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라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결혼 이야기>에 대한 여자의 단상
글 입력 2021.10.22 19: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이미지_결혼이야기_1.JPG

 

 

<결혼 이야기>가 평론가와 관객들 사이에서 모두 호평을 받는 것은 이혼까지를 결혼이란 여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며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법과 책임 관계로 묶여 다퉈야만 하는 곤란한 상황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만 대부분의 평들이 ‘따뜻하다’고 말하더라.) 하지만 이 안에서 여성과 남성, 아내와 남편의 관계가 그려지는 모습은 거의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다. 특유의 수수한 분위기가 현실적이고 씁쓸한 가족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건 그간의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다르지 않은 수준의 전형성을 가진 로맨스영화와도 같다. 니콜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했던 이 문제점을 간파한 사람은 영화에서 딱 한 사람 밖에 없다. 감히 말하건대 “노라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이미지_결혼이야기_6.jpg

 

 

1.

영화는 남편과 아내의 이혼 귀책사유를 최대한 동등하게 표현해내려 애쓴다. 형식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법정용’ 귀책사유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이 식어버린’ 귀책사유를 공평히 설정해내려 한다. 예를 들면 영화 오프닝을 차지하는 나레이션 장면이 그렇다. 이혼조정관의 제안에 따라 상대방의 단점을 장점으로 포장해 적어내지만 실제 행동과 자신이 표현한 장점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찰리는 트럼펫을 불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트럼펫을 선물한 니콜이 ‘선물을 잘 고른다’라고 칭찬하고, ‘집안일을 잘 못하지만 날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는 순간 화면에는 정신없이 집 정리를 하다 수납장 문에 머리가 치인 그의 모습이 보여 진다. 니콜은 쓸데없이 아이와의 게임에서 감정을 올리는 찰리를 ‘경쟁심이 강하다’며 좋은 부분을 부각하지만 ‘남자로서는 드물게 난처한 꼴을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하자마자 테니스공을 헛날리며 굴욕감에 욕을 하는 찰리가 보인다.


한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니 콩깍지란 렌즈로 걸러졌던 상대의 사소한 습관들은 점점 거슬리고 호감도를 떨어트린다. 영화는 사소한 행동거지를 통해 한 커플의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어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일어날까 말까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보다 내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식사하는 모습이 ‘쳐먹는 것’으로 보일 때 더 ‘정이 떨어진다’는 흔한 인터넷 에피소드처럼 말이다.


하지만 남녀의 사랑에 따르는 ‘사회적 관계’에 대해 영화는 꽤나 남성지배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사소한 것에 의해 무너지는 거야-라는 ‘화면’들로 관객을 현혹시키려 하지만 정작 조금만 정신 차리면 이것은 전형적인 가부장제 아래의 관계이다.



2.

누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었는지 살펴보자. 니콜이다. 왜? 변호사 노라의 사무실에서 니콜은 주체하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흘리며 토로한다. 찰리를 따라 뉴욕으로 왔고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며(가끔은 찬양하다시피 하며) 그와 연극을 함께했지만 절대로 감독 자리가 주어지는 일은 없었다고. 나의 의견, 취향,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난 뒤 이름마저 까마득한 조지 해리슨의 아내처럼 현모양처로 살면 충분하다고 느끼던 찰나, TV 드라마의 배역을 제안 받았고, 내가 그에게 하던 것처럼 진심으로 축하해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내가 얻은 것을 비웃고 샘냈다고 말이다. 니콜은 스스로가 ‘별개의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찰리의 행동은 남편에게서 독립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아내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는 보편적인 가부장의 특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심리를 감히 점쳐보자면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우열관계가 서식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작든 크든 간에 어쨌든 존재하는 것이다.


너무 갔다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찰리 스스로도 말한다. 치열한 법정 싸움을 마치고 찰리의 LA 집에서 둘이 싸울 때, 그 격정적이고 과장 섞인 본심에서 우러러 나온 것은 ‘여전히’ 찰리가 니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LA에서 살고 싶은지 이해해?”라는 니콜의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찰리는 그녀에게 ‘징징 거린다’, ‘변덕 부린다’, ‘불평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아내가 자신의 취향을 잃어버리고 아이의 주 양육을 맡았던 과거가 찰리에겐 ‘더 이상 불평할 것 없는’ 정상상태라 여겨졌던 것이다.

 

 

이미지_결혼이야기_7.jpg

 

 

3.

두 사람의 이혼에서 가장 크고 중심적인 문제는 ‘양육권’이다. 하지만 찰리의 부성애와 니콜의 모성애는 각각 다른 형식으로 그려진다. 찰리의 부성애는 니콜의 그것에 비해 한참 모자라 보인다. 밤중에 찾아온 아이를 꼭 안아주기는커녕 이리저리 피해 버리고 헨리의 학업생활이 엄마 니콜의 거주지에 따라 이동했던 것을 보면 주 양육자가 니콜이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때문에 당사자 헨리의 의존도와 친밀감은 니콜과 더 가까워 보인다. 할머니 집에서 사촌들과 편안히 어울리고 엄마는 최선을 다해 놀아주며 학교생활을 도와준다.


하지만 찰리의 부족한 부성애는 서투른 아빠의 초상 정도로 표현된다. 일사천리로 유능한 변호사를 만난 아내와 달리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협의 자리에서 궁지에 몰리며, 특히 아들과 추억을 쌓고 싶어 할로윈 분장을 했지만 뜻하지 않게 씁쓸한 밤을 보낸 부분은 그를 매우 동정적인 시선으로 그리곤 한다. 재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마련한 텅 빈 LA집과 아들과의 부족한 유대관계에서 보여 지는 것은 그의 부족한 부성애, 능력과 노력부족이 아니라 아들을 사랑하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는 안쓰럽고 불쌍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까지 말이다.


그에 비해 니콜은 시종일관 능숙하고 헌신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찰리의 위와 같은 모습을 통해 헨리는 아빠보단 엄마와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이는 군- 이란 생각이 쌓이던 찰나, 영화는 별안간 ‘엄마의 허점’을 짚어낸다. 양육권을 진단할 전문 감정인을 대비해 가상의 인터뷰를 할 때, 니콜은 그 전까진 꺼내지 않았던 마약 문제나 아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등의 얘기를 술술 털어놓는다. 니콜의 얼굴만을 보여주며 이것이 진짜 인터뷰 상황인 척 속이고 있을 동안 관객들은 그간 (찰리에 비해)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였던 니콜의 빈틈을 듣고 또 다른 잣대를 만들어내게 된다. 니콜이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었음에도 그녀가 주 양육권자로서 적합한지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해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찰리보다 니콜이 더 책임감 있는 부모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에겐 동정심을, 엄마에겐 불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지_결혼이야기_4.jpg

 

 

4.

자 그럼 이제, 드디어 노라를 등장시켜 보자. 이혼 소송 중에도 남편의 머리를 잘라주거나 아내의 집 대문을 고쳐주는 뜨뜻한 장면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데피고 있을 동안 영화는 미묘하게 위와 같은 방식으로 남녀 캐릭터를 그려냈다. 그리고 이 남성지배적 시선 안에서 그려진 노라의 캐릭터는 매우 흥미롭다.


노라는 흔히 코르셋이라고 할 만한, 남성들이 원하고 지지하는 이상향의 외모(look)을 가지고 있다. 풍성한 금발 머리, 늘씬하고 길쭉길쭉한 몸매, 아마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자기 관리, 바쁜 와중에도 문화를 즐기는 지적 수준, 빨간 하이힐과 가슴골이 파인 드레스. 숱한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특히 조연)가 치마는 점점 짧아지고 구두 굽은 점점 높아질수록 남성들의 성적욕구를 채워주고 흥을 돋우어주는 ‘대상’으로 설정되는 것과 달리 <결혼 이야기> 속 노라는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남성들의 세계에서 싸워내는 유능한 변호사, 마치 투쟁가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_결혼이야기_2.jpg

 

 

법정에서 상대편 변호사 제이가 자신의 의뢰인에 대해 “가슴 노출이나 하는 삼류 영화에 나온 배우”라는 모욕성 발언을 하자 노라는 일부러 그를 바라보며 재킷을 벗고 옷을 노출한다. 망사 소재 속옷을 일부러 보이게 한 딱 달라붙는 분홍색 미니 원피스를 입고 있다. 그녀는 성적 모독엔 수치심 대신 당당함과 뻔뻔함으로 대항한다. 마치 왜 말이 바뀌냐고 묻는 제이에게 “뭐 어때서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되묻는 것처럼. 내가 지금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것도 노출이나 일삼는 삼류 여자 변호사로 생각하겠지만 난 당신을 이길 수 있는 유능한 변호사라는 것을 공표하듯 말이다. 힘과 권력, 그리고 법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한 몸처럼 움직이고 그 공간의 다수이자 주도권자는 남성들이다. 이러한 남성들의 세계에서 노라는 일부러 그들에게 성적 대상화된 겉모습으로 치장한 채 그 고정관념과는 반대로 행동한다. 짧은 치마와 높은 힐을 신은 ‘여성’ 노라는 남성이 원하는 가부장제 시스템에 절대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그녀를 너무 영웅화하여 과대추측 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면 노라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전문 감정인을 대비한 가짜 인터뷰 씬에서 노라의 대사는 그야 말로 ‘틀린 말이 하나 없다’. “세상은 과음하고 자식한테 호통 치며 욕하는 엄마는 용납 못해요. 아빠는 부족해도 그런가 보다 하죠. 하지만 엄마가 그런다면 사람들은 다 들고 일어나요. 항상 당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훨씬 까다롭죠.’ 그리고 통쾌한 한 마디를 날린다. “그러니까 당신은 완벽해야 하고 찰리는 망치든 말든 상관없어!” 그녀는 ‘엄마’라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이상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도덕적이고 순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안다. 그래서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나 나오는 여성히어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최대한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해서 말이다.

 

 

이미지_결혼이야기_5.jpg

 

 

5.

결국 <결혼 이야기>의 결말은 그제야 아내의 커다란 사랑을 깨닫게 된 남자의 후회, 미안함 정도이다(처음 나왔던 두 사람의 글 중 상대방의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건 바로 찰리이기 때문이다). 한 번에 끊어낼 수 없는, 이성으론 판단되지 못하는 사랑이란 감정에 각종 현실적인 상황을 집어넣어 감성적으로 표현하려 했지만 결국 그 밑에 깔린 건 여태까지 보아왔던 전형적인 가부장제와 그 아래의 여성상이다. 마지막 아담 드라이브의 구구절절한 사랑 노래는 실제 배우 아내와의 이혼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던 노아 바움백 감독의 방어본능과 자기연민이 서려있다고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다. 여전히 남성은 가엾고, 진정한 사랑을 떠나고서야 깨닫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지만 또 남성스럽게 묵묵히 견뎌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정신 바짝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건 노라 밖에 없다. 그녀는 영화 속 인물 대부분에게 얄밉거나 돈을 밝히거나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는 비인간적인 캐릭터로 나오지만(찰리에게 돈을 청구하자고 하는 것은 노라 밖에 없다. 당사자인 니콜도 그것을 원치 않고 부담스러워 한다.) 또 가만 생각해보면 그녀의 말 중 틀린 건 하나도 없다. 노라는 55 대 45로라도 남자들로부터 이기려 하는 현실적이고 헌신적으로 싸우고 있는 여성 투쟁가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차라리 찰리의 신발 끈보단 노라의 멋진 팔 근육에 더 집중하자.

 

 

[박태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