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노미에 빠진 소녀들의 비극 [영화]

<죄 많은 소녀> 그리고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글 입력 2021.10.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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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은 이제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학교는 사회보다 더 날 것이며, 원초적인 욕구가 오고 가는 야생의 상태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 한국 영화는 근 10년간 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에 천착했다. 묘한 권력 관계에 신음하는 <파수꾼>의 기태와 희준, 부모 세대의 갈등을 대물림받는 <미성년>의 주리와 윤아, “계속 때리면 언제 놀아?”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남동생까지. 학교라는 야생의 공간에서 또 한 번의 사투를 이어가는 아이들의 초상이 스크린에 담겨왔다. 누구나 그 시절을 겪어 왔기에 흥미로우면서도 일면 가슴 아픈 이야기. 오늘 소개할 두 편의 작품 역시 학교 생태의 자장 안에서 숨 쉬는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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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을 알아줘, <죄 많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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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개봉한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는 여러모로 화제의 작품이었다. 당시 영화제 수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이젠 스타 배우로 발돋움한 전여빈의 열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영화는 ‘경민(전소니)’의 실종 당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가 주요 인물이 되어 전개된다. 영희는 친구들과 담임선생님, 형사들에게 모두 가해자로 의심받는데, 특히 ‘경민의 엄마(서영화)’는 딸이 죽은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영희를 몰아붙인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영희는 결국 자살 기도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만다. 하지만 이 선택 이후 영희는 더는 가해자로 의심받지 않으며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시선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제 영희는 드디어 자신이 이루려고 했던 진정한 죽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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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심인물은 영희와 경민의 엄마 그리고 ‘한솔(고원희)’이다. ‘영희’는 어려운 가정환경에 살며 사회에 좌절하고 자살을 꿈꾸는 아이다. 그녀는 자살하겠다는 ‘경민’의 결심을 들었지만, 그것이 너무나 공감돼 말리지 못한다. ‘경민’의 엄마는 대기업 직원인 워킹맘이다. 그녀는 영화 내내 그녀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마지막까지 딸과 있던 ‘영희’에게 죄가 있다고 믿는다. ‘한솔’은 그날 ‘경민’, ‘영희’와 같이 있었던 친구로, ‘영희’와 함께 ‘경민’이가 죽음을 예고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숨긴다. 그녀는 ‘경민’과 ‘영희’ 사이의 친밀함에 미묘한 감정(모종의 질투심)을 느끼고 ‘경민’에게 모진 한마디를 던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 세 캐릭터는 모두 시종일관 ‘경민‘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필사적이다. 하지만 결국 그 결백을 선언하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그 책임의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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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톤은 전체적으로 무겁게 진행된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죽음 이후 그 주위 인물들에게 발생하는 사건들을 주요 플롯으로 끌고 가는 만큼 영화의 비극성과 어두운 분위기가 계속해서 심화한다. 영화의 인물들을 조명하는 방식 역시 매우 흥미롭다. 특히 러닝타임 내내 캐릭터들은 어두운 공간에 위치한다. 굴다리, 좁고 어두운 골목길,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교실과 화장실 등 이들이 서 있는 공간은 늘 어둠과 함께다. 또한. 감독은 주요 인물과 그 외의 모든 등장인물을 단순한 선악 구조로 정리하지 않는다. 마치 우리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듯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현실적인 인물 묘사가 돋보인다. 감독의 이러한 묘사로 인해 관객들은 캐릭터들이 각자 ‘경민’의 죽음에 결백을 입증하려는 과정을 '결국 모두가 패배하는 비극적 과정(이야기)'으로 받아들인다.

 

 

 

놀랍게도 비슷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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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를 보고 아마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느낌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바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다. 한국 최초의 공포 영화 시리즈인 여고괴담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공포물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했다며 주목받았다. 더불어 한국 영화의 대표적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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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부제목이자 영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도 한 소녀의 죽음 이후 학교에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사춘기 소녀들의 감정적 예민함과 동성애적 관계 그리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갈등은 두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구성들이다. 특히 두 영화의 희생자 ‘경민’과 ‘효신(박예진)’은 공동체 안에서 특이한 존재로 취급되며 소외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소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그 죽음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할 것인가.’를 놓고 일종의 아노미(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가 상실된 혼돈상태)에 빠져 희생양을 찾으려는 점 역시 유사하다. <여고괴담>은 이 지점에서 담론 확장을 멈추고 그것을 판타지적 방식으로 단죄하게 되지만 <죄 많은 소녀>는 한 발 더 나가 또 하나의 희생자(영희)가 나올 것임을 암시하며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두 영화는 모두 ‘학교’라는 작은 공화국에서 아이들이 겪는 비극을 보여주며 그 공동체 속 인간 군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날카롭고 충격적인 스토리지만 그 안의 처연하고 비극적인 정서를 그대로 담아냈다. 이런 섬세한 감정을 지닌 두 영화였기에, 정말 아름다웠고 그래서 더욱 닮아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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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면 학창 시절, ‘학교’ 그리고 ‘친구’라는 세계가 왜 이리도 거대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화 속 ‘별거 아닌 일’, ‘6개월이라면 잊힐 일’이라는 어른들의 훈계를 마냥 수용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 우리에겐 그 세계가 전부였으니까. 아직 나는 ‘학창 시절’이라는 깨져버린 껍질을 사랑한다. 우리는 모두 그 껍질을 깨고, 알에서 나오기 위해 격렬하게 투쟁했다.

 

 

[정주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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