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선택한다, 고로 인간이다 - 태양

글 입력 2021.10.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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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온한 기운이 감도는 방 안. 한 남자가 두건을 뒤집어 쓴채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잠시 후, 서서히 승천하는 태양이 뿜어내는 한 줄기 빛에 몸이 닿는 순간 그의 육체가 요동친다. 점차 점차 쏟아지는 햇빛에 몸부림치던 남자는 이윽고 무기력한 몸짓을 멈춘채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한 마을을 10년간 괴롭히던 비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포스터.jpg

 

 

일본의 극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이 원작인 <태양>은 인간의 존재가치가 격하된 세상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를 조율할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해멘다. 작품의 배경은 21세기 초. 전세계 인구를 급감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세상은 우리가 알던 이전으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편, 감염자 가운데 바이러스 항체가 생긴 사람들이 우월한 신체를 가진 신인류로 부상하지만, 자외선에 매우 민감한 신체 특성을 지닌 관계로 이들은 밤의 인간 '녹스'로 불리기 시작한다. 급증하는 개체 수에 발맞춰 새롭게 정치경제의 중심이 되는 녹스와 기존의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인간들. 서로 다른 두 인류의 좁히기 어려울 것 같던 괴리는 작은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10년간 방치된다.

 

 

 

낮과 태양의 인간 VS 밤과 달의 녹스

첨예한 갈등 속에서 인간다움을 고찰하다



대표작 <산책하는 침략자>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찰해온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주제의식은 <태양>에서도 고스란히 빛을 발휘한다. 바이러스라는 1차 저지선과 더불어, 같은 인류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녹스 사이의 서로 다른 신체 특성은 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2차 저지선으로 둘 사이의 접촉을 가로막는다.

 

태양에 노출될 수 없다는 약점을 제외한 녹스의 우월한 신체 조건은 인간의 경계심을 부추기는 위협요소로 작용하며, 자신보다 나약한 인간을 두고서 녹스는 '큐리오'( キュリオ, '골통품')라는 멸칭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서로를 향한 시선이 날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던 와중에 불의의 사건을 계기로 몇 안되는 인간들이 거주 중인 작은 마을은 외부와 단절된 삶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10년 뒤, 봉쇄령이 풀리면서 인간과 녹스 사이에 교류가 재개되면서 두 인류간의 천착된 관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스스로를 일컬어 급진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 칭하는 녹스의 봉쇄령 해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영 탐탁치 않는 순간이다. 하지만, 행정권을 장악한 녹스를 배척하고서는 기본적인 생필품마저 마련하기 어려운 인간들에게 이들과의 교류는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상으로 새롭게 자리잡는다. 불편한 심기를 애써 무릅쓰고서 녹스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수락한 마을 주민들. 덕분에 다른 자치구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30세 이하의 청년들 가운데 녹스가 될 수 있는 추첨권 자격을 부여받는다.

 

꿈도 희망도 없는 마을에서 사는 대신, 녹스로 살아가길 바라는 노년의 주민들은 자식들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쟁취하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녹스로 돌아선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유'(이애린)에게는, 그 기회가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반면, 녹스가 되어 꿈에 그리던 학교를 다니고 싶은 천진난만한 '데츠히코'(김하람)은 봉쇄령 해제 이후 마을 앞에 생긴 안내소에서 근무하는 동 나이대의 '후지타'(김정화)을 만난다. 육체는 물론, 성격마저 극명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천성이 선한 이 둘은 조금씩 유대 관계를 구축하며 불가능할 것 같던 인간과 녹스 사이의 연대를 실현시킨다.

 

그렇게, 100년의 공백으로 상실된 시간을 점차 회복 중이던 마을에 과거의 비극을 일으킨 주범 '카츠야'(김도완)가 귀환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재점화된다.

 

 

 

원작의 정서를 온전히 구현해내는

조명, 음향, 사선의 무대, 그리고 연기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원작은 언제나 표면에 드러나기 어려운 인물의 본성을 해부하려는 냉철한 시선이 기저에 깔려있다. 연극은 이를 탁월한 조명을 활용을 통해 원작의 싸늘한 공기를 시각적으로 환기시킨다. 그 과정에서 각 맥락에 부합하는 인물의 감정이 투영된 듯한 각기 다른 색감을 활용하며 관객의 감흥을 배가시킨다.

 

인트로를 장식하는 녹스 주재원의 살해 장면은 첨예한 갈등이 유발한 광기 어린 '카츠야'의 분노를 새빨간 조명으로 표출시킨다. 인간을 향한 불가해한 시선을 견지한채 그들과의 타협은 결국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세이지'(윤재웅)의 독백씬은 인물을 향한 핀조명만 남긴채 나머지 무대를 암전으로 가득채우며 녹스와 인간 사이의 섬짓한 미래를 시퍼런 조명으로 부각시킨다. 그 밖에도,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유'와 '레이코'(이슬비)의 모녀 상봉은 배우들의 슬로우 액션과 기이한 음향효과, 그리고 샛노란 조명을 통해서 특정 행위에 내재된 두 인물의 대조적인 감정의 부조화성을 시청각적으로 표출한다.


탁월한 조명 디자인과, 싸늘한 정서를 부각시키는 파열음 가득한 음향, 그리고 사선을 경계로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 '김정' 감독의 무대 배치는 같은 시간대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과 녹스간의 첨예한 갈등을 더욱 고조시킨다. 더불어, 굴곡진 인간과 녹스의 서사를 직접 체현한 배우들의 몸짓은 어설픈 낙관론을 설파하고 싶지 않은 작가의 의도와, 원작 특유의 싸늘한 정서를 동시에 구현해낸 일등 공신이다. 특히, 포스터를 장식하는 '후지타'와 '데츠히코'의 우정은 인간과 녹스의 좁힐 수 없는 괴리를 극복할 수 있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암시하지만, 그럼에도 좁히기 어려운 두 인류간의 현실적인 간극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설파하는 역할 또한 수행한다.

 

녹스가 되길 바라는 '데츠히코'를 두고서 태양이 선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특권을 버리지 말라는 '후지타'의 일갈은,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학교 생활을 위시한 대다수 특권을 이미 경험했기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는 '데츠히코'의 처절한 반박으로 이어진다.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저마다의 견해는 상실의 시대가 유발한 끝없는 가치의 혼란을 환기시킨다. 희곡은 각각 현실과 이상을 상징하는 '후지타'와 '데츠히코'의 치열한 대화 장면을 통해서 누구의 의견에 동조하는지를 관객 스스로 자문하게끔 유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뛰어난 작품들이 늘 그랬듯, <태양> 역시 관객에게 정답이 아닌 질문을 던짐으로써 장대한 끝을 향한 막판 스퍼트를 올린다.

 

 

 

낙관과 비관, 그리고 이상과 현실

그 사이를 오가는 저마다의 선택



누군가에게 태양은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존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은밀하게 가려진 자신의 존재 가치를 투영하는 거울로 작용한다. 태양이라는 공동의 대상을 두고서 극명하게 나뉘어진 두 인류의 차이는 하나의 대상에 내포된 각기 다른 명암을 제시하며 단순히 한 가지 방향으로 귀결될 수 없는 삶의 다양성을 은유한다. 이러한 프리즘을 인간에 견지하면, 결국 인간 역시 누군가에게는 무능력하기 그지 없는 생물체에 불과할 것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의지 대상이다. 그리고, 나머지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미처 가지지 못한 강점을 지닌 특출난 존재임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친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온전히 쟁취할 수 있는 희망은 자신의 존재를 규명할 수 있는 스스로의 선택에 기인한다. 어떤 존재로서 남은 삶을 영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마다의 의지에서 출발한 선택이며, 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선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줄 인권의 시발점이자, 이를 발휘하고 맞이한 결과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인간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도출할 수 있다. 이는, 각기 다른 선택을 감행한 인물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한 '유'는 어린 시절부터 갈망해온 모성과, 지옥같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래 살기를 바라는 부성에 따른 선택으로 녹스가 된다. 비록,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하는 그녀지만, 이미 '소이치'(서창호)의 딸이라는 정체성은 그녀에게 지나간 과거 그 이상도 아닌 사실에 그치고 말것이라는 복선이 대사("아빠는 그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뭐하셨어요?")를 통해 깔려있다.


반면, 녹스로 새롭게 거듭난 딸을 눈물을 머금고 떠나보낸 '소이치'는 이제껏 골동품이라는 자격지심과 함께 자력으로 희망을 갈망하지 못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오키나와로 새롭게 터전을 이동한다. 그리고, 끝내 작품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후지타'와 '데츠히코'는 여행이라는 행위를 선택하며 인간과 녹스간의 공존 가능성을 추후 보여줄 것이다. 이들 모두 저마다 옳다고 믿는 바에 선택하고 이를 실현했고 또 실현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할 건 '소이치'와 '요지'(권정훈)가 주고받는 변화, 그리고 새로운 선택이다.

 

 

 

나는 선택한다, 고로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선택한다



오랜기간 녹스로 살아온 '요지'는 마을의 왕진의사 자격으로 유년시절이 깃든 마을, 그리고 친구 '소이치'를 만남으로써 영원히 소멸된줄 알았던 과거의 파편을 조우한다. 이는, 잊고 지냈던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다시금 눈에 뜨는 시점과 동일하며, 친구의 딸이 더이상 햇빛을 마주하지 못한채 살아야하는 야행성 동물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통해 그의 내적 변화가 실질적으로 이뤄졌음을 가리킨다.

 

하지만, '유'의 선택을 끝내 가로막지는 못한채, 또 한 명의 인간이 녹스로 변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에 그친다. 10년의 마을 봉쇄령이 해제된 순간을 기점으로 이제껏 잊고 지냈던 과거를 고찰한 그는 현재의 짙은 공허함을 뒤늦게 실감한다. 소멸되었던 과거의 회복은 그렇게 '요지'의 내면에 새로운 변화의지를 심어준다.

 

다시금, 그가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또 한번의 선택권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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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게 시대에 휘둘려온 '소이치'는 10년 넘게 지켜온 고향 땅을 떠나며 미래를 위한 자발적 선택을 감행한다. 그렇게 인간성을 잃지 않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뒤늦게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향한 의지를 단호히 드러낸다. 그리곤 소강상태였던 우정을 회복이라도 한듯, '요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한편, 친구의 마지막 인사를 접한 '요지'는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는 뜬금없는 부탁과 함께 얼마 안 있어 승천할 태양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친구의 제정신 아닌 행동을 어이없어 하지만, 그의 진심을 뒤늦게 눈치챔으로써 친구의 곁을 지킨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공백을 넘어서 그둘의 우정은 비로소 시작하고 끝이 난다(사족으로, 이 둘의 관계는 '후지타'와 '데츠히코의 미래를 암시한다).

 

여러 인물들의 선택과 달리, '요지'는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 선택을 온 몸으로 실천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전 선택이 오직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한 상황에 따른 과오임을 그는 뒤늦게 자각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새롭게 선택하고, 이를 실천한다. 비록, 녹스의 육체는 견디지 못한다 할지라도, 의연하게 태양을 마주하는 '요지'의 몸짓은 이제껏 실감하지 못했던 인간성을 회복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그는 선택했고, 마침내 인간으로서 삶을 마감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암울한 현실은 유지되지만, 보이지 않던 희망 또한 조금씩 실체를 지니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낮과 밤은 그렇게 뒤바뀐다. 결국, 선택을 주도하는 어느 누군가의 문제. 인간성으로 상징되는 <태양>의 희망은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을지라도, 선택이라는 시발점은 동일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이치'와 '요지'의 마지막과 관련하여 인간과 선택 사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을 지금 이 시점에서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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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택한다, 고로 인간이다"

 

혹은

 

"나는 인간이다, 고로 선택한다"

 

어떤 조건이든 간에 우리는 인간이기에 선택을 해야하고, 선택 할 수 있기에 우리의 존재는 인간으로 규명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혹은,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서있는가? 다시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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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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