 되면서 홀로 남은 로테는 병적인 두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사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에서는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사랑이 절절하게 그려졌지, 그런 사랑을 받은 로테의 내면은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시 읽으면 로테의 입장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베르테르의 자살 후 그 고통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남은 사람들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와닿는다.

 

연극에서도 ‘사랑’이라 말하는 한 사람의 광적인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할 수 있다. 어쩌면 소설 속 로테도 집착 같은 베르테르의 말과 행동에 비슷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만, 당시의 로테는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도, 그 결정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을 뿐. 지금이라면 달랐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소설 속 로테도 연극 속 로테처럼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집착과 폭력 앞에서 스스로의 삶을 위해 무엇이든 하지 않았을까.

 

 

운수2_김채현.jpg

 

 

두 번째 인물, 이운수의 이야기는 훨씬 자극적이다.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일제강점기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삶을 극적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당 소설에서는 ‘병든 아내와 세 살 박이 아기를 데리고 사는 가난한 인력거꾼’이라는 설정을 가진 김첨지의 시점에서 그려진다.

 

소설 속에서도 김첨지는 누워 있는 아내에게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라고 ‘발길질과 욕설’을 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격한 대목조차 김첨지의 불운한 처치에 가려져 ‘어쩔 수 없었던 행동’이라고 여기고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 및 동정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아내의 이름을 새롭게 ‘운수’라고 붙이고, 원인 모를 겪는 병 대신 ‘가정 폭력의 피해자’라는 캐릭터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아내의 시점에서 바라본 사건은 이전과는 완전히 반전된 이야기를 보여준다.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 '사랑해서' 그랬다는 남편의 변명을 믿었지만 또다시 되풀이되는 폭력에, 결국 운수의 감정은 폭발한다. 소설대로 남편에게 발길질을 당하지만 운수는 온몸을 다해 일어나 그동안 남편에게 당한 가정폭력에 대한 복수, 살해를 한다. 그것도 그녀가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 그릇으로 남편을 몇 번이나 내리친다. 결국 법정에 선 그녀는 살인에 대해 반복되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이 살기 위해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내용은 자극적이지만 전혀 과장한 것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스토킹과 가정폭력의 문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며, 지금 뉴스에서 보도되는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물의 대사 전달과 움직임이 소름끼치게 느껴진 것은 바로 영화 같은 '연출' 덕분이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포인트들을 덧붙인다.

 

 

 

연극 <로테/운수> 연출: 영화 같은 연출


 

 

첫째, 흰 가벽과 페인트통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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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전 마주한 무대 구성은 단조로웠다. 흰 가판대 3개가 일부러 각을 세운 것처럼 세워져 있었고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바닥까지, 그야말로 새하얀 무대의 배경이 눈앞에 보였다. 무대 장치로는, 관객 시점에서 왼편으로 작은 책상, 오른편 구석에는 의자와 그 옆 작은 거치대 위에 몇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추가로, 왼편, 뒤편, 오른편 각각 세 방면에는 의문의 페인트통들이 있었는데, 무대 시작 전까지도 그것의 쓰임이 가장 궁금했다.

 

극이 시작됐다. 무대 위에는 두 사람이 나온다. 로테, 그리고 밀대를 들고 있는 사람. 밀대를 가진 사람은 공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구석마다 놓인 페인트 통으로 가서 그대로 밀대를 푹 담그더니 무대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밀대를 밀며 움직였다. 그리고 그가 발걸음을 뗀 자리에는 검은 페인트 자국이 선명히 남았다.

 

극이 전개될수록 무대 바닥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채워졌고, 칠해진 검은 바닥 위에는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즉, 주인공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또한 줄어들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무대 위에 선명히 생겨난 검은색 선들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나 극의 절정에 순간에 다다를수록 무자비하게 빠른 속도로 주인공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것을.

 

두 번째 인물, 운수의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긴 밀대가 아닌 짧은 붓을 든 사람과 운수가 등장한다. 그리고 바닥이 아닌 벽을 칠한다. 정확히는, 짧은 붓으로 처음에는 '무죄'를, 그다음으로 ‘사랑해’를, 절정에 다다르기 직전에는 '예/아니오', ‘말을 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벽에 거침없이 휘갈긴다.

 

해당 단어들은 남편으로부터 들은 폭력의 언어인 동시에, 운수가 그토록 토해내고 싶지만 내면에 갇힌 말들이었다. 격정적인 붓 터치와 갑작스러운 비명은 운수가 가정폭력으로부터 받은 정신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듯했는데, 이때 운수의 내면과 정신을 가득 채운 혼란스러움과 공포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무대에서는 더 이상 흰색이 보이지 않는다.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바닥과 어지럽게 반복적으로 채워진 검은 글자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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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포스터를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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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배경 위에 칠해진 검은 붓 터치가 보이고, 붓 터치에서 빠르고 과감하며 거친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제서야 해당 연극의 무대 공간을 가득 채운 검은 붓 터치의 의미가 드러난다.

 

공통적으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폭력의 순간마다 받은 내면의 압박감, 두려움, 공포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듯했다. 더불어, 흑백의 대비를 만들어내는 인물의 움직임은 극의 전개를 뻔하지 않게, 긴장감이 넘치는 극적인 연출을 만들어냈다.

 

 

둘째, 2인극의 이유

 

기획의도에서 밝히는 대로, 해당 연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과 주변 인물의 외면을 마주하는 여성 인물들의 감정에 주목한다. 그래서 무대 위에는 딱 2명, 주인공 외에 다른 인물들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른 인물들의 말은 타이핑 소리와 함께 가벽에 비친 대사 또는 스피커의 말로 대체되었고, 주인공의 움직임 또한 최소화하였다. 이를 통해 스토킹을 당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테'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하고 법정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운수'가 느끼는 절박함과 외로움을 극대화한다. 그리고 관객은 주인공의 감정에 오롯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소품과 장소 연출

 

무대에 놓인 소품 이외에도 다른 소품이 등장했는데, 요컨대, 스토커가 놓고 장미꽃, 파일 안에서 무더기로 떨어진 사진들이 있다. 특이한 점은, 해당 소품들이 무대 위에서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툭', 갑작스러운 등장의 연출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더, 장소의 연출에 관한 부분이다. 흰 가벽의 장점은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이미지 또는 영상으로 공간을 연출해 낸다는 점인데, 이번 연극에서 해당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였다. 대표적으로는, 해가 지는 때에 맞춰 비치는 창문의 그림자 형태를 가벽에 쏘아내어 밖에 있는 로테의 장면을 연출해낸 장면이 인상 깊었다.

 


 

<로테/운수>, 불편하지만 봐야 하는 이유



관람 후 가장 먼저 느꼈던 감정은 충격과 메스꺼움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를 여성 캐릭터의 시선으로부터 재구성하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문제와 적극적으로 연결 지은 부분은 인상 깊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스토킹, 가정폭력과 같은 현실 사회의 어두운 장면을 연출하고, 그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고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니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연극이다. 관람 후 여운이 진득하게 남아있어 내용뿐만 아니라 연출적인 부분에서도 계속 곱씹어 보고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마음이 불편한 이  연극을 보고자 하는 이유는, 사회적인 문제의 요점을 제대로 직시하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현실 속 문제도 누구나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복잡한 생각과 굳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하는 <로테/운수> 공연은 보는 것 자체로 의의가 있다.

 

끝으로 이러한 사회고발적이고 의미 있는 공연을 연출한 하이카라에 감사한 마음을 표한다. 또한 현실로부터, 그리고 연극으로부터 겪는 지금의 메스꺼움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 때까지 여성의 목소리를 밝히는 하이카라의 앞으로의 행보 또한 응원하는 바이다.

 

 

 

아트인사이트 신송희 컬쳐리스트.jpg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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