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 연극 '가족같이'

사랑과 증오, 그 사이에서
글 입력 2021.10.3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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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대대적으로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 형태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치면서 점차 해체되었다. 해방된 지 얼마 안 되어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가족은 피난 가느라 뿔뿔이 흩어졌다. 청년기에 경제 성장을 겪은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먹고 살기 바빠졌기 때문에 그들은 한두 명의 자녀만 낳았다. 핵가족화가 되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의 형태가 바뀌었다고 해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 형태가 사회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아직 아버지가 가장인 집안이 그렇지 않은 집안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 보니 흔히 '아버지'는 가정 내 경제를 담당하며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인물로 표상되었다. 아버지의 말이 곧 법이었고, 아버지의 기분과 행동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좌지우지되었다.


부모가 자식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고, 장성한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은 경우가 많다.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은 불시에 촉발되는 불화로 좌절되고 만다. 그래도 상처만 남은 잔해 속에서 가족은 계속해서 갈등을 극복하고 끈끈한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는, 이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으로 모순적이다. 이 지긋지긋한 굴레가 악순환인지, 선순환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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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연극 '가족같이'는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어도 종 잡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담아냈다. 연극 속 화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린다. 연극은 집게로 등장하는 '나'가 정체성을 찾아 떠나는 모험기로 시작한다. 어느 날 깊은 바닷속에서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뭍으로 나와 도마뱀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하늘에서 만난 철새와의 대화에서도 답을 찾기란 어려웠다.

 

정체성 찾아 삼만리를 하던 중에, 별님을 만났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님에게 끌려 '나'는 우주에 갔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줄만 알았던 별님은 이미 늙어버린 상태였다. 내가 봤던 별빛은 별님이 아주 오래전에 보냈던 별빛이었던 것이다. '나'는 별님에게 죽지 말라며 애원하고, 별님은 이러한 '나'에게 너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별빛의 씨앗을 나눠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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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가 전체적인 서사를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내용이었다면, 후반부에서는 '나'의 성장 과정에 따른 아버지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위로 누나만 줄줄이 있는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모님이 애지중지 키워 고생이란 걸 모르며 자랐다. 막무가내 기분파였으며, 술과 담배는 저승길 동무로 삼을 지경이었다. '도박'은 아버지의 유일한 경제 활동이었다.

 

도박판에서 돈이나 따면 모를까, 아버지는 가족들에게서 돈을 받아 가는 족족 도박과 술과 담배로 탕진했다. 가족들은 수년째 반복된 아버지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단념하고, 원래 유흥에 절어있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장이라는 감투를 쓴 아버지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고3인 '나'의 형이 다니는 미술학원에 등록비를 갖다달라고 부탁한다. 아버지는 양복까지 차려입고 형의 학원에 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고되게 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굽신굽신거리며 마련한 돈을 가지고 그 길로 사라졌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박판에서 형의 학원비를 몽땅 다 잃었다. 유흥으로 허송세월하는 아버지와 이미 데면데면했던 형은, 아예 아버지한테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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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아버지를 조금 달리 보게 된 사건이 있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친구와 날라리에 대해 입을 잘못 놀렸다가 날라리한테 찍혔다. 날라리들은 시시각각 '나'를 위협해왔다. 날라리들한테 맞을 것이 무서웠던 '나'는 고민하다가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쭈뼛쭈뼛 다가가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아버지 뒤에 숨어 날라리들이 활개 치고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한때 동네에서 한주먹 했던 아버지는 '나'를 괴롭혔던 날라리들에게 술과 치킨을 한턱 크게 쐈다. 그리고 "친구들끼리 친하게 지내야지"라며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거기에는 '우리 아들 다시는 건들지 마라'라는 무언의 압박이 숨어있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 '나'를 괴롭히는 무리는 사라졌다. 괴팍하기만 했던 아버지한테서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형과 내가 상주가 되었다.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서야 아버지는 장례식장에 느지막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가 살던 형은 어느날 불쑥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형은 의외로 아버지한테도 청첩장과 돈을 건넸다. 결혼식 때 입을 양복을 맞추라는 돈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버지는 그 돈을 양복 맞추는 데 썼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

 

연극을 보는 내내, 연출가가 왜 전반부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후반부는 아버지에 대한 둘째 아들의 시선으로 구성했는디 궁금했다. 비유적인 이야기에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연극 속 무능력한 아버지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집게인 '나'가 정체성을 찾는 여정이 후반부에 등장하는 '나'가 늘 문제의 중심에 있던 아버지를 비로소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부의 집게는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기 위해 바다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하늘에서 우주로 향한다. 이처럼 후반부의 '나' 또한 가부장제라는, 수직 구조의 정점에 서 있던 아버지를 이해해봄으로써 가족 간의 괴로움을 극복하려 했다.

 

별님이 최후를 맞이하며 '나'에게 주었던 별빛의 씨앗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점차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가족간의 사이는 별과 별 사이 만큼 멀었지만, 그 최후는 관계의 회복이지 않을까?

 

이 연극을 보며 위로를 받을지도 모른다. 연극 무대에 오른 이 시대의 보편적인 가족상에 나, 혹은 다른 이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다. 애증만이 가득했던 가족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해의 악수가 오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명함_아트인사이트에디터 23기 최지혜.jpg


 

[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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