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우리에겐 선택할 자유가 있다, '마른대지'

글 입력 2021.10.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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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쳐.

 

- 에이미의 대사 中



거침없는 대사들과 차가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거운 이야기. 하지만 ‘10대의 불법 낙태‘라는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가볍게 아무런 일도 아닌 듯 풀어내는 이 연극만의 분위기에서 연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렸다.


연극 속 에이미와 에스터는 모든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툭툭 뱉어낸다. 그저 일상의 얘기들을 떠들면서도 계속해서 배를 때리는 행위를 지속하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 같은 웃긴 이야기로 실소를 터뜨리고 관객들 또한 상황에 대한 인식은 흐려지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일상과 웃기고 가벼운 담소에 집중하게 된다.

 

연극의 중반부쯤, 에스터가 에이미의 배를 때리려다 말고 말한다. 너를 때릴 때 너뿐만 아니라 뱃속의 그 무언가까지 같이 때리는 것만 같아. <마른대지>는 계속해서 무거운 일이지만 어찌보면 가벼운 일인 것처럼 상황을 내비치며 이 문제에 대한, 주제에 대한 사고과정을 관객들의 머릿속에 던져준다.


아이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들의 변화였고, 꿈이었고, 기쁨과 두려움이었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그들의 대화와 일상들을 관객들에게 환기시켜준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청소 장면은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 에이미와 에스터가 낙태를 하기 위해 수영부 탈의실에 있을 때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 2시간 뒤에 문을 닫을 것이라며 둘을 유심히 쳐다본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덮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사회는 낙태를 선택이 아닌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청소년의 낙태에 관해서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도를 넘는 관심과 비난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연극 상에서는 이 일에 관해 어른들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등장인물인 에이미와 에스터 또한 절대 어른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등장하는 어른인 경비 아저씨는 상황에 대해 알고있는 듯 하지만 결국 2시간 뒤 나와야된다는 얘기를 끝으로 그냥 나간다. 그 후 피가 흥건하게 남아있는 탈의실을 보고 놀라지도 않은 채 묵묵히 청소를 한다.


이 장면은 결국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분명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결국 그 모든 비난과 수모를 견뎌야하는 여성들을 내몰아버린 어른들의 시선들을 차갑고 덤덤한 경비 아저씨의 청소 장면으로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떠들어대고 왈가왈부하던 그들이 현실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아무 말도 없이 덤덤하게 지속되는 공허한 장면이 지속되면서 사회의 무관심과 함께 씁쓸함은 더욱 가해졌다. 담담하게 현실 그대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얼마나 위선적인지에 대해 뼈를 때리듯 소리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에이미의 설정’이다. 그녀가 어쩌다가 임신을 하게 됐고 그녀가 어떤 상황에 처해지는 것인가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내용의 작품들은 대부분 큰 사건을 안고 있는 인물에 대한 정보나 상황에 대한 부득이함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드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에 대해 이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하지만 낙태가 이해를 요하는 일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왜 굳이 에이미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연극이 의도한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필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선택일 뿐이라는 것.


특히나 낙태를 한 후 에이미의 일상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주지 않아도 낙태를 한 후 본래 자신들의 청춘처럼 살아가는 에이미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는 그래도 살아간다.’라고 외친다. 낙태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이것이 왜 불법인지, 왜 여자만 항상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적 권력계층들은 낙태를 할 일이 ‘절대’ 없으니 본인들의 일이 아니고 논할 생각도 필요도 없이 생명을 단순히 죽이는 행위이니 절대 안 된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자유는 그리도 소중하면서 왜 한 가지만 보고 둘은 못 보는 것일까.



나도 치즈 좋아해.

안 좋아하잖아.

맞아, 안 좋아해. 맥앤치즈 얼린 거 좋아해. 그건 다른 거겠지.

괜찮아, 너는 치즈 싫어하는 사람으로 있으면 돼. 

꼭 치즈 얘기만 하는 건 아냐.

 

- 에이미와 에스터의 대화 中



이 연극이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가장 인상적이고 다른 의미로 뜻깊었던 극임에 한치의 의심조차 없다. “낙태 장면은 있는 그대로 보여져야 한다.”라는 작가의 코멘트와 같이 우리에게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각인시켜준다.


또한 낙태 후의 에이미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그래도 살아간다. 라고 이야기 해준다.


너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그것은 틀린 일이 아님을 연극은 끊임없이 외쳐주고 있다.


몹시도 추웠던 날, <마른대지>는 추운 겨울날보다 차디 찬 우리의 현실을. 어떤 것보다 그로데스크한 우리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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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에게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선택할 자유 말이야.

 

- 에스터의 대사 中

 

 

[정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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