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짜의 기록 - 아웃 오브 이집트

글 입력 2021.10.31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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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이집트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나라 중 하나이다. 사진으로 아무리 봐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그 나라의 풍미가 무척이나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온 것이다.

 

그랬기에 나는 책 <아웃 오브 이집트>가 무척 궁금했다. 물론 이 책이 여행서는 아니지만, 실제 이집트에서 일생의 일부를 살았던 저자의 글이기에 그 나라의 냄새를 뭍여 오진 않았을까, 기대가 되었던 것 같다.

  

*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책을 읽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집트의 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유려한 문장이 있는 것도 뛰어난 묘사가 도드라지는 글도 아니었건만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그 거리가 나에게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거리 옆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발코니에서 한 남자아이를 보았다.

 

'여름날 오후 멤피스 거리의 성녀네 아파트는 매우 고요했다. 아래층과 이브라히미에 전체가 조용했다. 외할아버지가 방에서 주무실 때, 나는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두 여인의 수다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길고 편안한 낮잠에 빠질 때가 많았다.' (pp. 70)

 

내가 꿈꾸는 한가로운 오후의 풍경이 흘러가는 글 위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단순히 평화로움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어린 시절의 가족들과 있었던 일을 마치 현재의 일처럼 생생하게 옮겨놓은 저자의 솜씨였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깜빡 속고 말았을 것이다. 저자는 소설인 듯 수필인 듯, 오묘한 줄타기를 하며 지난날을 추억하고 있다.

 

책 <아웃 오브 이집트>의 주된 등장인물들 중 내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인물은 '빌리 할아버지'였다. 본명은 아론, 못 말리는 옴므파탈이었던 그가 빌리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사연부터 정말이지 평범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인물이다. 내가 만일 감독이라면, 가장 표현해 보고 싶은 인물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유려한 언변으로 가족들을 꾀어 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이탈리아와 영국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기도 하며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낸 그의 입버릇은 말 끝에 '그러냐, 안 그러냐?'를 붙이는 것. 거봐라, 내 말이 다 맞지 않느냐, 결국 내가 말하는 대로 되지 않았느냐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호탕한 태도로 이 정도면 잘 살았다 말하는 빌리 할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감정이 차오른다. 결과를 떠나 하고 싶은 일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는 추진력이라든지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당당함이랄지, 그런 모습들이 굉장히 호탕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늦은 저녁, 홀로 라디오 방송을 틀어놓고 낮게 읊조리는 유대인의 기도랄지 관심 있던 여인의 선택을 받지 못해 분해하는 모습에서는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외로운 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빌리 할아버지는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씁쓸한 회고와 잘 어울리는 인물인 것 같다.

 

책 <아웃 오브 이집트>에는 저자의 유년 시절의 회고록인 만큼 굉장히 다양한 가족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시작이며 끝이다. 그들 사이에서 저자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영혼으로서 그 순간과 감정과 대화와 사연을 기록하는 관찰자의 역할을 자처하였다. 그랬기에 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엮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진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책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으며 저자 안드레 애치먼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 유명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도 아직 안본 1인이지만, 오히려 그의 초기작을 먼저 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그가 펼치는 작품 세계의 중심이 되는 이집트에서의 시절을 알게 되었으니, 그의 이야기를 좀 더 잘 즐기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몹시 궁금하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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