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세상에 시인이 필요한 이유 [도서/문학]

글 입력 2021.10.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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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들어가세요.” 어느샌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지인들에게 이런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으레 인사치레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아름다운 눈 풍경의 혹독한 대가가 떠올랐던 것일까, 빙판길에 호되게 혼이 난 기억을 상기하며 상대의 안전을 빈다. 주변에서는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며 설렘을 느낄 나이가 아니냐고 묻지만 코로나19 소식만으로도 지친 필자에게 작년 눈 소식은 골치 아픈 변수에 불과했다.

 

어김없이 겨울이 다가온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10월 말임에도 겨울 한파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날씨에 유감을 표한다.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며 그의 작품 ‘눈’의 의미를 곱씹어 보련다. 팬데믹으로 칩거 중인 독자들에게 시 한 편의 묘미를 전달하고 인생에 대한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는 독자들에게 시인이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진다. 시인과 필자 그리고 당신의 시선은 무엇 때문에 찰나의 시간을 잡아먹는지 진단하며 말이다.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1956년에 발표된 ‘눈’의 주제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삶에 대한 소망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 사회의 부조리를 겪은 김수영 시인은 순수성을 의미한 눈의 생명력을 강조했다. 이 가운데 그는 젊은 시인을 포함한 동시대인들이 사회의 불순함을 뱉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침’이란 표현을 썼다. 끝으로, 기침에서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라는 구절로 갈무리한 그는 부패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소시민적 태도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여기까지가 김수영 시인에 대한 평론가들과 교과서 집필진의 중론이다.

 

다만, 이들의 정형화된 의견이 우려될 뿐이다. 문학은 사회로부터 유리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기인한 불문율이 존재한다. 필자가 김수영 시인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한 시를 읽고 혹자는 “문학을 사회의 수단으로 삼지 말 것”이라는 평을 남겼고 이에 수긍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당시 나 또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김수영 시인이 한국 현대 시 중에서도 저항시나 주지시로 획을 그었다는 주류의 평가는 과연 시인과 작품의 성격을 온전히 담아낸 것일까. 문학과 사회의 관계가 작품을 바라보는 틀이라면, 그것을 조금 비틀어 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참여적이라고도 한다. 허나 어두운 시대상이 만연한 공간에서 이를 외면하는 것만이 보편일까. 다수가 행동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수영 시인을 다시 볼 차례다. 시인의 시선이 사회를 향해 있다고 하여 선동가로 치부할 수 없듯, 거칠고 직설적인 문체가 역사의 중층성과 맞닿아 있다는 조건은 참여시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당시의 상황을 ‘특수’라고 규정짓듯,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고 서정적이었을 당시 김수영 시인은 또 다른 동명의 작품 ‘눈’을 남겼다.

 

 

                              김수영

요 시인

이제 저항시는

방해로소이다

이제 영원히

저항시는

방해로소이다

저 펄 펄

내리는

눈송이를 보시오

저 산허리를

돌아서

너무나도 좋아서

하늘을

묶는

허리띠 모양으로

맴을 도는

눈송이를 보시오

 

요 시인

용감한 시인

-소용 없소이다

산 너머 민중이라고

산 너머 민중이라고

하여 둡시다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웃음이 나오더라도

눈 내리는 날에는

손을 묶고 가만히

앉아 계시오

서울서

의정부로

뚫린

국도에

눈 내리는 날에는

‘빅’차도

지프차도

파발이 다 된

시골 버스도

맥을 못 추고

맴을 도는 판이니

답답하더라도

답답하더라도

요 시인

가만히 계시오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요 시인

용감한 착오야

그대의 저항은 무용(無用)

저항시는 더욱 무용

막대한

방해로소이다

까딱 마시오 손 하나 몸 하나

까딱 마시오

눈 오는 것만 지키고 계시오……

 

 

“… 눈 내리는 날에는 … 시골 버스도 맥을 못 추고 맴을 도는 판이니 …” 앞서 소개한 1956년도 작품에서의 ‘눈’의 의미가 1961년에도 관통했다. 국도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그가 마주한 일상이라면 눈에 내포한 강인한 생명력의 순수성은 현실을 뒤흔들 힘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전작에서는 개인과 눈을 대립하여 전하는 데 그쳤다면 해당 작품에서는 눈의 순수성이 결코 나약하지 않음을 표현했다. 전작의 ‘마당에 떨어진 눈’과는 달리 1961년의 김수영 시인은 ‘저 펄 펄 내리는 눈송이’, ‘허리띠 모양으로 맴을 도는 눈송이’ 등의 표현으로 운동성과 함께 인간은 자연현상을 숙명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것처럼 사회에 순수함이 도래할 수밖에 없음을 천명했다.

 

“이제 영원히 저항시는 방해로소이다 … 눈송이를 보시오 …” 한편, 1961년에 발표된 작품에서 김수영 시인은 통속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사회 참여적인 작품을 다수 남겼다고 평을 받는 그는 왜 저항시가 무용하다고 했을까. 4·19 혁명 이후 1년여 만에 발생한 5·16 군사 정변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보았던 것일까. 사회에 대한 회의감으로 민주주의에 닿지 못한 현실에 체념한 것일까.

 

질문에 대한 대답은 “… 민중은 영원히 앞서 있소이다 …”에서 찾을 수 있다. 시대의 민중이 주장한 무언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색되고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김수영 시인은 군중에 휩싸인 행동 대신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다수 민중의 외침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과정을 직시하며 인간으로서 잊지 말아야 하는 비망록을 그려내는 것이 시인 김수영의 바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그는 한국 현대 시의 사실주의적인 인물로 평가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눈송이를 보시오 (중략) 눈 오는 것만 지키고 계시오……” 김수영 시인의 눈으로 본 시인의 참된 역할은 올바른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시대정신을 관조하는 유약한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방향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이상적인 미래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시인이 되자.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눈을 통해 바라보자. 김수영 시인은 좌우대립이 종결되고 자유가 도래한 세상을 희망했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사회 ‘참여적’으로 표현되었을 뿐 참여 시인의 본질이 현재를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김수영_김수영문학관.jpg

 

 

김수영 시인은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본질을 알기 위해 모든 감각을 일깨워 직면하는 것이 시작(時作)의 시작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감각으로 ‘시각’을 제시했음을 작품 ‘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인간사의 채록이 시로 남겨질 때 가장 사실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각의 전이가 중심이 되어 사회가 미처 조명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눈의 소유자, 시인이 세상을 비추길 바란다.

 

 

[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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