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과 욕심의 크기는 비례한다 - 가족같이

창작집단 우주도깨비의 연극 ‘가족같이’
글 입력 2021.11.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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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부모와 아동, 청소년, 성인 자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의 영상을 인상 깊게 보았다. 그중에서도 부모와 자녀 간 애착 관계에 관한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대화의 희열 3>에 출연한 오은영은, 메리 메인의 성인 애착 유형 검사를 통해 이론적인 확립 단계를 거친 이른바 ‘대물림’에 관해 설명했다. 성인 애착 유형은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한 뒤에도 고정돼 발현되는 유아기의 애착 관계를 유형화한 것이다. 애착 유형에 따라 친구나 연인과 같은 가족 이외의 중요한 인간관계는 물론 자녀와 관계를 맺는 형태에도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래서 불건강한 애착관계를 맺었거나 학대 경험이 있는 경우엔, ‘뼈를 깎는 노력’을 할 때 그 대물림을 막을 수 있다고 오은영은 덧붙였다.

 

또 다른 방송에서는 ‘동아줄’이라는 표현으로 부모의 존재를 설명하기도 했다. 즉 아이와 부모가 연결된 끈을 동아줄로 비유한다면, 아이에게는 동아줄이 생존과 생명 유지에 있어 필수적인 생명줄과도 같다는 것이었다. 특히 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엮인 튼튼한 동아줄이 아닌 ‘썩은’ 동아줄이라 할지라도 아이는 그 동아줄을 쉽게 놓을 수 없을 거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결론이 세상의 모든 가족이 순탄하고 안정적인 상호작용만 주고받는다는 문장으로 직결된다면 비약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따뜻하고 편안한 공동체로는 쉽게 소비된다. 하지만 반대로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문제다. 가족은 누군가에겐 ‘안전한 결속’이지만 누군가에겐 ‘질긴 쇠사슬’일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형태와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이야기


 

폭력이나 학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이나 ‘갈등’이 비가시화되거나 아름답게 포장될 필요도 없다. 가족 구성원과의 갈등 장면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주의 깊게 공동체를 들여다보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관람하러 집을 나서기 직전에 가족과 큰 갈등을 겪었다. 때문에 눈물범벅의 인간 홍수가 된 채로 걷느라 기차를 놓쳐 연극에도 늦고 제대로 관람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가족과 다투고 ‘가족같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보러 간다니,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 뿐이었다.

 

말 그대로 ‘포기’였다. 녹다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대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거라는 걸 알았지만 더 이상 노력을 들일 힘이 내 안에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도 괜찮다고, 행여 그 누군가가 가족일지라도, 내 감정의 정당성을 이제는 인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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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연극이 끝나고, 나는 극장으로 향할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연극 ‘가족같이’는 창작집단 우주도깨비의 연극으로, 한국의 가족상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한국의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사연 많은 집안에 태어났다. 태어나 처음 만난 가족이라는 사회는 별과 별 사이만큼 거리가 멀다. ‘나’는 가장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탐구하고 이해해 봄으로 괴로움을 극복하고자 한다.

 

진솔한 각본, 두 명의 배우만으로 화자 이외의 다른 가족 구성원 - 어머니, 할머니, 아버지 - 까지 이해해 보도록 만드는 생생하고 몰입감 있는 연기, 얼음장 같던 내 마음의 온도를 1도씩 높여주었던 무대 위 조명이 모두 더해져 나의 긴 폭풍우를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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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말을 빌려,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에도 ‘뼈를 깎는’ 만큼의 노력이 수반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을 딱 한 번 해보았다고 힘주어 고백한다.

 

연극을 관람하기 전으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나는 놓친 기차의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같은 곡이 계속해 흘러나오는지도 모르고.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양하게도, 또 많은 양으로 경험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그때 듣고 있던 음악에서 가사 한 구절이 흘러나와 마음에 박혔다. ‘Only if you knew how much I liked you’(Conan gray, ‘Heather’ 중에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당신도 알았다면.

 

그때 나는, 나를 미워하고 또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이 샘솟는 자리에서 ‘사랑’이 동시적으로 일어남을 깨달았다. 그리고 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잠재워줄 마지막 한 발의 힘을 연극이 실어준 것이었다.

 

 

난 말이지, 정희야.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

 

······ 나를 사랑한다는 그 어떤 남자의 말은,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말일 수도 있고,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내가 그를 위해 많은 걸 버려주길 바란다는 말일 수도 있지. 단순히 나를 소유하고 싶거나, 심지어 나를 자기 몸에 맞게 구부려서, 그 변형된 형태를 갖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고, 자신의 무서운 공허나 외로움을 틀어막아달라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러니까,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내가 처음 느끼는 감정은 공포야.

 

-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중에서

 

 

사랑과 미움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랑과 욕심의 크기는 비례한다. 사랑의 크기가 커질수록 욕심도 몸을 부풀린다. 나는 어떤 관계보다도 가족을 생각할 때 폭발적인 감정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바라는 게 없다고 착각했다.

 

놀라울 정도로 우리는 타인을 알지 못한다. 물론 사는 동안 운 좋게 ‘쿵 하면 짝’하고 ‘찰 하면 떡’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불행한 건 아니다. ‘쿵 하면 땡’하고 ‘찰 하면 꽥’하는 관계가 어쩌면 더 많을지도.

 

어긋나면 어긋난 모양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쪽을 깎아내거나 홧김에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것보다, 들어맞지 않는 그 상태 그대로 각자의 위치에 두는 일이 가장 어렵다. 다른 조각을 사랑할수록 더욱 그러하다고,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문장들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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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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